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유적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킨 중국 지린(吉林)성과 지안(集安)시 정부가 기다렸다는 듯이 지난 20일부터 석 달 동안 ‘고구려 문화여행절’ 행사를 대대적으로 열어 고구려를 중국 역사로 선전하고 있는 현지 보도는 현기증을 일으키게 한다.
고구려 유적지의 안내판과 안내원 설명, 역사책자 등이 일제히 ‘고구려는 중국의 소수 지방정권이었다’고 주장하는 대목에 이르면 우리 역사를 도둑맞은 기분이 들 정도로 자존심이 상한다.
이번 행사는 중국이 고구려사의 중국 편입을 국가차원의 치밀한 수순에 따라 추진해왔음을 확인해준다. 사회과학원 학자들이 써서 지안에서 팔고 있는 ‘고구려 역사지식 문답’이라는 책자에 ‘고구려 문제는 학술문제이면서 엄중한 정치문제여서 당과 국가가 처음부터 높은 관심을 보여왔다’고 밝힌 것을 보면 속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중국 정부가 사회과학원, 동북 3성과 함께 고구려 유적을 정비하고 재해석하는 ‘동북공정’을 시작한 것이 벌써 2년 전이다. 올들어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관영언론의 고구려사 왜곡에 이어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가 한국사(史)에서 고구려를 삭제하더니, 고구려 유적지를 온통 대외적 진열장으로 꾸며놓은 것이다. 이대로라면 내년으로 예정된 중국 교과서 개정에서 고구려사가 어떻게 다뤄질지는 불보듯 뻔하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의 공식 입장은 불과 한 달 전까지 이 문제를 학술적으로 풀자는 것이었다. 올해 초 이창동 당시 문화부 장관이 “정부 차원에서 대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이래, 정부는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을 “중국 정부가 개입되지 않은 학술차원일 뿐”이라며 중국 외교부 보도자료 같은 얘기만 거듭했다.
정부의 대응은 지난달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파문이 일자 중국 대사를 불러 항의한 게 전부다. 그에 대한 중국측 반응을 7월 말까지 지켜보겠다며 팔짱을 껴왔다. 민족의 근거와 역사문화적 정체성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제 역사조차 지켜내지 못해서야 정부라고 할 수도 없다.
정부는 고구려사에 관한 우리 입장을 국제사회에 알려 동의를 넓혀나갈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또한 침묵하고 있는 북한을 끌어내 공동 대응하는 방법도 모색해야 한다. 국민은 이 정부가 왜 이리도 숨을 죽인 채 중국의 눈치를 살피는 것인지 의아할 따름이다.
(조선일보 2004.8.1)
*사진설명: 중국 집안(集安)에 위치한 무용총의 고구려 벽화의 말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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