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어 '소망(所望)'은 "확실한 미래의 일을 준비하며 기다리다"는 뜻입니다. 반면에 희망은 '명품 바라기'라는 어원을 가졌고 '이루기 힘든 것을 바란다'는 뜻입니다. 물욕과 절망이 밴 말이지요. 게다가 희망은 일본식 한자어입니다.
이번에는 서양의 소망은 어떤 개념인지 살펴보고, 이어서 성경의 소망 개념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호프(Hope)
킹 제임스 역본 잉어 성경에서는 소망을 호프(hope)로 번역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소망'과 '호프'를 같은 개념인 것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둘 사이에는 공통점도 있겠지만 차이점도 적지 않습니다.
웹스터 잉어사전에서는 호프의 첫 두 가지 뜻으로 "(이루어지리라고) 예상하면서 욕망을 품다 (to cherish a desire with anticipation)"과 "(무언가를) 얻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고 바라다 (to desire with expectation of obtainment)"을 제시했습니다.
여기서 먼저 주목할 단어는 '디자이어(desire)'입니다. 강한 뜻으로는 '욕망'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고 좀 약한 뜻으로는 그저 '바람' 정도로 옮겨도 됩니다. 한마디로 원(願)한다는 말이지요. "-하고 싶다"는 말이므로 다소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차원의 '바람'입니다. 따라서 '디자이어'는 앞에서 본 희(希)와 그 뜻이 통하는 말입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말이 '앤티시페이션(anticipation)'과 '익스펙테이션(expectation)'입니다. 웹스터 사전은 앤티시페이션을 "일이 생기기 전에 행동을 취하거나 감정적으로 반응하다 (taking action about or responding emotionally to something before it happens)"라고 풀었습니다.
앤티시페이션의 뜻에 '감정적으로 반응함'이라는 설명이 있는 점이 눈에 띕니다. 그래서 호프의 첫 번째 뜻은 '감정적이고 개인적인 동기에서 무언가를 바라다'입니다. 한편 익스펙테이션은 "확실성이 높은 일을 준비하며 기다린다 (implies a high degree of certainty and usually involves the idea of preparing or envisioning)"라고 설명돼 있습니다.
불확실한 것에 대한 주관적/감정적인 기다림이 앤티시페이션이라면 익스펙테이션은 앞으로 다가올 일을 확실하게 내다보고 그것을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분명히 다르지요?
굳이 비교를 하자면 앤티시페이션은 앞서 본 희(希)에 가까운 반면, 익스펙테이션은 망(望)에 가까운 개념입니다. 그러니까 호프는 정의상 앤티시페이션과 익스펙테이션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그래서 호프를 희망(希望)으로 번역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습니다. 호프는 앤티시페이션으로서의 희(希)와 익스펙테이션으로서의 망(望)을 다 품을 수 있는 말이니까요.
웹스터 사전의 '비슷한 말(synonym)' 분석에서도 호프(hope)는 좀 어중간합니다. 우선 호프는 앤티시페이션이 아니라 익스펙테이션의 유사어로 묶여 있습니다. 희(希)보다는 망(望)에 가깝다는 말이겠습니다. 하지만 정작 호프의 특성을 설명한 글에 보면 "확실하지는 않으나 주관적 신념을 가지고 원하는 것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다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설명만 보면 망(望)보다는 희(希)에 가깝습니다.
이렇게 호프는 익스펙테이션과 앤티시페이션, 희(希)와 망(望)의 경계에 놓인 말이거나 혹은 그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한 말입니다. 그래서 호프(hope)는 소망(所望)을 포함한 말일 수는 있겠지만 정확히 소망과 같은 말은 아닙니다. 호프가 갖는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요소 때문에 소망과는 다른 뜻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마치 '사람'이라는 말이 '남자'를 포함하는 말이기는 해도 그 동의어가 될 수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호프: 긍정적인 것만 바란다
호프(hope)가 소망(所望)과 다른 결정적인 차이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호프는 어원상 '부정적인 것을 내다보다'는 뜻이 없으며, 어법상으로도 그런 용법이 전혀 없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지옥에 가기를 호프한다 (I hope I could go to hell)'는 말은 사용되지 않습니다. 혹시 사용되더라도 '지옥에 가기보다 더 나쁜 일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차라리 지옥엘 가고 싶다'는 뜻이겠습니다. 따라서 호프는 절대적으로나 상대적으로 바람직한 일을 바랄 때만 쓰이는 말입니다. 주관적, 개인적, 감정적으로 일이 잘못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소망은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모두 살피고 예상하면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런 예상을 바탕으로 밝은 면을 받아들이고 어두운 면을 피하기 위해 노력해 가는 것이 바로 소망입니다. 어원적으로도 그렇습니다. 망(望)은 '달이 차 오르는 것'을 기다리는 것일 뿐 아니라 '달이 기우는 것'도 내다보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야기를 요약해 봅시다. 개역 한글판 성경에서 사용한 소망(所望)은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어떤 일이 확실히 일어날 것을 미리 내다보고서 준비하면서 기다리다"는 뜻입니다. 이런 뜻의 소망은 흠정역 영어 성경에서 사용한 번역어 호프(hope)의 뜻과는 좀 차이가 납니다.
호프에도 익스펙테이션으로서의 뜻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호프는 주로 '감정적으로 원하는 것을 기다리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호프는 부정적 맥락으로는 절대 사용되지 않습니다.
*엘피스(Elpis)
그러면 이번에는 성경의 소망 개념을 살펴보겠습니다. 신약성경의 소망은 희(希)와 망(望), 혹은 소망과 호프 중에서 어떤 것에 더 가까운 개념일까요?
고대 헬라어로 쓰인 신약성경의 소망은 엘피스(elpis)입니다. 이 말의 첫 두 뜻이 "나쁜 것을 기대하다, 두려워하다 (expectation of evil, fear)"와 "좋은 것을 기대하다, 바라다 (expectation of good, hope)"입니다. 다른 뜻들은 모두 이 두 뜻에서 파생됐습니다. 엘피스의 두 뜻이 모두 "익스펙테이션"으로 풀리어 있습니다. 확실성을 가지고 내다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엘피스는 좋은 것 뿐 아니라 나쁜 것도 내다봅니다. 첫째의 뜻은 비관적인 반면, 두 번째의 뜻은 낙관적인 것입니다. 악한 것에 대한 기대는 두려움을 낳고, 좋은 것에 대한 기대는 호프를 낳는다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 풀이대로라면 '호프'는 '엘피스'의 일부일 뿐입니다. 엘피스는 호프를 부분집합으로 포함하는 전체 집합입니다.
반면에 소망(所望)은 엘피스의 뜻을 완벽하게 표현합니다. 익스펙테이션을 가리킬 뿐 아니라 부정적인 것과 긍정적인 것을 모두 포함하는 기다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소망(所望)은 천국에 대한 호프(hope)와 지옥에 대한 두려움(fear)을 모두 가리키는 말입니다.
한자어 '소망(所望)'과 헬라어 '엘피스(elpis)'는 한치의 어긋남도 없는 완벽한 상호 번역어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저는 엘피스(elpis)를 소망(所望)으로 번역해 낸 선배 기독교인들의 지혜가 참 자랑스럽습니다.
사실, 소망(所望)은 엘피스(elpis)의 훌륭한 번역어일 뿐 아니라, 엘피스라는 헬라어가 전해 주지 못하던 생생하고 깊은 의미를 더해 주기도 합니다. 망(望)의 파자를 통해서 우리는 소망을 갖는 데에는 '경험과 관찰과 생각과 해석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 수 있었습니다. 엘피스(elpis)에서는 이런 의미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고 보면, 소망(所望)은 엘피스보다도 훨씬 더 엘피스적인 번역어입니다. 그리스도교의 소망이 무엇인지 깨달으려면, 호프나 엘피스 개념을 공부하는 것보다 소망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훨씬 더 정확하고 빠른 길입니다. 물론 서로를 비교해 살피면 금상첨화이겠지요. 초기 한글 성경 번역자들은 일찍이 그런 작업을 거쳐 성경을 한글로 번역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성경번역자들의 한글 사랑
질문 한가지.
개역 한글판 성경에서는 그리스도교 신앙과 윤리의 삼대덕목(三大德目)으로 알려진 신망애(信望愛)를 번역하면서 되도록 고유어를 쓰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신(信)은 '믿음'으로, 애(愛)는 '사랑'으로 번역했지요. 그러나 유독 망(望)만 '소망'이라는 한자어를 썼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건 아마도 고유어 "믿음"과 "사랑"은 헬라어 피스티스(pistis)와 아가페(agape) 개념을 번역하기에 모자람이 없었기 때문이겠습니다. 다만 엘피스(elpis) 개념만큼은 고유어 '바람'으로 충분히 뜻이 전달되지 못한다고 보았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더 일상적으로 쓰이는 '바람(wind)'이라는 말과 혼동되기 쉽기 때문일 수도 있었겠지요.
일단 엘피스의 번역어로 '소망'을 쓰기는 했지만, 그래도 혼동의 여지가 없는 경우에는 예외없이 '바람, 혹은 바라다'는 고유어를 사용하곤 했습니다. 예컨대, 히브리서 11:1을 기억하시는지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는 구절입니다.
여기의 '바라는 것'이 바로 엘피스입니다. 믿음은 소망이 진짜로 모습을 드러낸 모습이라는 뜻입니다. 아직 믿음 개념을 살펴보지 않았으니까 믿음과 소망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겠습니다. 다만 여기서는 초기 성경 번역자들이 뜻에 지장을 주지만 않으면 언제든지 한자어보다는 고유어를 쓰려고 노력했다는 점을 지적해 두고 싶습니다.
요즘 개역 한글판 성경을 보면서 한자어가 너무 많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건 사실입니다. 요즘 기준으로 보면 한자어가 너무 많지요.
그러나 지금부터 120년 전 상황에서는 한글 성경이 거의 혁명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컨대 한글로 쓴 최초의 신문이라는 독립신문을 구해서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토씨만 빼고는 깡그리 한자어입니다. 그런 분위기에서 한글 성경 번역자들은 고유어를 한글로 쓰려고 그다지도 애썼던 것이지요.
우리가 되새기고 본받아야 할 것은 바로 그런 원칙과 노력이라고 봅니다. 눈에 보이는 걸 현상적으로 불평할 게 아니지요. 그런 제대로 된 원칙과 노력을 이어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동번역이나 표준새번역 성경도 나온 것이겠지요.
그러나 저는 개인적으로 이 두 번역본에 불만이 많이 있습니다. 말 자체는 한국 고유어를 더 많이 사용하기는 했지만, 개역 한글판 성경이 갖고 있던 한국의 고유 개념들을 많이 망가뜨렸기 때문입니다. 그 점은 나중에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아무튼, 19세기 말, 나라 안팎이 어지러운 가운데서도 성경 번역을 위해 애쓰신 신앙의 선배들께 감탄과 존경과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글 성경을 읽을 때마다 저는 초기 성경 번역자들의 번역 실력이 그들의 신앙 수준만큼이나 훌륭했음을 새록새록 느끼곤 합니다.
그리고, 이건 사족입니다만, 요새 개역 한글판 성경에 한자어가 너무 많다고 불평하는 사람들 중에는 말이지요, 기회만 되면 서양말 쓰려고 아등바등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인문학이든, 사회과학이든, 특히 신학 분야에서 많이 배웠다는 사람일수록 그렇습니다. 즈응말, 역설적이면서도 웃기는 일입니다.
평미레/
조정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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