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에 양양지방의 큰 불로 인하여 문화유산인 낙산사가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초속 25m의 돌풍이 불고 불길이 돌풍에 어디로 튈지 모르는 가운데 낙산사가 불길에 휩싸이는 것은 인재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라고 하겠습니다. 오죽했으면 불을 끄는 임무를 띠고 그곳에 올라갔던 소방차 1대도 불길에 휩싸여 소실되고 말았을까요...
이 불로 인하여 낙산사의 건물은 대부분이 소실되고 말았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국가지정문화재와 움직일 수 있는 지방지정 문화재는 불길을 피해 사전에 옮길 수 있었으나 불행스럽게도 보물 제 476호로 지정된 "낙산사 동종"은 화마가 집어 삼키는 바람에 비운의 최후를 불길 속에서 마쳐야만 했습니다.
이 동종은 세조 때 낙산사가 중창된 이후에 그 뒤를 이은 예종때 만든 종입니다. 이 종은 1496년에 만들어진 종으로 봉선사종(1469년), 해인사종(1491년), 갑사종(1584년)과 더불어 조선 전기의 종으로 대표되던 종이었습니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불에 탄 사찰을 재건하면서 범종을 제작하는데, 이 때 범종의 형태는 신라의 종이나 고려의 종을 모방하는 형태를 보이고 있지만 "낙산사 동종"은 두 마리의 용이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며 엮어진 몸을 하고 부리부리한 눈과 커다란 뿔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상원사 동종'에서 볼 수 있는 종두와 유곽이 없는 반면 사방에 4구의 보살상이 가는 선으로 양각이 되어 있으며 그 세부 묘사는 마치 그림을 그리듯 매우 자연스럽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이런 형태는 신라나 고려의 종의 모양에서 벗어나 중국의 종을 많이 모방한 것이며 최근에 다시 만들어진 동종이 자리잡기 전 까지도 이 종은 타종되었었습니다.
그렇다면 불길 속에서 이 "낙산사 동종"은 어쩔 수 없이 불길에 녹아가며 안타깝게 최후를 마칠 수 밖에 없었을까요? 저는 보는 관점이 다릅니다. 이 종의 무게는 2톤~4톤 가량 된다고 봅니다. 불길이 종각에 옮겨 붙을것을 예상했더라면 종각의 종걸이에서 종을 떼어내 아랫쪽의 연못으로 굴리는 지혜를 발휘했어야 했던 것입니다. 일단 불길속에서 녹아 내리는 큰 위험에서는 무조건 벗어났어야 합니다.
이런 문제는 당시 현장에 있었던 스님을 비롯한 소방관 등에게 책임을 돌리기 어렵습니다. 문화재보호법상 국가지정문화재를 함부로 옮겼다가는 범법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평소에 이번 경우와 같은 일이 닥치더라도 어떻게 조치를 해야 할것인가에 대한 교육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다행중 불행으로 불길이 종각으로 옮겨붙지 않아 소실된 위험으로부터 벗어났다면 이번에는 "왜? 함부로 미리 종을 떼어 내 굴려서 훼손을 했느냐?" 라는 질책이 뒤 따랐을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빨리 불이 번질 줄 몰랐을 수도 있지만 전혀 교육이 안된 상태이고 문화재를 원위치에서 이동하는 일...더구나 땅바닥에 굴리게 될 경우 그 손상이 발생하리라는 생각에서 감히 움직임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런 위급상황에서의 문화재의 이동에 관한 내용은 관련부서인 문화재청에서 사전에 교육이 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설마 하던일이 현실에서 나타나리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치 못했던 것입니다. 양양 산불과 같은 경우는 그리 흔하게 발생되는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찰은 잘 조성된 수목이 주변에 널려있으며 그 가운데 아름답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사찰이 화재에 의하여 폐사가 된 경우는 삼국유사나 삼국사기를 비롯한 역사서에 숱하게 기록되고 있음을 간과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반성을 해봐야 할것입니다. 아우러 비록 한번의 화재로 아까운 보물을 잃었지만 '낙산사 동종'의 경우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화재시 일단은 움직이기 어려운 무거운 동산 유물에 대한 대비책이 충분히 교육이 되어야 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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