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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당국자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당시 면담에서 `부시 대통령의 재임기간에 (핵문제와 관련한) 협상은 무용하다'면서 이 같이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마음이 움직인 것은 6월10일 워싱턴에서 진행된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 간의 한미정상회담 결과였다고 이 당국자는 덧붙였다.
당시 북한도 한미정상회담의 진행상황을 `예민하게' 예의주시하고 있었으나, 회담 결과 부시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무력사용 불가 입장을 분명히 하고, 평화적 해결 의지를 분명히 한데다 `미스터 김정일'이라고 호칭한 게 주효했다는 것이다.
1주일후 정 장관은 김 위원장을 면담한 자리에서 한미정상회담을 위해 출국하는 노 대통령의 부담을 직접 설명하고 김 위원장의 결단을 촉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미정상회담 개최는 제3차 6자회담 중단 1년이 거의 다 가까워지면서, 미국내 대북 강경파들을 중심으로 대북 제재 불가피론이 힘을 얻고 있던 때 이뤄졌다.
정 장관은 면담에서 출국하는 노 대통령의 무거운 발걸음을 설명하고, 부시 대통령의 언급을 두 차례나 김 위원장에게 읽어 주었고, 4차 6자회담의 `7월 중 개최'를 끈질기게 설득했다고 이 당국자는 전했다.
그는 "6.10 한미정상회담이 북핵 타결에서 하나의 전환점이었다"고 평가했다.
이 당국자는 `9.19 베이징 공동성명' 채택과 관련, "앞으로도 가는 길이 쉽지는않겠지만 `9.19' 이전과 이후는 확연히 다르다"면서 "그 이전은 안갯속에서 막막했다면, 이제는 안개가 걷히고 목표를 분명히 보게 된 것"이라고 비유했다.
이 당국자는 북핵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마련한 것과 관련, "한미간의 신뢰와 남북간의 소통이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됐기 때문에 가능했으며, 당사자로서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고 우리의 역할을 할 수 있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서울에서 진행됐던 8.15 민족대축전 행사에서 북측은 베이징에서 남북간소통에 큰 문제가 있다면서 남한이 미국편을 너무 든다고 불만을 표출했으며, 이를놓고 양측은 심도깊게 의견을 나눠 오해를 푸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후문이다.
북한의 `선 경수로 제공' 요구로 북핵 문제의 앞날에 암운이 드리워 지고 있는가운데, 이 당국자는 "큰 틀의 합의는 만들어진 만큼 몇가지 언덕과 산이 있어도 극복하고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피력하기도 했다.
이 당국자는 "제일 중요한 안전장치는 조건의 성숙, 즉 `때가 익었다'는 것"이라며 "북한과 미국, 다른 참가국들로서도 북핵 문제와 동북아 문제에서, 특히 미국의 비확산 정책으로 보나 북한의 생존확보 전략으로 보나 타결과 결렬의 갈림길에서타결될 수 있는 때에 이르렀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조건성숙론'을 내세웠다.
끝으로 그는 "이번 북핵타결은 북한과 미국의 결단이 가장 중요했고, 중국의 깊이있는 외교력과 한국의 주체적 외교력이 역할을 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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