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유화
김소월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이 피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없이 꽃이 지네
산에 피는 꽃은 갈 봄 여름없이 혼자서 핍니다.
산에 핀 꽃들을 보면, 대개가 무리를 지어 피어있습니다.
그래도 그 꽃들은 혼자서 핀 것 처럼 느껴집니다.
제법 키가 큰 꽃들은 무리를 지어 어깨를 겨누어 피고 있습니다,
제 몫 제 몫으로 피고 있지요.
꽃들은 각각 보고 싶은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있습니다.
간혹 같은 쪽을 보고 있는 꽃들도 있지만, 그 꽃들은 멀리 떨어져있습니다.
멀리서 같은 곳을 보고 있지요.
가까이에서 핀 꽃들은 같은 데를 보지 않습니다.
각각 본 곳을 각각 떠듭니다.
꽃들은 옆에 꽃이 본 것을 들으며, 공감하기도 하지만, 이해를 못하기도 합니다.
옆에 있다고 해서 꼭 같은 곳을 보지도, 들었다고 해서 꼭 알지도 않는 것이니깐요.
산에 산에는 키 큰 꽃들이 피고 있습니다.
갈 봄 여름 꽃이 피고 있습니다
키가 작은 꽃들은 좀 흩어져 피어있습니다.
그래서 또 혼자 피어있지요.
혼자인데 개들은 멍하지는 않습니다. 얼마나 타실타실한지....
땅에 딱 붙어서 꽃잎이나 잎에다 흙 한덩이 쯤은 얹어놓고, 턱 걸터 앉은 폼이지요.
그러고는 혼자 피어있습니다.
키 작은 꽃들은 이웃할 수 없습니다.
그저 고개를 숙이고 흙과 나누는 이야기가 전부입니다.
흙이 해주는 이야기는 키 작은 꽃의 뿌리 이야기입니다.
키 작은 꽃은 제 뿌리가 어디로 뻗어있는지 모릅니다.
흙의 이야기를 듣느라, 땅에 코를 박고 있습니다. 제 뿌리 이야기가 재미있습니다.
혹, 제 뿌리가 돌에 걸렸다고도 하고
지금은 푹 쉬고 있다는 이야기도 듣습니다.
제 뿌리인데도 아픈 것도, 기분이 좋은 것도 모를 때도 있습니다.
산에 산에는 키가 작은 꽃도 핍니다.
갈 봄 여름없이 꽃이 핍니다.
꽃보러 새도 가고, 나도 가고, 산에 꽃보러 갑니다.
꽃
서정주
가신이들의 헐덕이든 숨결로
곱게곱게 씻기운 꽃이 피었다
흐트러진 머리털 그냥 그대로
그 몸짓 그음성 그냥 그대로
옛사람의 노래는 여기 있어라
오, 그 기름묻은 머리박 낱낱이 더워
땀흘리고 간 옛사람들의
노래소리는 하늘우에 있어라
쉬여 가지 벗이여 쉬여서 가자
여기 새로 핀 크낙한 꽃 그늘에
벗이여 우리도 쉬어서 가자
만나는 샘물마다 목을 축이며
이끼 낀 바위돌에 택을 고이고
자칫하면 다시 못 볼 하눌을 보자
꽃
박두진
이는 먼
해와 달의 속삼힘
비밀한 울음
한번만의 어느날의
아픈 피 흘림
먼 별에서 별에로의
길섶 위에 떨궈진
다시는 못 돌이킬
엇갈림의 핏방울
꺼질 듯
보드라운
황홀한 한 떨기의
아름다운
정적
펼치면 일렁이는
사랑의
호심아
너는
이제도 눈을 들어
여기
암담한
땅위
소란하나 오리려
뼈에 저려 사무치는
고독의 굽이위에
처절한 벼랑 위에
입술을 열고
그
죽어도 못 잊히올
언젠가는 한 번은
허릴 굽혀 맞대올
먼 너의
해와 달의 입술의
입맞춤을 기다려
떨고 있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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