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파일] 인플레이션 전쟁
중앙선데이 입력 2022.02.19 00:26
황건강 경제부문 기자
전쟁에 이기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총력전(總力戰)의 시대. 2차 세계 대전에선 기존의 상식을 뛰어넘는 무기를 시험했다. 인플레이션도 그중 하나였다. 1942년 나치 독일은 ‘베른하르트 작전’이라 이름 붙인 위조지폐 유통 계획을 준비했다. 영국 파운드화 위조지폐를 대량으로 풀면 물가 급등으로 영국 시민들이 혼란에 빠지리라 기대한 것이다.
독일은 암거래 시장을 통해 위조지폐를 영국에 흘려보냈다. 당시 위조지폐 제작에 동원됐던 유대인 포로 아돌프 브루거는 자신의 경험을 담은 자서전 『악마의 작업장(The Devil’s Workshop)』에서 이 작전의 위력을 이렇게 묘사한다. “사업은 번창했고 어디서나 성공적이었다. 전쟁이 끝날 무렵 위조지폐는 유통되는 진짜 화폐의 40%에 이르렀을 것이다.”
위조지폐는 전황과 상관없이 영국을 괴롭혔다. 급기야 연합국 군대가 프랑스 파리와 벨기에 브뤼셀을 수복한 1944년 9월, 영국 중앙은행(BOE)은 새로운 화폐를 발행할 것이라 발표한다. 기존 화폐는 사용을 중단시키기로 했다. 과감한 행보는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 전쟁에서 국민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는 점을 다시 상기시켰다.
2018년 베네수엘라에선 생닭 한 마리가 1460만 볼리바르에 거래됐다. [로이터=연합뉴스]
눈에 보이는 적이 없기 때문일까. 인플레이션과 싸우는 중앙은행의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 ‘세계의 중앙은행’ 격인 미국 연준(Fed)은 지난해 내내 인플레이션과 경기 활성화 사이에서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다 신뢰를 잃었다. 물가 급등의 주범이란 비난도 나왔다. 연준이라고 인플레이션을 넋 놓고 지켜본 것은 아니다. 문제는 최근의 인플레이션은 공급망 충격에서 비롯됐다는 데 있다.
공급망이 막혀 시장에서 물건을 구할 수 없을 땐, 구매자가 늘지 않더라도 가격이 오른다. 경기가 활성화돼 소비 수요가 늘어난 게 아니란 얘기다. 이럴 때 금리를 올렸다간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상승)에 빠질 우려가 있다. 연준의 고민이었다. 그러나 연준이 고민할 여유는 많지 않았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란 신념을 굽히지 않던 지난해 11월 모하마드 엘 에리언 캠브리지대 퀸스칼리지 학장은 파이낸셜타임스에 ‘연준의 인플레이션 오산이 빈곤층을 상처 입히고 있다’라는 제목의 칼럼을 내고 이렇게 일갈했다. “통화 완화 정책에서 후퇴한다고 공급망 붕괴가 해결되지 않으리란 것은 충분히 알고 있다. 그러나 연준이 통화 완화에서 발을 빼는 게 늦어질수록 앞으로 더 적극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
그의 지적대로 올 들어 연준은 금리 인상을 향해 급선회하고 있다. 금융시장에선 올 3월 연준의 금리 인상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고 일부 연준 위원 사이에선 한 번에 0.50%포인트 인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연준이 걱정하던 경기 침체와 공급망 우려는 여전한데 말이다. 오히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에 원자재 공급 부족 우려가 더해졌다. 그렇다고 중앙은행이 공급망을 확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해법은 없을까. 일각에선 정부와의 공동 대응을 강조한다. 도널드 콘 전 연준 부의장은 최근 브루킹스연구소에서 진행한 팟캐스트에 출연해 “인플레이션과 관련해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할 일을 하나만 꼽자면 관세를 낮추는 것”이란 의견을 내놨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미국 우선주의 기조 속에 지속적으로 높여 온 관세를 낮추면 미국 내 물가가 떨어질 것이란 얘기다. 세계가 복잡하게 얽혀 중앙은행 홀로 인플레이션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측면에서 귀담아들을 만한 내용이다.
황건강 경제부문 기자
'國際.經濟 關係'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크라이나 전쟁 임박, 세계 안보와 경제 미칠 영향은? (0) | 2022.02.20 |
---|---|
[Why Times 정세분석 1301] 깊어지는 시진핑의 고민, 두문불출하며 회의만 계속 (2022.2.20) (0) | 2022.02.20 |
RED HANDED, 미 정치권의 친중매국노를 밝힌다 (0) | 2022.02.19 |
[사설] 초단기 알바 215만명, 일자리 정책 민낯이다 (0) | 2022.02.19 |
[Why Times 정세분석 1300] 우크라이나의 진실? (2022.2.19) (0) | 2022.0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