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
26일 베이징에서 열린 4차 6자회담은 8. 7일까지 13일 간의 지루한 줄다리기 협상을 하고서도 결국 ‘휴회한다’는 것에 합의하고 끝났다.
8월 말경에 다시 속개하기로 약속했으나, 이 약속 또한 북한 측의 일방적인 거부로 지켜지지 못했다. 이번에는 8. 22-9. 2일 간 실시된
연례 한미연합훈련인 ‘을지포커스’훈련이 그 거부 구실이 됐다.
을지훈련이 끝나자 북한 측은 9. 13일부터 4차 6자회담 속개를
제의하는 호의(?)를 베풀었다. 지금 한국을 비롯한 모든 회담 참가국들은 이번에는 어떤 ‘원칙적인 합의’가 이루어 질 것을 바라고 있다.
회담 참가국들 중에서, 특히 한국이 6자회담을 통한 북핵문제 해결을 낙관적으로 전망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서, 작년
6월 3차 6자회담을 끝내면서 3개월 후인 9월에 4차 6자회담을 갖기로 합의하자, 한국을 비롯한 참가국들은 6자회담을 통한 핵협상이 “실질적
협상의 길”로 들어서는 것으로 생각하며 3차 회담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회담 참가국들은 1차 6자회담(2003. 8) 후
6개월만에 2차 회담(2004. 2), 그리고 그 후 4개월 만에 3차 회담(2004. 6)을 가졌고 , 그 후 3개월 만인 9월에 4차 회담을
갖기로 하는 등 회담개최 간격이 점점 짧아지는 데 고무됐었고, 또 북한 측도 미국 측의 제시안을 “진지하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제부터 ‘실무협상’이 가능해 진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3차 6자회담 이후 4차 6자회담이
열리기까지는 무려 13개월이라는 오랜 기간의 우여곡절(迂餘曲折)을 겪어야 했다. 그 동안 북한은 금년 2. 10일‘핵무기보유’를 선언했고,
핵무기 보유량을 계속 늘리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그후 북한은 자신과 관련된‘북핵문제’를 ‘한반도 비핵지대화’ 문제로 비화시키면서 미국과
북한은 같은 핵보유국으로서 핵군축회담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문제를 협의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이번 4차
6자회담을 며칠 앞둔 7. 22일에는 외무성 대변인담화 형식으로 핵문제 해결을 위한 ‘평화체제’구축 필요성을 주장했으며, 미국 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차관보는 8. 17일(현지시간) 전략문제연구소(CSIS) 주관 6자회담 관련 강연에서 “7월 초 김계관과 회담
재개문제를 협의하면서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문제를 논의하였으며 6자회담에서도 평화협정 아이디어가 거론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현재 6자회담 자체의 향후 진로와 직결되어 있는 북한의 ‘평화적 핵이용권’주장도 이와 같은 북한이 지금까지 취해온 일연의 조치나 주장들과
같은 맥락(脈絡)에서 이해해야 한다. 북한이 지난 10여 년간 끈질기게 보여 온 기만성(欺瞞性)의 핵 관련 행적에 비추어 볼 때, ‘평화적
핵이용권’ 주장은 다름 아닌 ‘확인도 부인도 않는’(NCND) 핵무기보유 의지를 뜻하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이는 또한 북핵문제를‘한반도
비핵지대화’문제로 전환하고 북한의 군사적 위상을 핵보유국으로서 미국의 핵군축협상대상으로 주장할 수 있는 명분으로 삼기위한 책략이기도
하다.
북한의 ‘평화적 핵이용권’ 주장은 또한 한반도 ‘평화체제구축’ 또는 미·북한간의 평화협정체결 및 국교정상화 문제와도 연계될 뿐만 아니라,
주한미군철수, 한국에 대한‘핵우산’ 폐기 등 한국의 안보와 직결되는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다시 말해서 북한의 핵협상 전략은 핵문제
해결을 위한 전략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한반도를 군사적으로 손아귀에 넣으려는 대남전략의 큰 틀 속에서 추진되는 한반도 적화전략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
현재 북한의 이런 핵협상전략은 남북 ‘민족공조’ 선동과 남측의 직접·간접적인 북한 두둔 입장과 연계되면서 미국의 대북 협상입지를 난처하게
하고 있는 형국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지난 8. 11일 정동영 통일부장관은 “우리 입장에서는 농업용, 의료용, 발전 등 평화적 목적의 핵이용
권리는 북한이 마땅히 가져야 한다”고 말하면서 “이 부분에서 한국과 미국의 생각이 다르다”고까지 했다. 이는 한미공조관계의 본질적인 균열현상을
노출시킨 것으로서 6자회담의 전망뿐만 아니라 한미동맹의 신뢰기반 자체를 흔드는 매우 우려되는 발상이라 할 수 있다.
이번 2단게 4차 6자회담에서 설령 어떤 ‘원칙적인 합의’가 이뤄진다 하더라도 그것은 또 하나의 회담계속 명분이 될 수는 있어도 핵문제
해결의 열쇄가 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문제해결의 관건은 무엇보다 ① 북한을 제외한 5개 회담 참가국들이 한 목소리을 낼 수 있느냐 없느냐;
② 그 한 목소리가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어느 쪽 입장을 지지하느냐; ③ 한국이 어느 쪽에 서느냐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중에서 특히
한국의 역할이 문제다. 한국이 북핵문제 해결에 결정적인 요인일 수는 없겠지만, 6자회담의 협상분위기와 그 진로에는 중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한국이 미국의 대북협상전략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경우다. 이 경우는 우선 협상환경의 불확실성과 불안전성이 해소된다. 즉,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한·미·일 3각 공조관계가 분명해 지기 때문에 중국, 러시아가 미국에 협조하느냐 안하느냐의 문제로 압축될 수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북핵문제 때문에 미국과 끝가지 대결하는 것은 결코 그들의 국가이익에 유익하지 않다는 것을 계산할 수 있는 강대국들이다. 따라서 이 경우
중국과 러시아는 결국 미국에 협조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북핵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가능성이 다른 경우에 비해 상대적으로크다 할 수
있다.
둘째, 한국이 민족공조 차원에서 계속 북한 입장을 두둔하는 경우다. 이 경우는 협상환경이 매우 불확실하고 불안정해 지기 쉽다.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과 협력과 동시에 경쟁하는 나라들이다. 따라서 이들은 북핵문제 해결 보다는 한국의 입장을 그들 나름의 대미 견제 또는 경쟁전략
구사에 이용하는 데 더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 경우는 ①협상이 장기적으로 지연되거나, ② 미국의 강경조치를 초래하거나, 또는 ③
미국이 북핵문제의 완전한 해결을 포기하고 미봉책으로 타협하는 결과를 낳게 될 가능성이 있다.
우리 한국으로서는 북핵문제가 장기 지연되면서 북한의 핵보유가 기정사실화 되는 것도 문제지만, 미국이 북핵문제의 완전한 해결을 포기하고
미봉책으로 타협하는 입장을 취한다면, 이것 또한 북한의 핵보유를 기정사실화하는 것과 다를 바 없기때문에 이 두 경우는 모두 우리 한국에게는
치명적인 미래를 안겨주게 될 것이다
민족공조 열기와 함께 반미·반일 분위기는 더 급속히 확산될 것이며, 한미동맹관계와 한미일
3각협력체제는 와해되고 유사시 북한의 대남군사위협에 단호히 대처할 수 있는 입장도 못 될 것이다. 이는 바로 북한의 대남적화전략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한미동맹관계를 더 확고하게 다지고 ‘북핵불용’ 입장을 모든 회담 참가국들에게 분명히 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전략적 선택이다. 남북 민족공조라는 동포애 차원의 감상에 젖어 북핵문제 해결을 지연시키거나 북한의 핵보유를 기정사실화 하는 우(愚)를
범해서는 안 된다.
박 용 옥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전 국방부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