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 고구려유적 유네스코 등재 의미
북한은 고분만 63기. 중국은 성 3곳 포함
등재된 유산 목록은 북한의 경우 강서대묘 등 벽화고분 16기를 포함해 평양, 평안남도 남포, 황해도 등 5개 지역 고분 63기를 묶은 ‘고구려 고분군’, 중국은 오녀산성, 국내성, 환도산성, 장군총, 무용총, 염모총 등 고구려 초기 도읍터와 무덤 등 43곳을 망라한 '고구려의 수도와 왕릉, 그리고 귀족의 무덤'이다.
한 유산이 두 나라의 개별적인 유산으로 등재되었지만 고구려 유적의 세계유산 등재는 분단으로 가려졌던 고구려의 역사적 실체가 인류의 보편적 유산으로 공인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2002년 먼저 등재를 신청했던 북한 ‘고구려 고분군’의 경우 지난해 총회에서도 심의됐으나, 중국의 뒤늦은 등재 신청과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의 부정적 권고 등으로 등재가 보류되는 우여곡절을 겪은 터라 국민적 관심도 컸다.
무엇보다 의미를 지니는 것은 그동안 접근이 사실상 어려웠던 고구려 유적들이 유산 등재에 따라 대부분 세계에 개방되고 보존관리 상황 또한 국제기구의 점검을 받게 된다는 점이다. 고구려사 관련 연구가 활성화하고 유적의 안전성을 확고히 보장받을 수 있는 길을 연 것이다.
등재과정에서 남북 당국자들이 손잡고 등재를 위한 외교 작업을 펴는 등 남북 문화재 교류활동에 긍정적인 전범을 만든 것 또한 중요한 성과다. 남북 당국자들은 박흥신 외교통상부 문화외교국장이 북측 수석대표인 리의화 문화보존국 부국장과 21개 이사국 대표들을 함께 찾으며 공동으로 등재를 위한 외교전을 벌였고 회의전략도 함께 논의하는 등 유례없이 단합된 모습으로 임했다는 평가다.
(*지도설명: 고구려 고분은 중국과 북한변경에 넓게 분포되었다.)
하지만 역사적 측면에서 고구려 유산 분리 등재에는 여전히 논란거리가 잠복해 있다는 분석이다. 등재 형식이 북한은 단순 고분군인 반면 중국은 무덤을 포함한 수도 관련 왕성 등 도읍지 공간개념을 중심으로 신청했기 때문에 사실상 중국쪽 고구려 유산이 북한 쪽 유적을 개념상 포괄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여전하다.
고구려사의 중국사 편입을 위한 기본 틀이 국제적으로 공인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실질적인 보수, 복원 대책에 대한 논의도 시급하다. 전호태 울산대 교수 등 학계 전문가들은 대부분의 고분군이 염분과 탄산칼슘층에 덮여 벽화 훼손이 진행되고 있으나 과잉 복원에만 치중하는 경향이 있는 만큼 실질적인 관리 대책을 남북한, 중국 전문가들이 논의해야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한겨례신문 2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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