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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史. 文化參考

한국인 첫 이슬람교도 추정 고려인 

鶴山 徐 仁 2005. 10. 10. 14:01
관리자 | 한국인 첫 이슬람교도 추정 고려인  2005.01.31 14:39

한국인 첫 이슬람교도 추정 고려인 '자마단'



손상하(주필리핀대사)





재작년 봄 중국 광주(廣州) 여행길에 박물관 진해루(鎭海樓)를 관람했는데, 진열품 가운데 아랍어로 음각된 묘비(墓碑)앞에서 뜻하지 않은 사실 하나를 발견하고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묘비의 주인이 고려인이라는 설명문 때문이었다. 원대아랍어교려인묘비(元代阿拉伯文高麗人墓碑)란 제목의 설명문에선 “(묘비) 주인은 자마단(刺馬丹)이고 고려인이다. 원(元) 지정(至正) 9년(1349)에 광서(廣西)에서 광주로와 이슬람 선현(先賢)의 묘를 참배하고, 병사후 선현 묘 곁에 안장되었다. 이는 광주가 아랍종교문화의 영향을 깊이 받았다는 증거이다”라고 적혀있었다.



이 사실이 맞다면 자마단은 660여년전에 한국인으로서 이슬람교도가 된 최초의 인물일지 모른다. 이로 보아 원나라 이전부터 중국 중남부 지방에 많은 한국인이 살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광주를 중심으로 한 광동성, 복건성 지역은 옛날부터 아랍과의 교류를 매개로 이슬람교가 광범위하게 수용되었으며, 당·송시기에 중국과 아랍간의 교역이 가장 번창하였다.



중국 중남부의 대표적 무역항인 광주, 천주(泉州)는 대외교역업무를 전담하는 시박사(市舶司)가 설치되어 있을 정도로 아랍상인과 외국인들이 북적거리는 국제항구였다. 지금도 이 지역에는 당시 이슬람사원(淸眞寺)이 남아있고, 천주문화박물관에는 당·송 및 그 이후에 만들어진 아랍어 묘비들이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다. 이는 해상실크로드로 알려진 해로(海路)를 통해 동서간 문화교류가 활발히 진행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해상실크로드의 주인공은 중국인과 아랍인 만이었을까? 당연히 한국인도 상당한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고려인 자마단이 국제도시인 광주까지 왔다는 사실과 해상실크로드를 통해 전래된 이슬람교의 신자가 되었다는 사실은 그런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마단 이전, 중국에서 한국인의 존재와 활동을 말해주는 것으로는 잘 알려진 대로 신라방과 장보고의 활동이다. 또한 일본 승려 '엔닌'이 구법차 당에 들어가 쓴 일기 가운데 나오는 신라인의 이야기는 한국인이 당나라에서 얼마나 광범하게 분포되어 있고 무슨 일에 종사하고 있었는지 단면을 보여준다.

송대(宋代)에는 고려사관(高麗使館)이라는 고려인 전용 영빈관을 강소성 영파(寧波)에 세웠을 정도로 양측간 교류와 접촉이 빈번하였다.



한·중간 교류 초기에는 연안해로를 따라 한반도와 가까운 요동반도, 산동성이 주요 한국인 도래지였으나 항해술의 발달에 따라 점차 남쪽으로 내려가 송·원대에는 자마단처럼 광주까지 활동범위를 넓힌 것으로 보인다. 자마단이 광서에서 광주로 왔다는 묘비 설명문으로 미루어 보아 그 당시 이미 많은 한국인이 중국 중남부 내륙 지방까지 진출하여 활동하였음이 확실시되고 그 중의 일부는 아랍인에 의해 유입되어 현지에서 유행하고 있는 이슬람교에 귀의할 만큼 국제화되었다고 추측된다. 이들은 해상실크로드의 주요 출발점인 광주나 천주에서 이미 수십, 수백만명을 헤아리는 아랍인들과 자연스럽게 접촉을 하게 되고, 무역거래를 하였을 것으로 쉽게 짐작된다. 이들 가운데 더러는 아랍인과 함께 중동까지 진출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필자가 사우디아라비아에 근무하던 때(1992-94), 걸프해 연안도시 담망 근처의 한 오아시스 마을에 조상이 한국인이라고 주장하는 사우디인이 있었는데 아마 그 주장은 사실을 것이다. 해상실크로드 전성시대에 한국인 역시 동서교류의 주역중 하나였다는 사실이 설득력을 갖는 대목이다.



중국은 다시 일어나고 있다. 양자강을 용의 몸에 비교하고 상해(上海)를 용의 눈이라고 보는 중국인들은 용이 눈을 뜨는 날 대륙이 요동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제 그 믿음을 의심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중국인들은 당제국이 세계의 중심이었듯이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 되는 것을 꿈꾸고 있다. '메이드 인 차이나'가 세계 구석구석을 누비고 있고 중국발 신(新)실크로드는 전방위로 급속히 뻗어나가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시대의 흐름에서 기회를 찾아야 한다. 고려인 자마단이 용감하게 뉴프런티어를 개척하였듯, 우리 모두 떨쳐 일어나 신실크로드의 출발점을 한반도로 동진(東進)시켜 새로운 다짐으로 2만달러시대를 확실하게 열자.

그것은 땀과 절제로만 가능하다. 요즘 일부 인사들이 동남아 관광지를 휩쓸며 현지인을 하인 부리듯 하는 자세로는 요원한 일이다.

 

 

 

자료출처: http://www.e-world.go.kr/외교통상부 지식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