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대한민국 探訪

[스크랩] 창덕궁 인정전

鶴山 徐 仁 2005. 8. 10. 21:50

 


 

창덕궁 인정전

 

여기 인정전은 경복궁의 근정전과 더불어 조선왕조 임금님의

 즉위식이나   나라의 행사를 열던 곳으로 궁궐의 중심이 되는 곳이라 합니다.

 

    이곳 창덕궁은 태종 이방원이 태조 이성계를 위하여 만든 궁으로 1,2차 왕자의 난으로 부왕인 이성계와의 사이가 서로 편치 못한 관계로 이성계를 이곳으로 모시게 되었다고 합니다.(어디서 들은적 있음).

 그리고 1592년 임진왜란시 선조가 몽진을 떠나자 성난 백성들에 의해서 서울시내 대부분의 궁궐이 화재로 소실될 때 이 곳 창덕궁도 피해를 보았다 합니다. 광해군에의해 재건되어 그후 몇차례의 화재에 의해 소실되었으나 중건을 반복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궁에서만 두 분의 임금이 반정에 의해 폐위되었다고 합니다. 조선 초 연산군이 그랬고  

이 궁을 중건한 광해군 역시 이 곳에서 반군(서인)들에 의해 왕위에서 밀려났다고 합니다.

광해군은 영특했으며 치적도 많았으나 후궁의 소생으로 차남이었고 부왕인 선조에게 지지를 받지 못한 이유로 정통성이 취약했다고 합니다.

  그런이유로 그는 늘 반정에대한 불안 속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연산군이 폐위된 곳인 

이 궁궐을 자신이 중건했으면서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른 궁(창경궁?덕수궁 등)을 옮겨다녔다고 했는데 결국 이 곳 창덕궁에서 비운을 맞이하게됐다 하네요.

 

 경복궁이 임진왜란때 소실된 후 조선말기에 중건됐지만 창덕궁은 임란이 끝난 후 오래지 않아 중건돼 오늘날에 이르고 있으니 조선의 500년 역사와 그 영욕의 세월을 함께했다고 볼 수 있겠죠.

 

  여기 창덕궁내 낙선재에서는 1989년까지 조선의 마지막 왕족들이 살고 계셨다고 합니다. 조선의 마지막 임금이신 순종비 윤황후가 1960년대 까지 이곳에서 사시다 돌아가셨고 영친왕비인 일본왕족 이방자여사와 고종의 따님이신 비운의 덕혜옹주가 1989년 이 곳에서 한 달 간격으로 숨을 거두시니 그 후 이 곳에서는 더 이상 사람이 살지않게 되었다 합니다.



 
가져온 곳: [푸른하늘 바라보며]  글쓴이: 보리솔 바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