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간 날때마다 옛날
신문 읽는 재미에 폭 빠졌습니다. 주로 독립신문과 대한매일신보를 읽고 있는데요. 참 신기하고 재미가 쏠쏠합니다.
어쩌면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게 그다지도 많은 지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말과 표기법은 아주 크게 변했던데요. 저로서도 거의 짐작하기 힘든 표현들도 적지 않습니다.
아무튼, 지난번에는 <대한매일신보>에 났던 “자유론”을 옮겨 봤었는데요, 이번에는1899년 8월19일자 <독립신문>의 1면에서 3면에 걸쳐 길게 서술된 “교회론”을 옮겨보겠습니다. 뜻밖에도 재미있는 내용을 많이 발견하실 수 있을 겁니다. 제가 발견한 내용은 옮긴 본문 아래 이미 적어 두었습니다. 제가 놓친 게 있으면 좀 지적해 주시지요. 지저분한 사설이 필요없으신 분들은 파란 글씨만 읽으시면 되시겠습니다.^^ (평)
교회론
어떤
친구가 교회론을 지어서 본사에 보냈는데 식견이 높고 밝을 뿐 아니라 우리 신문에서는 교회를 논의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그 논의의 대강을 아래에
기재합니다.
교회는
곧 도학의 이치를 강의하고 연마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교회는 나라 백성의 완고하고 좋지 않은 구습을 버리게 하고 음란한 풍속을 고치게 하고 신의를 숭상하고 문명을
진보하게 하는 근본입니다. 옛 성현의 말씀에 나라에 도가 있으면 정치가 흥왕하고 나라에 도가 없으면 사직이
위태롭게 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니 그 나라의 성하고 쇠하는 것은 교회의 있고 없음을 보면 미리
헤아릴 수가 있습니다. 도는 곧 길입니다. 그러니 길이 없는 나라에
어떻게 다닐 수 있고, 거기서 무슨 일을 어떻게 경영할 수
있겠습니까?
서양
여러나라에는 유대교와 로마국교와 예수 신교와 모하멧의 회교가 있어서 각각 그 나라의 종교로 삼고 있습니다.
각 종교의 규모는 서로 다르지만 천지 만물의 주재가 되시는 상제를 다 같이 숭배합니다. 그러므로 나라마다 상제께 예배하…
독립신문에는 정말로 종교
이야기가 별로 많지 않습니다. 신문 만들던 사람들의 많은 수가 그리스도교인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좀 뜻밖입니다. 정교 분리
원칙을 지키려고 했던 것일까요? 그러나 이 논설을 쓴 사람은 종교가 바르고 튼튼해야 정치도 바르고
튼튼해진다고 이야기합니다. 정교 일치까지는 아니지만 그 둘 사이에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이지요.
교회의 사회적 영향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도(道)’는 곧 ‘길’이라는 풀이가 이 때도
있었군요.
서양을 ‘태서(泰西)’라고 불렀군요. 국문학사 시간에 들어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김억과 염상섭 등이 서양 사람들의 문학작품을 번역해 소개하려고 만들었던 주간문예잡지 <태서문예신보 (1918-1919)>의 ‘태서’도 같은 말입니다. 클 태자를 붙였습니다. 근대 문명이 먼저 발달한 서양이 부러워서 그랬을까요? 그런 건 아닌 것 같구요.
태서라는 말이 생긴 유래는 16세기 말, 마태오 리치
등의 예수회 선교사들이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에 도착했는데, 이들은 '타클라마칸 사막을 건너
아주 멀리 서쪽에서 왔다’는 뜻으로
태서인(泰西人)이라고 불렸던 것이 시초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 관행이 한국에서는 20세기 전반까지 계속된 것이지요.
또 유대교를
유태(猶太)교라고 부른
점, 가톨릭을 로마국교라고 부른 점, 로마를 라마(羅馬)라고 부른
점, 모하멧을 ‘모한맥(한자표기를 짐작조차 할 수
없슴^^)’이라고 부른 점, 그리고 하나님을 ‘상제(上帝)’라고 부른 점이 특이합니다. 모두가 한자를 한국식 한자음으로 읽은 다음 그대로 한글로 썼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는 성전이 있어서 임금이라도 혼인할 때에는 반드시 성전에 들어가 대례를 행합니다. 프랑스와
메국의 대통령은 암만 재주와 학식이뛰어난 재상이라도 교회를 믿지 않는 사람은 통령의 지위에 오를 수 없습니다. 또 교사와 목사가 있어서 가는 곳마다 도리를 가르치기 때문에 교회가 점점 흥왕하여 천하 만국에 거의 전파되었습니다.
동양에는
신교와 불교와 브라만교와 유교와 선교가 있지만 규모가 각각 다를 뿐 아니라 상제를 숭배하는 이치에 어둡고 쓸데 없이 우상에게
제사합니다.
유교에는 효제 충신과 삼강 오상의 예절을 말씀하지만 실상으로 행하는 이가
없습니다.
옛적에
공자께서는 아무쪼록 도를 행하고자 하셔서 중원 천하에 두루 다니시다가 진채의 곤액을 당 하셨습니다.
맹자께서는 아무쪼록 왕도를 행하게 하고 백성을 바로 세우고 가르치시려고 제선왕과 양혜왕을 찾아가서
만나셨습니다. 그러나 지금 학자님들과 산림네들은 임금께서 백성 다스리시기를 위해서 여러번 부르셔도 나오지
아니하고 그저 산중에 앉아서 명예…
프랑스를
법국(法國)이라고
불렀고, 메국은 그때부터 이미 미국(美國)이라고
불렸군요. ‘닐헤마다’의 뜻이 무엇인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일단 ‘가는 곳마다’로 풀기는
했습니다만.
신교는 요즘의 개신교가
아니라 일본의 신도(神道)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삼강 ‘오륜(五倫)’을 삼강 ‘오상(五常)’이라고도 불렀군요.
‘진채의 곤욕’이란 공자가 제도를 위해 세상을 두루 다니시다가
진채(陣菜)라는
곳에서 7일 동안이나 밥을 굶어야 했던 것을 가리킵니다. 산림이란 ‘산속의 유학자들’이라는 뜻인 것
같습니다.
…나 취하고, 벼슬이나 주시면 할줄 알고, 제자들이
무엇이나 선물하면 의례히 받을 것으로 알면서도, 나라가 곤란한 것과 백성이 도탄에 빠진 것을 마치 초나라나
월나라의 일같이 생각하니 실상은 공자 맹자께 죄인들입니다.
공자님과
맹자님께서는 문하 제자들을 대하실 때마다 항상 인의예지 효제충신 삼강오상을 말씀하시고 시종 수신제가 치국 평천하의 도를
강론하셨습니다.
혹 누구를 대하여 양반 논란과 편색 가르기와 당파 싸움과 쓸데없는 시비나 일으키는 것과 벼슬 연구하라고 하셨다는 말씀은
들어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요즘 선비들은 공자님과 맹자님의 도학을 어떻게 공부하였는지 인의예지 효제충신 삼강오상 수신제가 치국평천하의 도를 투철히 알아서 능통하게 행한다는
이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저 양반 논란이나 편색 다툼이나 당파 싸움이나 권력 다툼이나 쓸데 없는 시비 일으키기와 벼슬 도둑질 하는데만 힘을
씁니다. 공맹의 도를 받들어 지키면서 제세 안민할 생각은 꿈에도 갖지 않고 몽매한 창생들을 가르치는 데에는
전혀 뜻을 두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 교회가 어찌 흥황하기에
이…
나라의 곤란과 백성의
도탄을 ‘초월(楚越) 같이 본다’는 표현이 재미있습니다. ‘초월’이라는 표현에는 두 가지 뜻이 있었습니다. 1. 서로 원수같이 대한다. 2. 아무 관계 없는 것으로 여긴다. 여기서는 두번째 뜻이 더 가깝겠군요. 또, 같은 새김의
한자로 초월(超越)이라는 말도 있잖습니까? 독립신문은
원래 한글 전용
신문이지만 이렇게 엉뚱한 뜻으로 혼동될 수 있는 경우에는 한자를 썼군요.
냉소와 비난의 냄새가
물씬나는 내용입니다. 요즘도 이런 비난 받아 싼 사람들이 꽤 있지요? 양반 논란… 편 가르기… 당파 싸움… 시비 일으키기…
감투 쓸 연구… ^^
유교를 따르는 모임을 ‘교회(敎會)’라고 부른 것이 특이합니다. 당시로서는 모든 종교 모임을 다 교회라고 불렀던 것일까요? 요즘은 그리스도교 모임만 교회라고 부르게 됐습니다만.
…
르겠습니까? 대한 사람의 도학은 입으로 이야기만 하는 교회요 몸소 밟아 행하는
교회가 아닙니다.
오늘날
세계 인구를 합해 보면 15조가 넘습니다. 그중에 구세주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9백여조가 되고, 유불선 삼교를 좇는 이는 합하여 4백여조에 지나지 못하고, 회교를 믿는 이는 8십조
가량입니다. 교도의 많고 적은 것만 보아도 교회의 대소와 성쇠를 알 수 있고, 교회의 성쇠를 보면 그 나라의 다스리는 질서나 어지러운 난리를 가히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대한
사람들이 항상 하는 말이 유도를 높히기 위해 공자님과 맹자님의 사당에 봄 가을로 제례를 행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경향 각처에서 선비들이 행한다는 일을 듣거나 보면 알찬 마음으로 공맹의 도를 받들어 뚜렷하게 행하는 실적은
일호반점 만큼도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사 지낼 때에 제관 노릇한다는 사람들이 지극한 정성으로 전조
단발하고 목욕 재계 하였다는 말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습니다. 비록 그 제관 선비들이 각각 자기 집에서 작은
제사를 지낼 때에라도 제사 받는 이의 생전 행적을 지극한 정성으로 생각하지 않거나 제사를 드리는
법과…
말만 하는 교회와 행동
하는 교회의 대비가 백년전 유교 교회에도 적용됐었군요.
당시에는 수를 나타내는
한자의 뜻이 확정되지 않았나 봅니다. 요즘 같으면 ‘억(億)’이라고 쓸 것을 ‘조(兆)’라고 썼습니다. 또 세계 인구가 15조라고 하면서도
그리스도교 인구가 9백여조, 유불선교 인구가 4백여조, 회교 인구가 8십조라고 한 것은
이상합니다. 글쓴이의 착각이었을까요? 독립신문사가 잘못 인쇄한
것일까요? 그랬을 리는 없는 것 같은데… 그리고,
교회의 대소성쇠와 나라의 치란을 연결시킨 것이 재미있습니다만, 요즘도
그럴까요?
‘유도’란 유교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일호반점(一毫半點)… ‘털끝 하나 혹은 점의 반’이라는 뜻이겠지요. 목욕재계(沐浴齋戒)라는 말은 지금도 자주 쓰지만 ‘전조단발(剪爪斷髮)’은 거의 쓰지 않습니다. ‘손톱을 깍고 머리카락을 자른다’는 뜻인데, 심청전에 나왔던 표현인 것 같습니다.
…예절이 바르지 않으면 그 영혼이 반드시 은근히
화를 내면서 제사를 흠향하지 않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물며 천추에 혈식하시는 공맹 같으신 큰
성현의 높으신 신령께서 그런 제사를 받으시겠습니까? 공자님과 맹자님의 본래 뜻은 창생을 위하여 근심하셔서
그들을 교화시키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얕은 의견으로는 동양에도 본래 도가 크게 있었지만 요즘은 그대로
행하는 이가 별로 없다고 하겠습니다.
대개
도라고 하는 것은 위로는 상제 나라의 이치를 밝히고 가운데로는 사람의 행실을 닦아서 삼강 오상의 일을 베풀게 하고 아래로는 사람이 죽은 후에
어디로 가며 혼령이 어떻게 될 것인지 명백히 알리려고 마련하는 것인데,
그래야만 원만한 교회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천추(千秋)의
혈식(血食)’은 ‘오랜 기간 동안 짐승을 잡아 드리는 제사를 받는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어려운 한자 관용구가 자주 나오는 것과 유교 비판의 내용이
신랄하면서도 애정과 기대감이 얽혀 있는 것을 보니까 글쓴이는 아마도 한문에 조예가 깊은 유학자가 아니었을까 짐작해
봅니다.
종교의 내용을 산뜻하게
삼분법으로 나눠 정리했습니다. 위로는… 가운데로는… 아래로는… ^^
‘상제 나라’라는 표현은 그리스도교의 ‘하나님 나라’라는 표현과 일치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 글쓴이는 유교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새로 그리스도교에 귀의해 공부하면서, 유교와 그리스도교를
접목시키려고 노력 중이었을까요?
글쓴이의 주장은 서양 그리스도 교회를 본받아서 한국 유교 교회의 폐단을 시정하자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교회’론을 정리하면서 불교 이야기가 전혀 나오지 않은 것이 특이하군요. 불교 모임은 ‘교회’라고 불리지 않았기 때문일까요? 그 까닭이 궁금합니다.
평미레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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