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注: 원문은 글벗사刊
‘한국의 영원한 수필 명작’ 1994년 판을 사용했다. 신봉승씨 추천. 내 일찍이 고독의
몸으로서 적막과 무료의 消遣法(소견법)으로 거위 한 쌍을 구하여 자식 삼아 정원에 기르기 十個星霜(십개성상)이거니 올 여름에 천만 뜻밖에도
우연히 맹견의 습격을 받아 한 마리가 비명에 가고, 한 마리가 잔존하여 극도의 고독과 회의와 비통의 나머지, 음식과 수면을 거의 전폐하고 비
내리는 날, 달 밝은 밤에 여읜 몸 넋 빠진 모양으로 넓은 정원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동무 찾아 목메어 슬피우는 斷腸曲(단장곡)은 차마 듣지
못할러라. 죽은 동무 부르는 제 소리의 메아리인 줄은 알지 못하고, 찾는 동무의 소린 줄만 알고 홀연 긴장한
모양으로 조심스럽게 소리 울려 오는 쪽으로 천방지축 기뚱거리며 달려가다가는 寂寂(적적) 無聞(무문), 동무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을 때 또다시
외치며 제 소리 울려 오는 편으로 쫓아가다가 결국은 암담한 절망과 회의의 답답한 표정으로 다시 돌아서는 꼴은 어찌 차마 볼 수 있으랴.
말 못하는 짐승이라 때묻은 말은 주고받고 못하나 너도 나도 모르는 중의 一脈(일맥)의 진정이 서로 사이에
통하였는지, 10년이란 기나긴 세월에 내 홀로 적막하고 쓸쓸하고 수심스러울 제 환희에 넘치는 너희들의 약동하는 생태는 나에게 무한한 위로요
감동이었고, 四圍(사위)가 적연한 달 밝은 가을 밤에 너희들 자신도 모르게 무심히 외치는 애달픈 향수의 노랫소리에는, 나도 모르게 천지 적막의
향수를 그윽이 느끼고 긴 한숨을 쉰 적도 한두 번이 아니러니― 고독한 나의 愛物(애물)아. 내 일찍이 너에게
사람의 말을 가르칠 能(능)이 있었던들 이 내 가슴속 어리고 서린 한없는 서러운 사정과 情曲(정곡)을 알려 들리기도 하고 호소도 해보고, 기실
너도 나도 꼭같은 한없는 이 설움 서로 공명도 하고 같이 통곡도 해보련만, 이 지극한 설움 서로 공명도 하고 같이 통곡도 해보련만, 이 지극한
설움의 순간의 통정을 너로 더불어 한 가지 못하는 영원한 遺恨(유한)이여― 외로움과 설움을 주체 못하는
순간마다 사람인 나에게 술과 담배가 있으니, 한 개의 瀟湘斑竹(소상반죽)의 煙管(연관)이 있어 무한으로 통한 청신한 대기를 속으로 빨아들여
오장육부에 서린 설움을 창공에 뿜어내어 紫煙(자연)의 선율을 타고 굽이굽이 곡선을 그리며 허공에 사라지는 나의 애수의 자취를 넋을 잃고 바라보며
속 빈 한숨 길게 그윽이 쉴 수도 있고, 한 잔의 술이 있어 위로 뜨고 치밀어오르는 억제 못할 설움을 달래며 九曲肝腸(구곡간장) 속으로 마셔들여
속으로 스며들게 할 수도 있고, 12絃(현) 가야금이 있어, 감정과 의지의 첨단적 표현 기능인 열 손가락으로 이 줄 저 줄 골라 짚어, 간장에
어린 설움 골수에 맺힌 한을 음률과 운율의 선에 실어 찾아내어 기맥이 다하도록 타고 타고 또 타, 절실한 이 내 가슴속 감정의 물결이 열두 줄에
부딪쳐 몸부림 맘부림 쳐 가며 운명의 신을 원망하는 듯, 호소하는 듯 밀며, 댕기며, 부르며, 쫓으며, 잠기며, 맺으며 풀며, 풀며 맺으며,
높고 낮고 길게 짧게 굽이쳐 돌아가며, 감돌아 가며, 감돌아 들며, 미묘하고 그윽하게 구르고 흘러 끝가는 데를 모르는 심연한 선율과 운율과
여운의 영원한 調和美(조화미) 속에 줄도 있고 나도 썩고 陶然(도연)히 취할 수도 있거니와― 그리고 네가 만일 학이라면 너도 응당 이 곡조에
취하고 화하여 너의 가슴속에 가득 답답한 설움과 한을 잠시라도 잊고 춤이라도 한번 덩실 추는 것을 보련마는― 아아, 차라리 너마저 죽어 없어지면
네 얼마나 행복하며 네 얼마나 구제되랴. 이 내 애절한 심사 너는 모르고도 알리라. 이 내 무자비한 심술
너만은 알리라.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말 못하는 짐승이라 꿈에라도 행여 가벼이 보지 말자니, 삶의 기쁨과 죽음의 설움을 사람과 꼭같이 느낌을
보았노라. 사람보다도 더 절실한 느낌을 보았노라. 사람은 산 줄 알고 살고, 죽은 줄 알고 죽고, 저는 모르고 살고, 모르고 죽는 것이 다를
뿐, 저는 生(생)死(사)運命(운명)에 무조건으로 절대 충실하고 순수한 순종자― 사람은 아는 것을 자랑하는 우월감을 버리고 운명의 반역자임을
자랑 말지니, 엄격한 운명의 지상 명령에 歸一(귀일)하는 결론은 마침내 같지 아니한가. 너는 본래 본성이
솔직한 동물이라 일직선으로 살다가 일직선으로 죽을 뿐, 사람은 금단의 지혜의 과실을 따 먹은 덕과 벌인지 꾀 있고 슬기로운 동물이라 직선과
동시에 곡선을 그릴 줄 아는 재주가 있을 뿐, 10년을 하루같이 나는 너를 알고 너는 나를 알고 起居(기거)와 動靜(동정)을 같이하고
喜怒愛樂(희로애락)의 생활 감정을 같이하며 서로 사이에 일맥의 진정이 통해 왔노라. 나는 무수한 인간을 접해 온 10년 동안에 너만큼 순수한
진정이 통하는 벗은 사람 가운데서는 찾지 못했노라. 견디기 어렵고 주체 못할 파멸의 비극에 직면하여 술과 담배를 만들어 마실 줄 모르고 거문고를
만들어 타는 곡선의 기술을 모르는 솔직 단순한 너의 숙명적 비통을 무엇으로 위로하랴.
너도 나도 죽어 없어지고 영원한 망각의 사막으로 사라지는 최후의
순간이 있을 뿐이 아닌가. 말하자니 나에게는 술이 있고, 담배가 있고, 거문고가 있다지만 애닯고 안타깝다. 말이 그렇지, 忘憂草(망우초) 태산
같고 술이 억만 잔인들 한없는 운명의 이 설움 어찌하며 어이하랴. 가야금 12현인들 골수에 맺힌 무궁한 이 怨(원)을 만분의 일이나 실어 날 수
있으며, 그 줄이 다 닳아 없어지도록 타 본들 이 놈의 한이야 없어질 기약 있으랴. 간절히 원하거니 너도 잊고 나도 잊고 이것저것 다 없다는
본래 내 고향 찾아가리라. 그러나 나도 있고 너도 있고 이것저것 다 있는 그대로 그곳이 참 내 고향이라니
답답도 할사 내 고향 어이 찾을꼬, 참 내 고향 어이 찾을꼬. 창 밖에 달은 밝고 바람은 아니 이는데, 뜰 앞에 오동잎 떨어지는 소리 가을이
완연한데, 내 사랑 거위야, 너는 지금도 사라진 네 동무의 섧고 아름다운 꿈만 꾸고 있느냐. 아아, 이상도
할사. 내 고향은 바로 네로구나. 네가 바로 내 고향일 줄이야 꿈엔들 꿈꾸었으랴. 이 일이 웬일일까. 이것이 꿈인가. 꿈 깨인 꿈인가. 미칠
듯한 나는 방금 네 속에 내 고향 보았노라. 千秋(천추)의 감격과 감사의 기적적 순간이여, 이윽고 벽력 같은 기적의 경이와 환희에 놀란 가슴
어루만지며, 枕頭(침두)에 세운 가야금 이끌어 타니, 오동나무에 鳳(봉)이 울고 뜰 앞에 학이 춤추는도다. 모두가 꿈이요, 꿈이 아니요, 꿈
깨니 또 꿈이요, 깨인 꿈도 꿈이로다. 만상이 적연히 부동한데 뜰에 나서 우러러보니 봉도 학도 간 곳 없고 드높은 하늘엔 별만
총총히 빛나고, 땅 위에는 신음하는 거위의 꿈만이 그윽하고 아름답게 깊었고녀― 꿈은 깨어 무엇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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