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로거 김정아 선생님의 미국여행기를 읽고 보니 그들 가족분들이
생활하고 휴가여행을 다닌 곳들이 예전에 자신이 머물던 곳과
아주
유사하여 잠시 젊은
시절의 미국생활을 회상
하였다.
내가 현역에서 조종교육 차 도미 했던
시절은 정말 현재와는 모든
여건이 너무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당시에는 누가 미국에 나간다
하면 가족들은 물론이고 지방에 있는
친지들
까지도 김포공항 까지 환송 나와 송영대에서 비행기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곤
하였다.
1차 도미 시에는 전적으로 미군의 원조에 의존 했던
시기여서
미군의 전세기로 운용되던
노스웨스트 항공기에 미군의 휴가
및
본국으로 귀국하는 장병들과
동승하여 워싱톤주의 시택공항(시애틀과
타코마의 중앙에 위치)을 거쳐 텍사스의 휴스톤을 경유하여
샌안토니오공항으로 날아갔다.
어두워 도착한 다음 날 아침에
난 먼저 사방을 둘러보아도 山이라고는
전연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텍사스의 광활함에 놀라고 숙소
주차 지역마다
줄지어 가지런히 세워져 있는 수
많은 차들을 보고
놀랐다.
우리 나라에서 종합행정학교
군사영어과정에서 열심히 한다고는
했으나 아직도
많이 서툰 영어실력 때문에 약소국의 차별적인
처우를 느끼면서도 항변 한번 제대로
못하고 울분을 삼키곤
했던
시절이었다.
그 곳에서 조종교육을 받기 위한 어학교육을 마치고 출고 7년여의
중고 포드알브이
차량을 장만하여 앞서 김정아님이 휴스턴에서
여행을 시작한 거리보다도 더 먼
샌안토니오에서 루지애나주와
미시시피주를 경유하여 장거리 운행을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나마 귀국 후 월남전에 참가,
십자성 11항공중대에서
잠시 근무를 하고 10년의
세월이 지난 후 영관 장교로서
도미할 때는 국력이 다소 신장 되었다는
것이 자신을 매우 흐믓하게
하였다..
출국 때부터 국적 항공기인 대한항공을
이용하였고 미국에
체류 시에도 당당하게
그들에게 맞서 싸울 수 있는 기백이
넘쳤던 기억은 지금도 자긍심을 느끼기에
충분하였다.
수 십년의 세월이 지난 그 곳에 우리의
상사 주재원들이
가족과 함께 나가 근무를
한다니 당시의 감회가 새로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