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歷史. 文化參考

[스크랩] 붓으로 지은 서궐...

鶴山 徐 仁 2006. 1. 20. 19:39
작년 가을은 유독 민화 전시회가 많이 열렸던 해입니다.
미술전문가가 아니라도 누구나 쉽게 감상하고, 마치 입던 옷을 다시 입는것 처럼 관람자로 하여금  살며시 미소짓게 하는 민화 감상은 언제나 즐거운 일입니다.
 
가장 큰 전시회는 옛 경희궁 자리에 들어선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아하 우리 민화' 였습니다. 그 전시회는 다양한 민화들을 보여주었던 전시회였고 특히 일인 학자 '야나기'가 수집한 민화와 이미 위작 시비에 휘말린 다른 그림들을 감상 할 수 있는 쉽지 않은 기회였습니다.
 
걸출한 어해도가 볼거리였던 청계천 새물맞이 기념 민화 물고기 그림전(경기여고 경운박물관)도 볼 만 했으며, 현대 창작민화의 현주소를 가늠하게 하는 좋은 작품이 많이 걸렸던 '한국민화작가회'의 정기전도 민화애호가들에겐 좋은 기회였을것입니다. 하지만 전 개인적으로 같은 시기에 인사동에서  파인 송규태(芭人 宋圭台 73) 화백이 1996년 이후 10년만에 연 개인전이 가장 인상적이였습니다. 왜냐하면 '붓으로 지은 서궐이여' 라는 전시회 명칭이 붙은 '서궐도'를 복원, 전시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우리 서울에 궁궐이 몇개나 있냐는 조금 짓꾸은 질문을 하곤 합니다. 그러면 대답하는 분들중 대부분은 3~4개를 대답합니다. 경복궁, 덕수궁, 창경궁, 그리고 조금 관심있는 분들이 창덕궁까지 말씀 하십니다. 하지만 나머지 하나 '경희궁'까지 대답하는 분은 거의 없습니다.
 
'경희궁' 역사의 오욕을 가장 많이 받아 거의 사라졌었고 90년대부터 조금씩 복원하고 있지만 겨우 10%도 채 복원이 안된 비운의 궁궐.  창덕궁, 창경궁를 동궐이라 부르기에 서궐이라 불리었던 궁궐, 하지만 경복궁의 이궁으로서 자신의 역사적 소임을 다했던 궁궐.  그 서궐의 전체 모습을 경희궁 궁내 전각 배치의 개략적 위치 개요가 흑백 먹선으로만 기록된 '서궐도안'(西闕圖案)을 근거로 송 화백이 동궐도(창덕궁과 창경궁을 아우른 궁궐그림)를 모사 복원한 경험을 더해 가로 4미터 세로 1.3미터의 대작으로 재현한 것입니다.
   

 

                                                <서궐도안>  출처: ssong500.com
 
 
경희궁은 광화문 구세군 회관 옆 역사박물관 뒤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원래 정문인 흥화문은 지금 구세군 회관 앞에 있었으므로 역사박물관도 전부 경희궁 부지 였단걸 알 수 있습니다.
 
사적 제271호인 경희궁은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가 살았던 곳으로, 새문안 대궐 또는 서궐이라 불리기도 했는데 그 후 왕족의 사저로 쓰이다가 광해군 8년(1616)에 이 새문안 대궐 자리에 왕기(王氣)가 있어 이를 눌러 없애기 위해 별궁을 짓고 경덕궁이라 하였으나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은 축출된후 인조가 즉위하였을 때 창덕궁과 창경궁은 인조반정과 이괄(李适)의 난으로 모두 소실되었기 때문에 인조는 즉위 후 이 궁에서 정사를 보았습니다.  1760년(영조 36) 경덕궁이던 궁명을 경희궁으로 고쳤는데, 그것은 원종의 시호가 경덕(敬德)이므로 같은 음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후 순조 29년(1829)에 화재로 대부분이 소실되어 1831년에 중건 하였습니다. 
 
경희궁은 경사진 야산의 지형을 이용하여 지은 궁궐로 건축적으로나 예술적으로나 그 아름다움이 뛰어났던 궁으로 1905년, 고종이 덕수궁과 이어지는 구름다리를 만들정도로 규모도 상당했으나 1908년 일본인들에 의해 경성중학교가 세워지면서 중심부 건물들이 헐려나갔습니다.  당시의 흥화문, 숭정정을 비롯한 여러 전각들은 곳곳으로 이건되어 지금의 복원공사가 시작되기 전에는 궁궐지 자체가 매몰되어 버릴 정도로 궁궐의 모습을 완전히 잃어버렸었습니다. 그 후 1987년 서울고교가 강남으로 이전한 뒤 시립미술관 경희궁 분관 및 역사박물관과 함께 복원한 흥화문, 숭정전, 자정전 등과 함께 공원으로 가꾸어져 있습니다.
 

 

역사박물관 앞 <금천교>
 
 
아마 눈밝으신 분들은 역사박물관 앞에 조그마한 다리가 복원되어 있는걸 보신적이 있으실겁니다. 이 다리는 금천교로서 보통 궁궐이나 왕릉지에서 볼 수 있는 다리로 궁의 정문 바로 안쪽에 만들어 놓습니다. 궁에서 왕기가 밖으로 나가는걸 차단하고 외부의 불순한 기운이 넘어오는걸 막기위함인데, 주요하게는 당시 목조건물의 가장 큰 위험이 화기를 제어하기 위한 목적이 가장 컸을것 입니다. 따라서 금천교 바로 앞이 원래 궁의 정문이었단걸 알 수 있습니다.
 

 
<흥화문>
 
 
흥화문은 경희궁의 정문입니다. 다른 궁의 정문과 마찬가지로 흥화문도 광화문 돈화문 홍화문처럼 이름자에 "화"자가 들어가 있는데 이는 왕이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을 감화시키고 제도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흥화문은 일제 떄 이등박문사로 옮겨지는 수난을 당하는데 당시 박문사는 장충동 남산기슭에 있었다고 합니다. 해방 후 박문사가 없어지면서 영빈관이 들어서고 다시 신라호텔이 들어서 호텔 정문으로 사용되는 기가막힌 역사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1988년에야 다 망가진 옛 집 경희궁터로 돌아왔으나 이미 옛 자리는 일부 도로가 되고 구세군회관이 들어서 있어서 하는 수 없이 옛 서울고교의 교문이 있던 지금 자리로 옮겨 앉았습니다. 그래서 구세군회관 앞에는 옛 흥화문 터를 알리는 표지석이 서 있습니다.
 
 

 

출처: ssong500.com

 

대개 궁의 정문이 중층인데 비해 흥화문 지붕이 단층인 이유는 경희궁이 이궁으로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한경지략'에는 명필 이신이 흥화문의 현판을 썼다고 되어 있으나 현재 걸려 있는 것은 그의 것이 아닙니다. 당시 글씨의 광채가 밤을 밝혔다고 해서 경희궁을 일명 "야조개대궐"이라 불렸다고 합니다.


 

 

<숭정전> 
 
 
숭정전의 정문인 숭정문은 2층으로 된 넓은 월대위에 세워져 있어 경사진 지형을 잘 극복하였습니다. 정전인 숭정전도 경복궁의 정전인 근정전이나 창덕궁의 인정전등과 같이 친숙하지는 않지만 경종이 1720년 이곳에서 즉위한 것을 비롯해 정조, 헌종이 이곳에서 즉위식을 갖는 등 그 내력은 결코 만만치가 않은 곳입니다.
 

 

<자정전>
 
경희궁의 편전으로 이용되던 곳인 자정전은 숭정전 뒤에 위치하며 좌우 행각들이 경사진 지형을 계단식으로 자연스럽게 타고 있어 야산에 지어진 궁궐의 특징을 최대한 살리고 있습니다.
 
일본인들에게 상처입지 않은 궁궐이 어디 있겠습니까 마는 유독 경희궁은 그 도가 지나쳤습니다. 얼마전 모 신문에서 경희궁에 얽힌 기막힌 기사 하나가 실렸습니다. 바로 일본이 궁궐에다가 미군의 폭격을 피하기 위한 벙커를 만들었다는 기사입니다.
 
 
 

 

 
서울시가 1980년대 중반 경희궁 복원 때 발견했다는 벙커의 위치는 경희궁 동편에 있는 서울역사박물관 주차장 인근의 둔덕 아래. 철제 울타리에 막혀 일반인 접근은 불가능합니다. 
 
벙커 입구는 두께 20㎝의 육중한 철문. 입구 양측의 방은 관리원 휴식처 및 비품 보관소로 사용되고 있고 계단을 따라 반 층 가량 내려가면 좁고 긴 통로에 부서진 벽의 잔해와 유리조각들이 흩어져 있으며 한참을 들어가면 무너진 채 막혔있다고 합니다.  전체 넓이 280평, 평균 폭 7m, 길이는 105m쯤 되고 콘크리트 외벽은 두께가 3m나 된다고 합니다. 원래 이곳은 왕과 왕비의 침전(寢殿)이던 융복전(隆福殿)과 회상전(會祥殿)이 있던 자리로, 왕기(王氣)를 차단하기 위해 만들었던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본의 경희궁 파괴사를 볼때 오늘날의 서궐도의 복원은 한 민화화가의 혼신의 역작이기 이전에 아픈 상처를 다시금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우리 민족의 결의이자 다짐이기에 가슴 뭉클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서궐도의 궁궐 전각 부분도> 
 
 
민화가 아니면 도저히 불가능한 이런 작업은, 민화가 단순한 그림이기 이전에 민중 혼을 그린 그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그림을 보는 우리들은 죽었던 궁궐 하나가 아름답게 부활하는 모습을 벅찬 감동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비록 1500여채나 되었던 전각을 다 복원하지 못했지만 경희궁터가 당당히 서있는 저 역사박물관 처럼 다시금 우리의 곁으로 온전히 돌아와 이제 서울의 궁궐이 몇이냐는 질문에 누구나가 '5곳 입니다' 라도 정확히 대답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005. 1 . 19
 
 
 
금강안金剛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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