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등학교 경쟁률 10:1 넘고
일제가 보통학교 증설 안해
7~8세 아이들까지 입학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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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입시경쟁의 첫 희생자는 16세 소년 강하일이었다. 그는 일 년 전 보통학교를 졸업했으나 상급학교 진학에 실패하고, 절치부심
입학시험을 준비한 ‘고보(중학) 재수생’이었다. 전국 평균 8:1을 상회하는 1938년 중등학교 입학시험의 중압감은 16세 소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가혹했다. 고사 일을 하루 앞둔 3월 11일, 초조와 흥분 속에서 시간을 보내던 강하일은 오후 3시경 정신을 잃고 집을 뛰쳐나갔다. 그는
가출 5시간 만에 금화산 근방에서 실성한 상태로 발견되었다. 이튿날, 그는 1년 동안 준비한 시험을 치르는 대신, 정신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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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시대에도 한국인의 교육열은 뜨거웠다. 입신양명을 위해 학문을 닦던 전통도 전통이려니와, 입에 풀칠하기조차 어려운 소작농 신세를
면하려면 공부 외에는 뾰족한 대안이 없었다. 1920년부터는 보통학교 취학 희망자가 정원의 두 배를 넘어섰다. 학교가 모자라서 취학 희망자를 다
수용할 수 없으면 학교를 더 지으면 그만이었지만, 총독부는 그보다 훨씬 간편한 방법을 고안했다. 태어나서 한 번도 수업을 받아보지 못한 7~8세
아이들에게 입학시험을 치르게 한 것이었다. 2:1의 경쟁을 뚫고 보통학교 명찰을 달기 위해서는 교사 앞에서 구두시험을 치러야 했다. “언니는
사과 세 개를 가지고 너는 사과 두 개를 가졌는데 둘을 합하면 몇 개가 되느냐?” “(백원짜리 지폐를 내보이며) 이것은 얼마짜리냐?” “다른
사람이 네 발등을 밟아 피가 나면 어떻게 할 테냐?” 1922년 3월 광주공립보통학교 입학식에서는 입학시험에 떨어진 400여명의 아이들이
운동장을 점거하고 하염없이 우는 일장 비극이 연출되기도 했다.
보통학교에 들어갔다고 입시경쟁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입시의 꽃’은 단연 중등학교 입시였다. 1937년 2만8172명의 지원자 중
합격자는 겨우 4489명이었다. 전국평균 6:1을 넘었고, 제일고보 10:1, 양정 11:1, 배재 13:1, 보성 12:1 등 서울시내 학교는
대부분 10:1을 상회했다. 겨우 12~13세 된 학생들이 적어도 4~5:1, 많으면 14~15:1의 살인적 입시 경쟁에 내몰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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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12월, 총독부 학무국은 입학난 해소를 위한 ‘획기적’ 조치를 단행했다. 소위 ‘입시준비교육철폐’라는 이 조치에서 총독부는
초등학교의 입시교육을 철폐하고, 입시과목을 축소하고, 입학시험에서 응용문제의 출제를 금지시켰다. 그러나 경쟁률이 10:1이 넘는 시험을 앞두고,
학교에서 입시교육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학생들이 입시준비를 하지 않을 것도 아니고, 시험과목을 축소한다고 해서 경쟁이 줄어들 리도 없었다.
더욱이 응용문제 출제 금지로 단편적 지식을 묻는 문제만이 출제되자 만점자가 속출했다. 일부 학교에서는 만점자가 입학정원보다 많아 ‘만점 중
만점’을 가려내야 하는 소동까지 벌어졌다. 결국 총독부의 ‘입시준비교육철폐’ 조치는 세인의 비웃음만 살 뿐 전혀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자존심을 구긴 총독부 학무국은 2년간의 연구 끝에 1936년 12월 또 하나의 ‘획기적인’ 입시 안을 내놓았다. 암기를 중심으로 한 주입식
교육을 철폐하고 각자의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계발교육(啓發敎育)’을 실시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거창한 구호와는 달리, 이 입시
안은 과거 ‘학력’ 한 가지만 가지고 평가하던 것을 ‘신체검정’, ‘학과시험’, ‘구두시험’, ‘출신학교장 소견표’ 4가지로 전형 요소를
다양화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소위 ‘계발교육’이 실시된 이후 학생들은 학과공부 외에 구두시험을 대비한 ‘군국주의 이념 학습’, 신체검정에
대비한 ‘체력단련’ 부담까지 떠안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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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제도의 개혁을 빙자한 통제로는 입학난을 해소할 수 없었다. 뜨거운 교육열에서 비롯된 입학난은 우수한 학교를 세우고 육성해야만 해결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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