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선데이] 영업 귀재의 영업 비결
중앙선데이 입력 2024.01.13 00:06
얼마 전 한 지인을 만났다. 그분이 지금은 퇴임한 S사의 유명한 부회장이 해외 영업을 책임지던 시절 함께 일한 스토리를 말했다. 해외 고객사 고위층들이 몇몇 한국 기업들을 만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을 때였다. 공교롭게도 그들이 한국에 있는 동안 해외 본사에서 인사 발표가 났다고 한다. 그런데 방문한 해외 고객사 임원 중 한 명이 다른 부서의 낮은 자리로 좌천되었다. 좌천된 그 외국인은 공식업무에서 배제되었고 호텔에서 혼자 있게 된다. 이 소식을 들은 부회장은 밤에 그 호텔로 홀로 찾아가 그 고객에게 따로 만나자고 요청한다. 그리고는 단둘이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새벽에 돌아왔다. 그 부회장은 그 외국인을 극진히 모시고 위로하며 환송했다.
잘 나갈 땐 사람이 모이는 법 어려울 때 진짜 친구 확인 가능 베푼 것은 강물에 흘려보내고 받은 은혜는 돌에 꼭 새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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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후 시간이 흘렀다. 해외 바이어의 본사에 새로운 인사 발표가 이루어졌는데 놀랍게도 좌천되었던 그 외국인이 핵심 부서 고위직으로 승진했다. 이후 그 외국인이 S사 부회장을 적극 지원해주었음은 말할 나위 없다. 지인은 그 부회장에게 물었다고 한다. “이렇게 될 줄 알고 그렇게 했나요?” 그분 말씀하시길, “그럴 리가 있나요. 그렇지만 두 가지 이유에서 그렇게 했습니다. 첫째, 사람이 잘나갈 때는 모두가 다들 잘 접대하기에 차별화가 어렵죠. 어려울 때 진짜 구별이 되는 겁니다. 그분이 이후 잘될지 안될지는 모르지만 한번 고객은 영원한 고객이라 여기고 대했습니다. 둘째, 설령 그 고객 본인은 더 이상 영향력이 없더라도 주변이나 후배에게 우리 회사에 대해 긍정적인 이야기를 해줄 거 아닙니까?”
사람들이 좋은 위치에 있고 잘되면 많은 사람이 만나자고 찾아온다. 권력과 위치에 있는 분과 관련된 결혼식장이나 상갓집에는 찾는 이들이 줄을 선다. 그러나 자리에서 물러나는 순간 썰물처럼 사라진다. 누가 진짜 신뢰가 있는지는 눈앞의 모습으로 판단할 수 없다. 나도 착각한 적이 적지 않다. 진짜 모습은 자리를 떠나거나 어려워질 때 나타난다. 생각 외로 어려울 때 의외의 사람이 나타나기도 한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상대가 어려울 때 돕기는커녕 자신이 받은 은혜조차 잘 기억하지 못한다. 예전에, 뽀빠이 이상용씨의 인터뷰를 읽었다. 참 훌륭한 분이다. 많은 사람을 도왔지만 오해를 받아 명예도 실추되고 수사까지 받은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그분이 이런 말을 했다. “제가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 목숨을 구하게 된 심장병 어린이가 모두 567명인데 지금까지 연락되는 친구는 10여 명이에요. 그건 솔직히 좀 서운합니다. 그렇지만 그 또한 제 팔자겠죠.” 그분으로 인해 목숨을 구한 이들임에도 98%는 연락도 안 한다는 것이다. 그분은 팔자라는 표현까지 쓰며 서운해 했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내가 보기에는 연락하는 10명이라도 있다는 것은 그래도 다행이다.
경영의 신이라 불린 이나모리 가즈오조차도 노년에 이런 말을 했다. “회사 초기, 술자리에서 내 옆에 와서 ‘사장님을 존경합니다. 영원히 옆에서 도우며 충성하겠습니다’라고 외치던 간부 중 지금 나의 곁을 지키던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힘들고 어려울 때 다 도망갔다. 오히려 조용히 있었던 평범한 직원들이 나와 끝까지 함께했다.”
베풂을 받는 사람들은 기억을 잘 못 한다. 아쉬울 때 간절하지만 그 아쉬움이 해결된 다음에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무언가 베풀어보거나 돈을 빌려줘 본 분들은 이를 이해하실 것이다. 그들이 나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일반적으로 그러하다. 바빠서 일 수도 있고 쑥스러워서 일 수도 있다. 베풂을 기억하고 갚는 사람들은 소수이다.
여기에 두 가지의 교훈이 있다. 첫째, 어려움은 진짜 친구가 누군지 밝혀줄 좋은 기회이다. 내가 잘 나갈 때 나를 잘 대하는 이들이 진짜가 아니다. 힘들 때, 좌천되거나 승진에서 누락됐을 때, 직업을 잃었을 때,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연락하며 밥값을 내주고 선뜻 봉투로 함께 하는 이들이 있다. 둘째, 은혜를 기억하라. 당신이 받은 것이 있다면? 적극 감사를 표시하라. 특히, 은혜를 얻은 분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외면하지 말라. 한 책에서 읽은 문구이다. ‘베푼 것은 강물에 흘려보내라. 그러나 받은 은혜는 돌에 새겨라.’
신년이다. 독자들이여. 기억나는 분들이 있다면 쑥스러워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연락을 드리고 감사해보자.
신수정 KT 부문장·『일의 격』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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