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왕하 1:1-8

鶴山 徐 仁 2022. 2. 14. 10:38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왕하 1:1-8

 
 
02월 14일 (월)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왕하 1:1-8


1.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이 이스라엘을 배반하였더라
2.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 있는 그의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매 사자를 보내며 그들에게 이르되 가서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이 병이 낫겠나 물어 보라 하니라
3. 여호와의 사자가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이르되 너는 일어나 올라가서 사마리아 왕의 사자를 만나 그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
4.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엘리야가 이에 가니라
5. 사자들이 왕에게 돌아오니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돌아왔느냐 하니
6. 그들이 말하되 한 사람이 올라와서 우리를 만나 이르되 너희는 너희를 보낸 왕에게로 돌아가서 그에게 고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네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려고 보내느냐 그러므로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하더이다
7.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올라와서 너희를 만나 이 말을 너희에게 한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더냐
8.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되 그는 털이 많은 사람인데 허리에 가죽 띠를 띠었더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그는 디셉 사람 엘리야로다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 있는 그의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매 사자를 보내며 그들에게 이르되 가서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이 병이 낫겠나 물어보라 하니라>(2절).
아합이 죽은 후 북이스라엘의 오므리 왕조는 급격히 그 세력이 약하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모압도 이스라엘을 배신했고(1절), 아하시야 왕도 사고와 질병으로 자리에 누웠는데 그것은 다 그의 아비와 어미,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는 죄악을 깨닫게 하려는 하나님의 징계의 채찍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아하시야는 우상의 마술적인 신탁에만 의지함으로써 결국은 하나님의 그 경고의 채찍이 심판의 채찍이 되고 만 것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이르되 너는 일어나 올라가서 사마리아 왕의 사자를 만나 그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3-4절).
엘리야는 이 계시를 받고 그 내용을 아하시야의 사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지체하지 않고 길을 나섰습니다. 이것은 엘리야의 위대한 신앙의 모습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즉각적인 순종의 자세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절대 권력을 가진 왕에게, 더군다나 악명이 높기로 유명한 아하시야에게 그의 죽음의 소식을 전한다는 것은 웬만한 신앙과 용기가 아니고서는 누구도 감히 실행하기 힘든 미션 아닙니까? 
이렇듯 엘리야는 하나님의 명령 수행을 위해서라면 언제나 자신의 생명의 위험까지도 무릅쓴 진정한 신앙의 용장이었습니다.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되 그는 털이 많은 사람인데 허리에 가죽 띠를 띠었더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그는 디셉 사람 엘리야로다>(8절).
아하시야가 엘리야을 알고 있었다는 것은 엘리야가 곧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과 그가 전한 메시지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는 뜻이 됩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죄악을 뉘우치기보다 오히려 엘리야을 체포하려 했습니다. 그만큼 강퍅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이 본문은 성도들이란 언제 어디서든 즉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사실을 교훈합니다. 성도는 어떠한 유혹과 핍박이 와도 거기에 굴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범죄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은 그가 어디에 있든 반드시 임한다는 사실과
비록 그곳이 왕궁이라 할지라도 결코 안전한 피난처가 될 수는 없다는 사실도 필히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2절)에 관해 아는대로 적어보십시오(사 7:18, 전 10:1).
-옛 이스라엘 지도에서 <에그론>을 확인해보십시오(수 13:3).
-<여호와의 사자>(3절)란 표현에 관해 아는대로 적어보십시오(왕상 19:7, 출 23:20-21, 사 63:7). 
 
주님, 엘리야는 역시 담대했고, 선지자로서의 소명의식에 투철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로부터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받자마자 아하시야 왕의 사자들을 만나 하나님의 경고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반드시 죽을 것이라>(4절)고 했습니다. 
오늘 저희에게도 엘리야처럼 순종하는 믿음과 또 담대하게 주님의 말씀을 증거할 수 있는 결단력을 허락해주시옵소서.
 
   
체험적 축적이 기적을 낳는다
 
“모든 ‘기적’은 어제와 다른 실수와 실패를 반복하는 체험적 ‘축적’
이 낳은 자식이다.  시행착오의 ‘축적’이 ‘무적’을 낳는다.  시행
착오가 결국 판단착오를 줄여주지 않는가. 기적은 뚜렷한 목적의식을
갖고 흔적을 축적하거나 누적해서 어느 순간 반전이 일어난 결과다.”


유영만 저(著) 《독서의 발견》 (카모마일북스, 154쪽) 중에 나오는 구
절입니다.
어느 마을에 당나귀 한 마리가 우물에 빠졌습니다.
당나귀의 주인은 울부짖는 당나귀를 구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마침 당
나귀도 늙었고 우물도 쓸모없던 터라 농부는 당나귀를 단념하고 동네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당나귀와 우물을
파묻기 위해 흙을 파서 우물을 메워 갔습니다. 당나귀는 더욱더 울부짖
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자 당나귀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
았습니다. 이제 죽었나 하고 동네 사람들이 우물 속을 들여다보니 놀
라운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당나귀는 자기를 파묻기 위해 던져진 흙을 털어 바닥에 떨어뜨리며,
그렇게 발밑에 쌓인 흙더미를 타고 점점 높이 올라오고 있었던 겁니다.
나를 파묻기 위해 던진 흙을 밟고 일어서고 있었던 것입니다.
뚜렷한 삶의 목적이 있는 사람은 실패와 시행착오, 비난과 조롱 등 모든
체험을 축적하여 기적을 낳습니다.
 
주님은 일곱 번, 아니 열 번의 고난과 넘어짐 속에서도 우리를 일으켜
주시며 새 힘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잠24:16)
   
전도서 1장 4절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Generations come and generations go, but the earth remains forever.
Ecclesiaste 1:4 [NIV]
   
눈물로 기도하는 것을 귀하게 보신다
눈물은 거짓이 없는 자신의 연약한 모습을 의미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눈물로 기도하는 것을 가장 귀하게 보신다.
시편 56;8에는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했다.
또 다윗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
주는 나를 용서하사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나의 건강을 회복시키소서’라고 간구했다.
다윗은 왕이면서도 눈물로 기도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고달픈 나그네 인생이어서 
몸이 노쇠해지고 죄가 많았기 때문이다
-김춘환 목사의 ‘내 손 잡아 주신 주님’에서-


인생이란 가난한 자나 부한 자나 학식이 있는 자나
 권세가 있는 자나 없는 자 모두 고달픈 인생이며 
병들어 기력이 약해질 때도 있으며
태어날 때부터 죄인인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니 자신이 인간의 나약함을 알고 
눈물로 하나님께 간구하십시오.
전능하신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연약한 모습을 보시고
 그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