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큰 것과 작은 것 신 25:11-16

鶴山 徐 仁 2022. 9. 12. 08:43

큰 것과 작은 것 신 25:11-16

 
 
 
09월 12일 (월)
   
큰 것과 작은 것 신 25:11-16



11. 두 사람이 서로 싸울 때에 한 사람의 아내가 그 치는 자의 손에서 그의 남편을 구하려 하여 가까이 가서 손을 벌려 그 사람의 음낭을 잡거든
12. 너는 그 여인의 손을 찍어버릴 것이고 네 눈이 그를 불쌍히 여기지 말지니라
13. 너는 네 주머니에 두 종류의 저울추 곧 큰 것과 작은 것을 넣지 말 것이며
14. 네 집에 두 종류의 되 곧 큰 것과 작은 것을 두지 말 것이요
15. 오직 온전하고 공정한 저울추를 두며 온전하고 공정한 되를 둘 것이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 날이 길리라
16. 이런 일들을 행하는 모든 자, 악을 행하는 모든 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하니라
 
<한 사람의 아내가 ... 그 사람의 음낭을 잡거든 그 여인의 손을 찍어버릴 것이고>(11-12절).
아무리 곤경에 처한 자신의 남편을 구하기 위한 행위라 할지라도 여인이 다른 남자의 성기를 잡거나 당기는 행위는 <결코 불쌍히 여길 필요가 없는> 큰 범죄에 해당하는 것이었습니다. 
성기는 그 사람의 상징이자 치명적인 급소이기도 합니다. 
또한 성기는 중요한 생식기능으로 가문의 계승을 대단히 중요시했던 고대인들에게는 생명처럼 소중했습니다. 
따라서 여인이 다른 남성의 성기를 잡아당기는 행위는 인격에 대한 모독임과 동시에 생명에 대한 위협이었습니다. 
그래서 타인의 성기를 공격한 자에 대해서는 그 손을 잘라 버리라는 중벌을 내리고 있습니다. 


<너는 네 주머니에 두 종류의 저울추 곧 큰 것과 작은 것을 넣지 말 것이며>(13절).
이는 상거래시 도량을 속여 부당한 이익을 추구하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오직 온전하고 공정한 저울추를 두며 온전하고 공정한 되를 둘 것이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 날이 길리라>(15절). 
이것은 비단 일개인에 대한 축복이라기보다 이스라엘 사회 전체에 대한 축복으로 보아야 합니다. 
모두가 공정한 도량을 사용하므로 서로 간에 믿고 거래하며 정직한 시장질서가 수립된다면 그 자체가 축복일 뿐 아니라 그 사회, 그 공동체는 장구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나의 모든 상행위가 불꽃같은 눈으로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면전에 다 드러나 있다(시 33:13-14)는 사실을 명심하고 거래시에는 언제나 공정한 추와 공정한 되를 사용해야 합니다. 
그럴 때만 그 사업, 그 영업을 길게 가져갈 수 있다고 하십니다. 그렇지 않고 악을 행하는 자는 그 행위가 여호와께 가증하므로 결코 복되지 않다고 경고하십니다. 
 
-이런 경우를(11-12절) 다 성문법으로 규정해 놓은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혹 당신은 시장에서 도량에 속아 손해를 본 경험이 있으십니까?
-당신은 남과 거래를 할 때 얼마나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십니까?
 
주님, 그 옛날 모세의 율법을 보며 때로는 놀라움, 또 때로는 감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한 사회나 공동체가 그야말로 <여호와께서 주신 땅에서 장구하려면> 서로 믿고 거래하고 정직하게 영업해서 사회적 신뢰를 쌓아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남을 속이고 공정하지 못하게 크고 작은 저울추로 서로를 기만하면 결국 그 사회는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디 우리 사회도 지금보다 훨씬 더 정직하고 공정한 공동체로 나아가도록 역사해 주시옵소서. 
 
   
한 사람의 중요성
 
“사료에 기초한 원균의 전투 흐름을 읽으면 칠천량해전의 어떤 기록들
에서도 우리 수군의 적절한 전략과 전술적 운용의 형태가 없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중략).  한 명의 리더만 바뀌었을 뿐인데 도요토미 히
데요시까지 인정했던 최강의 조선 수군이 어떻게 그렇게 오합지졸이 될
수 있었단 말인가?  리더의 자리가 갖는 무게의 의미를 단박에 알 수
있게 해주는 가슴 아픈 역사의 사례다.”


김성삼 저(著) 《128분 나를 바꾸는 시간》 (지식의 숲, 350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임진왜란 때, 이 충무공을 대신해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원균은 조정과
도원수 권율의 명령에 의한 단 한 번의 출동으로 칠천량 해전에서 결정
적인 패배를 당했습니다.  그 결과, 조선 수군은 궤멸이 되고 호남이
초토화 되고 수많은 조선 백성들이 주륙되었습니다.
한 공동체가 잘 되기 위해서는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시스템’이 중요
합니다.  그러나 시스템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사람’입니다.  
‘사람’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과하지 않습니다.
예레미야 5장 1 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
 
한 사람이 이토록 중요합니다.  나 한 사람이 먼저 의의 등불을 켤 때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됩니다.  초대 교부인 성 요한 크리소스톰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만약 한명이 진지하게 의를 추구한다면 그리고 그 한
명이 열명이 될수있다면, 그 열 명이 오십 명이 되고 그 오십 명이 백
명이 될 수 있다면 그리고 그 백 명이 천 명이 될 수 있다면… 한 사
람이 춧불을 결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춧불이 또 다른 사람에게 점화될
수 있다면 열 개의 춧불이 된다면 캄캄한 밤 백 개의 춧불이 빛난다면,
마침내 그 춧불이 천 개의 춧불로 빛날 수 있다면 우리의 어두운 도시는
그만큼 환해질 수 있지 않겠는가?”
   
전도서 11장 1절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Cast your bread upon the waters, for after many days you will find it again.
Ecclesiastes 11:1 [NIV]
   
엄중함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는 분
오늘날 우리의 현실 속에서 기독교 신앙이라는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신앙이 아니다.
하나님에게 원하는 신앙이다.
내 소원과 기대의 대상이지 하나님 앞에 순종하고
 무릎 꿇어야되는 신앙으로서가 아니다
어느 시대에나 기독교인은 유혹을 받는다.
이 싸움, 우리가 이 중요한 싸움에서 
이스라엘의 실패를 보는데 그리고 이 실패에 대해서
 하나님이 정말 엄중한 심판을 내리는 것을 본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철저한 멸망으로 
이스라엘 역사를 끝내는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대하여 가지는 목적과 뜻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기 때문이다.
-박영선 목사의 ‘신자에게 채워져 오는 은혜의 무게’에사-


 우리는 하나님을 내 필요를 채워주는 분으로 알고 있거나 
심하게 말하면 내가 원하는 것을 
공급해주는 존재로 생각하고 있는 지
 자신에게 양심껏 물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싸움과 우리의 실패가 어디에서 오는 것이며
이스라엘의 실패를 통하여 하나님이 어떻게 엄중하게
 경고하고 있는지도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지는 목적과 뜻은
 우리의 생각과 다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