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져 있던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가족을 소달구지에 태우로 자신은 황소를 끌고 따뜻하여 평화와 행복이 있을 남쪽 나라로 함께 가는
광경을 그렸다.
길 떠나는 가족 29.5 x
64.5cm,1954년
그림이 될 순간만 포착하여 어떻게 할 것인지 계산 되어 그려졌다. 단붓질로 끝을 내 화면은 깔끔하고 경쾌한 리듬 감마저
느껴진다.
소와 어린이 29.8 x64.4cm
전체 화면에서 느껴지는 것은 어수선함과 괴로움이다. 지친소의 모습에서 당시 우리 상황이 그려진다.
소와 새와 게
32.5 x 49.8cm, 1954년
다른 그림과는 느낌이 다른 그림이다. 전반적으로 화사함이 느껴지고 벚꽃이 지는 모습이 봄이 지나감을 아쉬워 하는 모습이다. 한편으로
흰새는 우리의 모습이고 벚꽃은 일본으로 비유된 희망의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벚꽃위의 새 49
x31.3cm
가족을 그린 그림은 헤어져 있는 가족이 다시 하나가 되기를
바라는 이중섭의 염원이 서린 것이다. 민족 대다수가 겪는 비극을 대변하고자 하는 심정을 지녔던 것으로 보인다.
닭과 가족
29.8 x64.4cm
물고기와 노는 아이들 10.5 x12.5cm
고려시대 청자나 조선 시대 초기 분청사기에 베풀어진
상감기법이나 같은 방법으로 금속 그릇에 적용된 입사기법을 연상하게 하는 기법으로 된 그림들이다.
해와 아이들 32.6 x
49cm,1952~3년
물고기와 노는 두 아이 41.8 x30.5cm
부부 51.5 x35.5cm,1953년
무렵
두마리의 봉황이
서로 닿으려고 애쓰는 모습을 그렸다. 그러나 위의 새는 화면 너머의 무었인가에 긴박한 듯 매달려 더 내려오기는 불가능하고, 아래의 새는 다리를
지면에서 떼기 힘든 듯하다. 후자의 그림은 가로줄을 겹쳐 이러한 분위기를 더욱 강화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림은 제목과 달리 부부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남북한에 관한 것이라고 이중섭이 직접 말했다는 증언이 있다.
부부 41.5 x28.8cm,1954년 무렵(과천
국립 현대 미술관 소장)
춤추는 가족 22.7 x
30.4cm
복숭아꽃이 수 놓여지듯한 네모 틀 안에 구름에 쌓인 해를
사이에 두고 봉환을 닮은 파란 숫새와 붉은 암새가 춤을 추는듯한 전례가 없었던 독특한 구성의 그림이다.
환희 29.5
x41cm,1955년
즐겁게 노는듯하나 전체의 분위기가 암울함을 나타내어 준다.
아버지와 두아들 30.5 x
41.5cm
과수원의 가족과
아이들 20.3 x 32.8cm
가족 41.6 x 28.9cm
가족을 그린 그림들에서 느껴는 공통점은 경쾌함이다. 가족이란 화기애애함이 넘치는 인간관계임을 강조했다.
가족과 비둘기
29 x 40.3cm, 1956년 무렵
서로 싸우는 두 마리의 소 중에서 오른쪽의 소가
패해서 완전히 넘어지려고 하고 있는 상황의 그림이다. 마치 삶의 허무성을 보여주는 것 같다.
싸우는 소 27.5 x
39.5cm, 1955년
두 마리의 닭이 서로 싸우고자 하는 둣 덤벼드는
설정이다.고구려 무덤벽화에 나타나는 사신도의 유현한 색채, 대상이 서로 조응하는 조형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투계 29 x
42cm
왼손과 오른손의 앞뒤를 출렁이듯 휘감은 연기 같은 흰선들이 등장하는 독특한 그림이다. 진주에서 박생광과 어울리던 시절 그 친구 청담스님을
만나 느낀 바를 그린 것으로 보이며 불교적인 분위기가 강하다.
손 18.4 x 32.5cm
1954년
아이가 새를 타는 것으로 설정해서 환상적이기도 하지만
사실적인 필치가 있으므로 월남하기 전에 북한에서 유행하던 사실주의적인 화풍이 엿보인다.
서귀포의 환상 56 x 92cm
1951년(용인 호암 미술관 소장)
이 그림은 전생시 월남해 서귀포에서 주민의 도움으로 살던
집에서 그린 것으로 지붕과 그 아래로 펼쳐지는 섬이 있는 바다의 고요하고 깨끗한 느낌을 그린 것이다.
섶섬이 보이는 풍경 41
x 71cm, 1951년
보름달이 뜬 맑고 푸르른 하늘을 배경으로 검게 세가닥으로 그어진 전깃줄에 앉아 친구를 찾아 모여드는 까마귀를 검은 물감을 묻힌 붓으로
간단히 그렸다. 몸 전체가 까맣다는 점 때문에 먹만으로 그리는 문인화의 소재로 어울리는 소재여서 자주 그려지기도 했다.
달과
까마귀 29 x 41.5cm, 1954년
왼쪽 위에는 머리에 물건을 인 여자가 눈이
내리는 속에 서 화면 앞으로 걸어 나오는 듯 하다. 오른쪽 거의 절반을 차지한 집의 창가에는 한 남자가 팔을 괴고 얼굴을 옆으로 두고 있다. 이
그림은 이중섭이 보고싶은 아내를 그리는 마음인 것 같다.
돌아오지 않는 강 20.2 x 16.4cm,
1956년
물이 있고 크고 작은 봉오리들이 있는 곳에 서 있는 천도복숭아를 중심으로 네 명의 남자아이가 노는 광경을 통하여 낙원의 느낌을
나타냈다.통영에 머물던 시기에 그려진 것으로 최재덕과 8,15 직후 서울에서 그렸던 벽화도 이런 소재였다고 한다.
도원 65
x 76cm, 1953년 무렵
은지화와 비슷한 설정과 느낌의 그림으로 이중섭이
그림 그리는 재료를 가리지 않고 그렸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노는 아이 36 x27cm
지붕과 나무가지가 화면의 아래와 위에 걸쳐 있는 사이로 꼬불꼬불한 길을 배치했다. 통영에 있는 남망산으로 오르는 길이다. 화면은 엷고
빠른 붓질로 되어 있어 독특한 운치를 자아낸다. 분청사기 표면에 베풀어진 귀얄 무늬가 연상되는 느낌이다. 속필의 서예미 탓이라
여겨진다.
길 41.5 x 28.8cm, 1953년
제목처럼 화사한 느낌의 그림으로 아이들이 강가에서 부유하면서
노는 듯한 설정이다.
봄의 어린이 32.6 x 49cm, 1952~3년
자전거를 타는 남자아이를 남자가 잘 탄다고 칭찬하는 듯한 광경을 중심으로 여자와 여자아이가 이를 부러워 하는 듯 하다. 이 설정은 친구인
구상의 집에 그의 아이들에게 자전거를 사주어서 모두 즐거워하는 모습을 부러워해 이를 그린것으로 보인다.
구상네 가족 32 x
49.5cm, 1955년
물고기와 노는 세 아이 25 x 37cm,
1952~3년
두터운 바탕칠 위에 선으로만 이미지가 묘사되어
있고 색 또한 칠해져 있지 않다. 물고기와 아이들의 동작을 한 화면에 담아 놓았다. 마치 꿈 속을 돌아다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기도
한다.
물고기와 노는 세 어린이 27 x 39.5cm
이 그림들은 병원을 오가던 그가 안정을 찾아 정릉에 머물던 시기에 그려졌다. 잎이 져버린 나무와 눈이 겨울임을 제시하고 나무위의 새들을
서로 긴밀하게 연관시켜 춥고 배고픈 겨울을 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나무와 달과 하얀
새 14.7 x 20.4cm, 1956년
통영에서 친구인 미술가 유강열의 호의로 그런대로 안정을
취하게 된 이중섭은 이 곳에서 그려진 일련의 풍경화중의 하나이다. 서귀포에서 그린 풍경화와 달리 통영에서 그려진 그림들은 굵고 빠른 필치가
특징인데, 통영에서 그려졌다는 소 그림들에도 엿보인다.
복사꽃이 핀 마을 29 x 41.2cm,
1953년
왼쪽으로 향한 얼굴과 오른쪽으로 향한 눈이 화면의 양쪽
모두를 지배하고 있다. 코와 입에 가해진 선연한 붉은 색과 넓은 배경의 붉은 노을을 층지게 하여 이런 느낌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황소 32.3 x 49.5cm, 1953년 무렵
소는 중등 과정부터 줄곧 즐겨 그리던 그림의 소재였다.
소를 통하여 자신의 감정은 물론 소로 상징되는 민족과 현실 에 대한 느낌을 그렸던 것으로 보인다. 자신을 돌봐준 의사에게 선물한 이 그림은 그의
배려로 건강하게 되었다는 감사의 마음을 그림에 보이는 평정한 모십의 소로 전달된 것으로 보인다. 뒷면에는 비둘기가 있는 <가족과
비둘기>가 그려져 있다.
소 29 x 40.3cm, 1956년 무렵
소의 머리에서 피가 나는데도 불구하고 쳐든 앞다리 한쪽과
넓게 벌린 뒷다리의 분위기로 보아 투혼이 사라지지 않은 소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소 27.5 x 41.5cm
검은 배경 앞에 소가 화면 너머에 있으리라
여겨지는 상대를 향해 뿔을 세우고 막 나가려 하고 있다.
흰 소 34.5 x 53.5cm, 1953년 무렵
회색조의 배경에 검고 희 붓질로 된 득의의
작품이다. 여기에서 검은 빛과 흰빛을 아울러 추사체와 같은 붓질로 여겨진다. 특히 머리와 꼬리 부분의 표현이 강하다.
흰 소
30 x 41.7cm, 1954년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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