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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ith - Hymn

북이스라엘의 멸망 왕하 17:1-12

鶴山 徐 仁 2022. 6. 8. 10:02

 

북이스라엘의 멸망 왕하 17:1-12

 
 
06월 08일 (수)
   
북이스라엘의 멸망 왕하 17:1-12



1. 유다의 왕 아하스 제십이년에 엘라의 아들 호세아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구 년간 다스리며
2.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다만 그 전 이스라엘 여러 왕들과 같이 하지는 아니하였더라
3. 앗수르의 왕 살만에셀이 올라오니 호세아가 그에게 종이 되어 조공을 드리더니
4. 그가 애굽의 왕 소에게 사자들을 보내고 해마다 하던 대로 앗수르 왕에게 조공을 드리지 아니하매 앗수르 왕이 호세아가 배반함을 보고 그를 옥에 감금하여 두고
5. 앗수르 왕이 올라와 그 온 땅에 두루다니고 사마리아로 올라와 그 곳을 삼 년간 에워쌌더라
6. 호세아 제구년에 앗수르 왕이 사마리아를 점령하고 이스라엘 사람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끌어다가 고산 강 가에 있는 할라와 하볼과 메대 사람의 여러 고을에 두었더라
7. 이 일은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애굽의 왕 바로의 손에서 벗어나게 하신 그 하나님 여호와께 죄를 범하고 또 다른 신들을 경외하며
8.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규례와 이스라엘 여러 왕이 세운 율례를 행하였음이라
9. 이스라엘의 자손이 점차로 불의를 행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를 배역하여 모든 성읍에 망대로부터 견고한 성에 이르도록 산당을 세우고
10. 모든 산 위에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 목상과 아세라 상을 세우고
11. 또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물리치신 이방 사람 같이 그 곳 모든 산당에서 분향하며 또 악을 행하여 여호와를 격노하게 하였으며
12. 또 우상을 섬겼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행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일이라
 
이스라엘을 죄로 물들인 여로보암 이후 계속 파멸의 비탈길을 걷던 이스라엘이 드디어 호세아 왕을 끝으로 앗수르에게 멸망을 당합니다. 호세아 왕은 원래 앗수르에 의해 옹립되었으나 통치 기간 중 앗수르를 배신하고 친 애굽, 반 앗수르 정책을 펼치기 시작합니다. 단적인 예로 매년 바치던 조공을 거절하고 은밀히 애굽과 협정을 맺은 것입니다. 호세아의 이런 태도 변화에 노여워 한 앗수르 왕 살만에셀 5세는 전면적으로 북이스라엘을 침공하여 3년에 걸친 사마리아 성 포위 작전 끝에 B.C. 722년 마침내 북왕국을 완전히 멸망시켰습니다.


당시 호세아는 아마도 애굽 왕의 지원을 확신하고 앗수르에 바치던 조공을 끊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애굽은 당시 국내적으로 분열 상태에 있어 이스라엘을 도울 형편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호세아는 결국 살만에셀 5세의 침공을 막지 못하고 포로로 붙잡히고 맙니다.


<앗수르 왕이 올라와 그 온 땅에 두루 다니고 사마리아로 올라와 그곳을 삼 년간 에워쌌더라 호세아 제 구년에 앗수르 왕이 사마리아를 점령하고 이스라엘 사람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끌어가고 고산 강가에 있는 할라와 히볼과 메대 사람의 여러 고을에 두었더라>(5-6절).
사마리아 성 함락은 B.C. 722년이었습니다. 그러나 앗수르의 1, 2차 침입(15:29, 16:9)으로 인해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앗수르로 포로가 되어 잡혀갔었습니다. 


본문은 2절에서 호세아 왕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다만 그 전 이스라엘의 여러 왕들보다> 특별히 더 악한 왕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축적된 죄악에 대한 심판이 곧 북이스라엘의 멸망이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이 말씀은 인간의 얄팍하고 교활한 술수는 결국 자신의 운명을 파멸로 몰아간다는 사실을 거듭 교훈합니다. 애굽과 앗수르에게 뇌물을 주며 국가의 흥망과 안전을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고 사람에게 매어달린 결과는 오직 멸망뿐이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정치 지도자의 잘못된 판단이 한 국가의 안전과 미래에 얼마나 결정적인 위협을 가져오는가 하는 사실도 교훈합니다. 성경은 호세아 왕의 우유부단하고 갈팡질팡하는 태도를 어리석은 비둘기에 비유하고 있습니다(호 7:11).


<이 일은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애굽의 왕 바로의 손에서 벗어나게 하신 그 하나님 여호와께 죄를 범하고 또 다른 신들을 경외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규례와 이스라엘 여러 왕이 세운 율례를 행하였음이라>(7-8절).
 
- 당시 변덕스러웠던 북이스라엘의 대외정책을 지적한 호세아 선지자의 비판을 찾아 확인해보십시오(호 5:13, 7:8,11,16, 8:9, 11:5, 12:1, 14:3).
- 북이스라엘의 마지막 왕 호세아에 대해 아는 대로 적어보십시오.
- 당신이 이해하는 북이스라엘의 멸망 원인을 간략히 정리해보십시오. 
 
주님,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의지해야지 앗수르도 애굽도 결코 도움이 될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앗수르와 애굽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하다 결국은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앗수르가 왕위에 앉힌 호세아를 앗수르가 끌어내리고 북왕국을 초토화했습니다. 
세상 나라를 믿고 사람에게 의지하려는 생각이 얼마나 무모하고 헛된 것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말씀이 아닐 수 없사오니 저희들 더욱 주님만을 바라보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게 해주시옵소서.
 
   
인공지능
 
“인공지능의 능력에 따라 보통 세 가지로 분류하고 있지요. 이에 대해
서도 좁은 인공지능, 범용 인공지능, 초인공지능의 분류나 약한 인공지
능, 강한 인공지능, 초강력 인공지능의 분류 또는 약인공지능,강인공지
능, 인공 일반 지능의 분류 등 용어에도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명희 저(著) 《한 발 앞선 부모는 인공지능을 공부한다》
(성안당, 164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약한 인공지능, 강한 인공지능을 넘어 초인공지능이란 모든 분야의 문
제를 다룰 수 있음은 물론 사람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으로 이러한 문제
들을 해결하는 인공지능을 일컫습니다. 자기 인식을 할 수 있고 의식을
가진 존재로까지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인간이 프로그래밍한 대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의식을 갖고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가치
판단을 하여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존재로 보는 입장입니다. 현재
까지 강한 인공지능이나 초인공지능은 공상 과학 소설에나 등장하고,
현실화되지는 않았습니다. 또한 과연 강인공지능을 개발할 필요가 있
는지 그 필요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레이 커즈
와일(RayKurzweil) 같은 학자들은 강인공지능과 마음과 의식을 가진 초
인공지능까지 개발될 것이라 전망합니다. 그는 2045년 쯤에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특이점(Singularity)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 주
장합니다.
인공지능은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인공지능을 선하게
활용하는 도덕 윤리적 기준을 제시해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인공지능으로 인한 혜택이 특정 사람들에게 쏠리지 않고, 모두가 혜택을
입도록 앞장서야 합니다.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골3:10)
   
호세아 4장 11절
 
음행과 묵은 포도주와 새 포도주가 마음을 빼앗느니라
to prostitution, to old wine and new, which take away the understanding
Hosea 4:11 [NIV]
   
끊임없이 배우려는 자세가
최근 미국 리더십 전문가 마크 머피가
2만 명의 신입사원들을 조사했는데,
그 중 46퍼센트가 취직한 지 1년 반만에 해고되거나
 그만 두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조사했더니 실력이나 업무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상사, 동료, 고객,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보내준 평가나 
피드백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능력이 부족했습니다.
공부를 안해서, 학점이 부족해서 문제가 아니라
 끊임없이 배우려는 자세가 없어서였습니다
통계에 의하면 인생의 성공의 85프로가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
능력 때문에 실패한 사람은 15퍼센트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을 합니다. 
“배운 사람을 채용하지 말고 배울 사람을 채용하라”.
- 이윤재 목사의 ‘넘어져도 배우면서 자란다’에서-


과거에 잘 배운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인생의 배움은 어느 한 순간
 배우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죽을 때까지 배우는 것입니다.
영적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최후 승리하는 사람은 끝까지 배우는 사람입니다.
성공했든 실패했든 배우는 사람입니다.
여러분도 최후 승리하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배우십시오.
배움은 능력과 관계되는 것이 아니라 태도와 관계됩니다.
배우려는 태도가 우리를 승리하게 합니다.
 끝까지 배워야 성장하고 최후 승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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