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9.21 17:02] |
[쿠키사회] ○… 이숙자(26·가명)씨는 요즘 낮에는 주방에서 일하고,저녁 나절에는 싼 식당터를 찾아 발이 부르트도록 돌아다니지만 마냥 즐겁기만 하다. 실낱같은 희망조차 기대할 수 없었던 어둠속의 지난날을 생각하면 하루하루가 천국에서의 삶이기 때문이다. 결코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과거,하지만 새로운 출발을 앞두고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친구들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기꺼이 그 흔적을 털어놓았다. 이씨는 성매매방지법이 시행되기 1년 전인 2003년 성매매 현장에서 어렵게 빠져나와 성매매피해자 지원시설인 은성원에서 창업을 앞두고 있다. 다음은 이씨의 수기 전문 “이숙자입니다. 창업준비중입니다. 음식점을 하려고요. 맛으로 승부할 겁니다.” 요즘 사람들을 만나면 이렇게 말한다. 8월 중순부터 한달동안 여의도역과 영등포역에서 직접 만든 김밥을 팔았는데 반응이 좋아 자신감을 얻었다. 지난해 1년동안 한남직업전문학교 조리과정을 다니면서 한식 일식 양식 조리사 자격증도 땄고,3000만원을 대출받기로 돼 있어 가게 터를 보러 다니는 중이다. 김밥 몇줄 팔아본 게 음식 장사 경험의 전부고,자본도 적은데 뭐 그리 대수인가 하겠지만 내게는 특별하다. 그 동안은 늘 가명을 썼고,누구에게 무엇을 한다고 밝힐 수 없었다. 지금은 떠올리기도 싫지만,나는 2년 전까지만 해도 룸살롱에서 일하며 ‘2차(성매매)’를 나가는 아가씨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웃고 떠드는 여학생들을 보면 슬그머니 눈을 돌린다. “나도 저런 때가 있었는데…. 그때 왜 그랬을까?” 이런 후회기 밀려오기 때문이다. 성매매의 질곡에 빠져든 것은 중3 때인 열여섯살,아직 소녀티가 남아 있던 때였다. 집에서 가출해 ‘ 먹여주고 재워 주고 월급까지 준다’는 말에 속아 간 곳이 ‘포푸라마치’로 불리는 집창촌이었다. 채 자라지도 않은 몸으로 손님을 상대하다보니 골반에 염증이 생겨 쓰러져 정신을 잃기도 했고,임신중절수술까지 했다. 재작년 10월,정말 더는 못견디겠다는 생각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여성부(지금은 여성가족부)를 찾았다. 여성부에선 한소리회를 알려줬고,그곳의 도움으로 빠져나왔다. 이곳(은성원)에 와서 보니 나는 그래도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집창촌에서 도망쳤다 죽지 않을 만큼 매를 맞은 아이들이 적지 않았다. 죽을 힘을 다해 도망쳐나온 뒤에도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다시 돌아가는 아이들도 있다. 나도 이곳에 와서 처음 한달은 견디기 쉽지 않았지만 이를 악다물었다. 직업학교 다닐 때는 하루 8시간씩 이론공부와 실습하고,또 갈비집으로 아르바이트도 다니면서 아,이런게 사는 거구나 싶었다. 틈틈이 공부해 고입검정고시도 붙었다. 요즘 사실 잠이 잘 오지 않는다. 어떻게든 성공해 친구들에게 희망을 줘야 한다는 생각에 어깨가 무겁다. 그러면서도 가끔 혼자 웃는다. 부모님의 불화로 세살 때 언니와 함께 전남 보성에서 할머니 손에 자랐다. 어렸을 때 할머니가 밥상차리기 귀찮다고 하시면 “나중에 내가 크면 요리사 돼서 할머니 밥해줄게” 했었다.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 손녀 때문에 속이 까맣게 탔을 할머니를 모셔와 내가 차린 식당에서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 그러면 ‘아이구 내 새끼,다 컸구나,솜씨도 좋구나’ 하시면서 주름진 얼굴에 함박 웃음꽃이 피지 않을까. 제2의 삶을 살면서 정말 오래도록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 꿈을 펼치게 됐고 지난 10년간 들을 수 없었던,부모가 지어준 내 이름으로 불리는 것도 너무나 좋다. 식당을 하게 되면 하고픈 일도 많다. 한달에 한번은 무숙자들에게 식사대접도 하고,수입의 한몫을 떼서 은성원에서 새 삶을 준비하고 있는 친구들도 도울 생각이다. 또 그림과 영어회화도 배우고 싶다. 대입검정고시에도 도전해 공부도 더 하고 싶다. 그리고,성실한 사람 만나 결혼도 하고 싶다. 이런 것들을 하려면 가게가 정말 잘돼야 할텐데…. 아직 마수에서 벗어나지 못한 친구들에게 꼭 말하고 싶다. 일단 그곳에서 나와 새로운 삶에 도전해보라고.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계속 남아있을 때 어떻게 될 것인지 생각해본다면 답은 하나다. 하루빨리 그곳에서 나오는 것이다.김혜림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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