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향후 10년 어떤 항해를 할 것인가
중앙일보
입력 2024.01.19 00:34
새해를 맞은 지도 3주째가 된다. 우리를 둘러싼 세상은 그동안에도 조용하지 않았다. 연초부터 야당 대표의 피습, 특검법을 둘러싼 여야의 공방, 북한의 연평도 포격, 일본의 지진, 홍해의 무력충돌과 중동 분쟁 확산 가능성 등 어두운 소식들의 행진이 지속되고 있다.
이미 국제질서는 지난 7~8년 동안 새로운 난맥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물론 그 씨앗은 그 이전 오랫동안 자라온 것들이다. 미중 갈등, 다자주의 질서의 퇴조는 해를 거듭하며 심화되고 있으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사태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냉전을 넘어 지구 구석구석에서 열전이 터져 나오고 있다. 지구촌은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가? 이미 나침반 없는 항해를 시작한 지 오래다. 불확실성이 높아질수록 불안감 또한 높아진다. 우리의 자식들은 어떤 세상에서 어떤 삶을 살게 될 것인가?
앞으로 10년, 새로운 질서 태동기 과거의 국제질서 복원은 불가능 미중 양자택일의 상황은 피해야 4월 총선이 국가개혁 계기 되길 |
국내에서는 문제의 본질과 동떨어진 말들의 성찬과 끝없는 진영 간 싸움이 오늘도 그치지 않고 있다. 그것은 4월 총선이 있기까지 더욱더 기승을 부리며 우리의 눈과 귀의 피로를 더하게 될 것이다. 상황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뻔히 보이는 장기적 과제들은 손도 제대로 대지 못하고, 일주일, 한달이 지나면 별 의미도 없을 일들에 대한 다툼이 매일의 정치를 지배하고 있다. 오늘이 쌓이면 미래가 된다. 이대로 오늘을 보내며 우리가 미래에 희망을 가질 수 있는가.
미중 관계의 전개는 향후 우리 경제, 안보, 역사의 진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가장 위협적 요소다. 세계가 양대 진영으로 나누어지는 양극체계보다는 다극체계, 다자주의의 진화가 우리에게는 유리하다. 미소 냉전시대와 미중 냉전시대는 다르다. 우리의 선택도 달라야 생존이 가능하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양자택일해야 하는 상황은 어떻게든 피해야 한다. 다자주의의 복원이 그런 공간을 허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존의 다자주의 질서 복원은 이제 불가능하다. 20세기의 UN이나 핵 비확산 조약과 같은 국제기구들은 모든 국가의 행위를 규율하려 했지만 소수의 강대국에 특권을 보장하기도 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도 크게 다르지 않다. 새로이 부상하는 세력들이 보다 평등한 대우를 요구하는 반면 기존 강대국들은 이 같은 변화에 저항하면서 과거의 다자주의 질서는 점차 효력을 잃어왔다.
기존의 질서는 사라졌으되, 새로운 질서는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이 지금의 지구촌 상황이다. 이 전환기에는 글로벌 거버넌스가 어떻게 진화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세계적 논의와 설계가 진행될 것이다. 우리가 중견국임을 자임한다면 이런 논의의 밥상에 숟가락을 올려놓을 수 있어야 외풍에 집이 무너지지 않게 할 수 있다. 국내의 거버넌스 개편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또 다른 중요한 과제다. 결국 외교는 국내 정치의 합의를 대외에 적용하는 과정이다. 국내에서 분열과 갈등이 심화되어 있는 나라가 대외정책을 일관되게 할 수 있겠는가. 이는 대북정책에서도 마찬가지다. 경제력은 또한 외교력의 바탕이다. 국가 정책시계가 극히 단기화되어 있어 지속적 발전을 위한 구조조정과 성장동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눈앞의 증세에 대한 대증요법으로 일관해 온 나라들의 경제와 국력의 행로가 어떠했는지는 우리 모두 잘 아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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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한편에서 세상은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특히 기술의 진화는 눈부시다. 의약의 발전은 코로나 팬데믹을 3년 만에 극복하게 하고, 더 많은 생명의 희생을 막았다. 1855년 청나라 윈난(雲南)성에서 시작된 3차 페스트는 100년 넘게 지속하며 주로 아시아에서만 1500만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과거 기술의 진화는 인간의 생활을 편리하게 하고, 문명을 발전케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기술 진화는 인간의 생활 패턴을 통째로 흔들고, 공동체의 운영구조를 뒤엎을 수도 있는 큰 위협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특히 인공지능(AI)의 진화는 그렇다.
향후 10년은 국내외 모두에서 중요한 전환의 시기가 될 것이다. 한국은 일본처럼 잃어버린 30년의 길로 들어설 것인가? 미중 관계가 어떻게 진화해 나갈지에 대한 그림의 얼개도 향후 10년간 대충 정해질 것이다. 미중이 양극체제의 세계질서를 주도해 나가게 될 것인가, 아니면 세계가 미중 경쟁을 관리해 나가는 체제로 진화해 갈 수 있을 것인가? AI가 세상과 인간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지도 보다 분명해질 것이다.
이 와중에 항로를 잃지 않고 격랑의 국제정세, 디지털 혁명의 흐름을 읽을 줄 알고 이를 헤쳐 항해할 능력과 비전을 갖춘 새 시대 지도자들이 나타나 나라를 이끌어 나갔으면 좋겠다. 결국은 국가지배구조, 기관과 제도(institutions)의 질, 지도자들의 식견과 비전이 국가 미래를 가른다. 금년 4월 총선은 국민이 그런 이들을 많이 국회로 보내 국가지배구조와 우리 사회 보상체계를 개혁해 미래에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 본다.
조윤제 서강대 명예교수·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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