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이혼과 재혼 신 24:1-4

鶴山 徐 仁 2022. 9. 5. 10:07

이혼과 재혼 신 24:1-4

 
 
 
09월 05일 (월)
   
이혼과 재혼 신 24:1-4



1. 사람이 아내를 맞이하여 데려온 후에 그에게 수치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혼 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요
2. 그 여자는 그의 집에서 나가서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려니와
3. 그의 둘째 남편도 그를 미워하여 이혼 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냈거나 또는 그를 아내로 맞이한 둘째 남편이 죽었다 하자
4. 그 여자는 이미 몸을 더럽혔은즉 그를 내보낸 전남편이 그를 다시 아내로 맞이하지 말지니 이 일은 여호와 앞에 가증한 것이라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범죄하게 하지 말지니라
 
<사람이 아내를 맞이하여 데려온 후에 그에게 수치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혼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요>(1절).
여기서 말씀하는 <수치되는 일>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분명하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아내에게 이혼증서를 써주고 떳떳하게 이혼을 요구할만한 어떤 객관적이고도 충분한 사유가 되는 일을 가리키는 말일 것입니다. 
그래서 칼빈은 이를 <아내의 부족함이나 병>으로, 랑게(Lange)는 <아내의 육체적 결함>을 가리킨다고 했습니다만 그것 역시도 어디까지나 추정일 뿐입니다. 


<이혼증서>(세페르 케리투트)란 이혼을 당한 여인의 재혼 할 수 있는 법적인 권리와 자유를 보장해 주는 제도였지만 이혼을 원하는 남성이 많은 증인들 앞에서 이혼을 엄숙히 선언하는 의식이었던 만큼 본래는 함부로 자기 아내를 버리는 행위를 막고자 하는 규례였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훗날 주님은 모세가 이혼증서를 써주고 이혼할 수 있게 한 것은 어디까지나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완악함 때문에 그나마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한 상대적 조치였을 뿐, 성경이나 율법이 이혼을 허용하거나 합법화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밝히셨습니다(마 19:18). 


따라서 부부에 대한 성경의 원칙, 이혼 문제에 대한 주님의 기본 입장은 이것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마 19:4-6).
 
-믿는 자들의 이혼에 관한 당신의 견해는 어떤 것입니까?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마 19:5)하신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성경이 이혼을 허용하는 극히 제한적인 경우는 어떤 것입니까?
 
주님, 이혼에 대한 주님의 원칙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는 못한다>(마 19:6)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현실 속에서는 부득이하게 이혼을 할 수밖에 없는 경우들이 없지 않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디 저희에게 믿음과 지혜와 바른 판단과 결단을 주사 주님 뜻에 합당한 모습으로 부부관계를 지켜가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세상의 수많은 가정들이 무너지고 있는 이때 더욱 근신하여 기도하며 믿음으로 가정을 지켜가기에 부족함이 없게 해주시옵소서. 
 
   
칼 힐티가 말하는 인생 최대의 날
 
“어떤 사람의 생애에서 최대의 날이라 함은 그 사람의 역사적 사명,즉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그를 사용하고자 하는 목적을 뚜렷하게 알고, 지
금까지 그가 인도되어 온 모든 길이 그곳으로 통하고 있음을 깨달은
날을 말한다.”


카를 힐티 저(著) 곽복록 역(譯)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
(동서문화사, 386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칼 힐티는 스위스의 사상가이자 법률가로 《행복론》,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등의 작품이 특히 유명하며, 무엇보다 성경을 기초로 하고
있는 현세적, 실천 윤리적 신앙관을 말합니다.
인생 최대의 날은 예수님을 만나는 날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안에서 살
아가다가 삶의 목적 즉 비전을 발견하는 날입니다.
경건한 영성학자 매튜 폭스라는 참 영감이 있는 지적을 하였습니다.
“게으름을 치유하는 처방은 부지런함이 아니다. 게으름을 치료하는 처
방은 단순히  ‘부지런해지자’ 라는 결심만으로 되지 않는다.”
그는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게으름에 가장 적절하고 유일한 처방은 당신 안에 있는 불꽃을 발견
하는 것이다(Finding the fire with in).”
그렇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불꽃을 발견하는 것이 게으름을 없애며 타
오르는 날입니다. 그는 바로 이 소명을 불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불꽃은 타오릅니다. 내 속에서 일어나는 불꽃 그것을 발견하면 말할 수
없이 타오릅니다.  소명이란 하나님이 나를 태어나게 하신 이유입니다.
그리고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사람이 소명을 발견하면 신
바람이 나고 타오르는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의 사역자들을 불꽃으로 삼으시느니라 하셨으되” (히1:7)
   
이사야 6장 1절
 
이사야 6장 1절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In the year that King Uzziah died, I saw the Lord seated on a throne, high and exalted, and the train of his robe filled the temple.
Isaiah 6:1 [NIV]
   
하나님의 창고에 맡기면
하나님께 맡기면 재산이 축나고 보물이 줄어드는 걸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걱정을 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말씀이 있다.
 말라기 3:10을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고 했다. 
하나님의 창고에 맡기면 불타지 않고,
 녹슬지 않고, 무너지지 않게 보관해 주실 뿐 아니라 
쌓을 곳이 없도록 만들어 주신다는 것이다.
-박종순 목사의 ‘한 주인을 섬기는 사람들’에서-


베드로전서 5:7을 보면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은행 금고는 값비싼 것, 귀한 것, 소중한 것만 맡아줍니다.
 쓰레기나 오물이나 폐지를 맡아주진 않습니다
 하나님의 창고에 맡겨보십시오
 하나님은 보물을 맡아 주실 뿐 아니라
 염려, 고통, 아픔, 한숨, 질병, 절망,
 좌절 따위 등 온갖 인생의 쓰레기들까지 
맡아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