편집자 注: 작가는
1963년 ‘사상계’로 데뷔, 1975년 이 작품을 발표했다. 이 글은 ‘죽음의 한 硏究’에서 추천자인 시인 신현림이 발췌한
것이다. …나는 어찌하여, 햇볕만 먹고도 토실거리는 과육이 못 되고, 이슬만 먹고도 노래만
잘 뽑는 귀뚜라미는 못 되고, 풀잎만 먹고도 근력만 좋은 당나귀는 못 되고, 바람만 쐬이고도 혈색이 좋은 꽃송이는 못 되고, 거품만 먹고도
굳어만지는 진주는 못 되고, 凋落(조락)만 먹고도 생성의 젖이 되는 겨울은 못 되고, 눈물만 먹고도 살이 찌는 눈 밑 사마귀는 못 되고, 수풀
그늘만 먹고도 밝기만 밝은 달은 못 되고, 비계없는 신앙만 먹고도 만년 비대해져가는 神(신)은 못 되고, 똥만 먹고도 피둥대는 구더기는 못
되고, 세월만 먹고도 성성이는 백송은 못 되고, 각혈만 받아서도 곱기만 한 진달래는 못 되고, 쇠를 먹고도 이만 성한 녹은 못 되고, 가시만
덮고도 후끈해하는 장미꽃은 못 되고, 때에 덮여서야 맑아지는 골동품은 못 되고, 나는 어찌하여 그렇게는 못 되고, 나는 어찌하여 이렇게
되었는가? 유정 중에서 영장이라고 내 자부했던 사람, 허나 어찌하여 나는 흙 속의 습기 속으로만 파고드는 지렁이도 흘리지 않는 눈물을 흘려야
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