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歷史. 文化參考

[스크랩] 알고보면 재미있는 문화 이야기

鶴山 徐 仁 2005. 9. 5. 17:37

  언제부터인가 우리 것에 대한 관심들이 무척 고조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더구나 21세기가 시작되면서 지식화, 정보화 사회라는 기치로 새 시대가 열려감에 따라 혹시 그 대열에 뒤쳐질까를 걱정하면서도 정확하게 정보화나 지식화의 개념이 무엇인지를 몰라 적지 않게 당황도 했습니다. 그러나 21세기가 열린지 수년이 지났음에도 특별하게 달라진것은 없어 보이는것이 현실입니다.

 

 제가 느끼는 정보화와 지식화에 대한 개념은 소위 인류학자들이 비잉~ 둘러서 말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개념입니다. 실제로 정보화나 지식화가 대두되게 된 배경은 저 멀리 산업 혁명때로 거슬러 올라가야만 될것 같습니다.

 산업혁명 이전에는 1차 생산품인 농산품 위주로 사회가 꾸려져 갔었습니다. 내가 먹을것은 내가 생산하고 내가 사용할 도구도 내가 필요한 만큼만 만들어서 쓰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인구의 증가와 교통의 발달, 도시의 발달로 인하여 점차적으로 분업적 사회로 사회 구조의 변화가 이루어지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인간이 해야 할 역할도 나름대로 정해지게 된 것입니다. 복잡한 사회구조 속에서 농사를 지어 곡식을 생산하는 집단, 그리고 농사를 짓는 도구를 만드는 집단, 옷을 만드는 집단 등등 필요로 하는 공산품을 생산할 여러가지 시설을 필요로 하게 되었고 이러한 생산은 소규모 생산이 아닌 대량생산을 통한 공급으로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언제든지 구하여 사용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으며 이것이 바로 산업혁명을 이루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산업혁명이란 바로 물질문명의 산물로 볼 수 있습니다. 남들보다 더 많이 소유하고, 그 소유의 정도로 富의 정도를 가늠하며, 인간의 움직임이 귀찮아지고 이에 따라 인간의 움직임을 통해 얻을 수 있었던 작업들도 기계의 힘을 빌어 편리하게 생산을 하는 방향으로 노력을 하게 되고 각종 생활에 편리한 도구들을 발명하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마라톤 벌판에서 승전 소식을 죽어라고 달려가서 알려야 했었지만, 지금은 침대에 편히 누워서도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전투를 생중계를 통하여 알 수 있는 시대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모든 시스템은 인간의 편리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설정이 되어 발달하였으며 이 덕에 우리는 정말로 편한 세상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나이가 들어 연로하셔서 돌아가시게 된 부모의 마지막 소원이 한 겨울에 딸기를 드시고 싶다는 이야기였고 효자인 자식은 그 딸기를 구할 수 없어 전전긍긍 하는데 자식의 효를 어여삐 여긴 산신령이 손에 딸기를 가득 들고 나타나서 돌아가시기 직전의 부모님께 딸기를 드시도록 했다는 이야기는 이제는 사시사철 제철을 모르고 출하되는 과일로 인하여 우리의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해 줄수 있는 옛날 이야기로서의 가치를 잃어버린지 이미 오래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달을 보며 달나라에서는 계수나무 밑에서 옥토끼가 방아를 찧는다는 이야기도 인간이 달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는 우리에게서 멀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산업 혁명이후로 얻은것이 많은 반면 우리 인간 내면에서 살아 숨쉬던 진실로 인간적인 것들이 모두 고갈되어가면서 생각할 수 있는 만물의 영장이 점차 사이보그화 되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 인간들이 조금씩 느끼기 시작을 했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우리는 자연을 너무 가볍게 여겨왔고 길을 만든다고 산 허리를 자른다거나 공장을 짓는다고 초원을 뒤엎는등 자연 파괴에 대해 무관심으로 일관해 왔고 나도 모르게 저녁을 마치고 나면 바보 상자라고 불리우는 TV 앞에 앉아 즐기는 시간을 많이 갖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을 할라치면 자동차로 쌩~ 하니 달려가면 되었고, 배가 아프면 위 내시경이라는 기계로 몸 구석구석을 이 잡듯이 살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삶의 편리함은 결국 <기계의 노예>로 인간을 전락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외계인의 모습을 상상한 그림을 보면 워낙 기계에 의존을 하다보니 머리만 커지고 손과 발은 가늘어져 기계를 움직일 수 있는 리모컨만을 작동시킬 힘만 갖도록 변화된 모습으로 그려진것을 알수 있습니다.

 

 20세기 말엽부터 똑똑한 미래 학자와 인류학자들이 나타나기 시작을 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기계의 노예>로 변한 인간이 인간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그동안 개발이라는 미명으로 무차별적으로 파괴해 왔던 자연이 신음을 하기 시작을 했고 세계 곳곳에서 그동안 참고 참았던 자연이 이제는 슬~슬~ 인간에게 복수를 하는 것을 느끼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20세기 말에 인류학자들은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과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주장을 하게 되었고 이러한 경향은 "자연 친화적"이라는 말로 인간의 삶에 밀접하게 다가왔습니다. 아파트를 하나 지어도 "자연속의 아파트"라고 해야 제대로 분양이 되고 이제는 자연이 결코 우리와 떨어질 수 없는 공동의 운명임을 인식하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기계의 노예>로 부터 탈피하는 방향은 인간이 편리하게 사용하기 위해 개발한 기계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하고 원래의 목적에 맞게 사용하자는 의식이 싹트기 시작을 했는데 이러한것이 바로 "정보화""지식화"로 대별되어 나타나기 시작한것입니다.

 

 이러한 <인간 본연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은 산업혁명 이후의 "소유의 개념"에서 21세기를 맞아 "향유의 개념"으로의 전환을 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27평 아파트보다는 60평 아파트에 살고있는는 사람이 더 행복했다는 놀리가 성립이 되었지만 이제는 아파트의 평수가 문제가 아니라 <얼마만큼의 문화를 향유하느냐?>가 바로 행복의 척도가 되는 시대로 돌입을 하게 된 것입니다. 21세기는 그만큼 다양한 문화속에서 생활을 하는 인간의 모습이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가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시대로 바뀌고 있음을 의미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화란 한 시대의 생활양식을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활양식의 생산물을 우리는 <문화재>라고 합니다. 이 카테고리에서는 우리 주변에서 알게 모르게 넘어가버렸던 우리 문화와 문화재에 대하여 이야기 하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많은 부분은 공감을 하기도 하겠고 반면 다른 의견을 가지고 계실 수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 나라의 문화에 대한 새로운 조명을 추구하고자 하는것이 아니라 그동안 모르고 지내왔던 우리 문화에 대해 다시한번 되짚어 보자는 의미로 꾸며짐을 이해 하시기 바랍니다.


 
가져온 곳: [수수께끼의 낡은 보물창고]  글쓴이: 가시나무새 바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