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사용하는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의 도구로 단순하게
생각할런지는 모르지만
일상적으로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영유아시절 옹아리 하는 것으로부터 출발 하였지만,
성년 이 후로 말이란 우리의 삶 속에서 중추적이라 할 수 있다.
말이란 보약이나 영양제처럼 잘 사용하면 화자 간에
친밀감과 신뢰감을 쌓고, 기쁨과 즐거움을 나눌 수 있지만
반대로 불신을 조장하고 분노와 슬픔을 안겨 줄 수도 있다.
따라서, 입이 있다고 아무렇게나 말하고,
귀가 있다고 아무 것이나 듣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흔히들 하나님이 귀를 두 개 입을 한 개로 만든 것은 듣는 것에 비해
말하는 것을 보다 신중히 하라는 얘기를 하기도 한다.
말하는 것도 근본적으로는 학교교육과정을 통하여 그 결과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일찍부터 토의법에 치중하여 토론문화가 정착되어 있는 나라에서
교육 받은 사람과 강의법 위주의 교육방법으로 교수-학습활동이 이루어진
나라의 사람들이 같을 수가 없을 것이라는 것은 쉽게 유추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토론문화가 정착 된 학습의 장에서는 우선적으로 남을 배려하고 남의
얘기를 경청해야만 자신이 올바르게 토론에 임 할 수 가 있다.
토의법 교육이나 문제해결법, 구안법 교육 등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는 우리 나라에서는 원만하게 질 높은 수준의 대화를 할 수 있는 학습의
기회가 결여 된 상황을 인정 하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다.
우선 말하는 내용의 질과 빈도를 살펴 볼 때 말의 질이란 가정환경을
포함하여 개개인들이 처한 사회적 환경, 교육수준 및 교육의 질과도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고 보지만, 일반적으로 언어의 사용량과 빈도는
나이가 많아질수록 감소하는 경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천진난만한 유아나 아동들은 잠시도 입을 다물고 있질 못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점차 변화되는 현상을 모두가 경험하고 겪어 온 바 있다.
성장 하면서 점차 철이들고 어쩌면 순수성이 감소되고 점 점 더 영악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도덕적인 수준에서 아동이 높고 성인이 될수록 낮아진다는 모순을
열거하는 것은 아니다.
성인으로 성장 하면서 말하고 생각하던 수준에서 점차 생각하고
말하는 수준으로 변화가 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개인 특성에 따라서는 성인이 되어서도 생각하고 말하기 보다
불쑥 불쑥 말을 던지고서 생각은 후에 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다수는
그렇지 않다.
누구나가 공통적으로 말이란 때와 장소를 잘 가려서 해야 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변수라고 할 수 있다.
꼭 해야 할 말을 너무 신중하게 대처 하거나 머믓거리다가 때를 놓지는
경우도 흔히 주위에서 볼 수 있고 경험도 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가까이에 두고도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한채 망서리다
기회를 잃고 떠나 보낸 후 회한의 눈물을 뿌리는 사람도 있지 않는 가?
때론 중요한 사안을 토의 하거나 보고를 하는 데 점심식사 후 식권증이
발동할 시간대로 정한다던지 하는 사례도 종 종 볼 수 있다.
말은 때와 장소를 잘 선택해야 그 실효를 거둘 수 있다는 점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말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루어지는 단순한 의사소통의 수단이라기 보다는
자신을 상대에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전체를 노출하면서
상대로 부터 올바른 평가를 받게 되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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