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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 없는 노동자는 노동권을 오롯이 보장받을 수 없다 [류호정의 반박불가]

鶴山 徐 仁 2022. 2. 7. 18:32

나는 고발한다. J’Accuse…!

 

노동조합 없는 노동자는 노동권을 오롯이 보장받을 수 없다 [류호정의 반박불가]

 

중앙일보 입력 2022.02.07 13:44 업데이트 2022.02.07 15:13


류호정

 

나는 고발한다. J’Accuse…!

 

민주노총을 ‘고발’한 이두수 작가(건설노동자)의 글에 대한 류호정 정의당 의원의 답글입니다.

 

글을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현장 노동자의 삶과 멀어진 노동조합, 현장 노동자를 곤혹스럽게 하는 노조라는 평가만큼 아픈 건 글쓴이의 냉소다. “한국에서 노조는 수명을 다했다고 느낀다”라는 포기 말이다.


집회에서 들려오는 구호는 공감할 수 없고, 노래는 일하는 데 방해가 된다. 글쓴이에게 노조는 나를 위한 우산이 아니고, 노동자를 위한 울타리가 아니다. 그래서 포기했다. 아니, 포기하고 있다.

 

그런데 그러면 안 된다. 노조 없는 노동자는 노동권을 오롯이 보장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전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말했다. “노조가 없거나 금지된 여러 나라를 다녔는데 그런 나라에서는 가혹한 노동 착취가 일어나고, 산업재해로 노동자들이 연일 다치며 고통받지만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다. 노조와 노동쟁의가 없기 때문이다.” 또 진보학자 노엄 촘스키는 “노동조합은 가난한 사람들이 단결하고 집단으로 행동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래서 기업과 언론이 앞장서 노조를 매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어쩌면 글쓴이는 이 역시 ‘관념의 세계’라고 핀잔할 수도 있겠다.

 

지난해 8월, 중앙일보의 '나는 저격한다'를 통해 나는 민주노총을 비판했다. "보수언론의 꾐에 넘어간 얼치기 노조 운동가 출신 국회의원이 사고 쳤다"고들 했다. 깊이 있는 토론을 만들어내지 못한 부족한 나의 글에 일차적 책임이 있다. 반향은 예상했지만, 글을 냈다. 변화의 시작은 우리 자신을 아프게 직시하는 것부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주최한 전국노동자대회. 코로나19 방역대책을 어긴 혐의로 양경수 위원장이 구속됐다. [뉴스1]

 

 

앞서 지난해 7월, 전국노동자대회는 많은 걱정과 우려 속에 진행됐다. “코로나 시국에 뭐하는 짓이냐”에도 불구하고 했다. 우리의 권리니까. 그런데 집회 후, 집회를 ‘왜’ 했는지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래, 사람들이 민주노총이 하는 일을 잘 몰라줬다. 맞다, 보수언론이 노동조합을 매도했다. 그런데 그렇게 세상 탓, 언론 탓을 십수 년째 하는 민주노총의 잘못은 정말 없을까?

 

지난해 집회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노동권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를 위한 집회였다. 주요 의제였던 건강보험공단 투쟁은 콜센터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를 위한 것이었다. 그 전의 톨게이트 투쟁도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그 전의 파리바게트 투쟁은 불법파견 청년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받기 위해 했다. 과거 20% 정도에 불과했던 민주노총 여성 조합원은 현재 40%에 이른다. 비정규직 조합원도 꾸준히 늘어 30%를 넘어섰다. 그러나 세상이 아는 노조의 얼굴은 서너 개 대기업 정규직 노조다. 화난 표정으로 머리띠를 두르고, 조끼를 입은 아저씨의 모습이다. 머리띠나 조끼에는 문제가 없다. 아저씨도 잘못이 없다. 다만, 시민들의 눈에 보이는 우리의 모습, 우리가 시민에게 말을 거는 방식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개별 조합원, 사업장에 하는 말이 아니다. 총연맹과 산별노조가 들어줬으면 하는 이야기다. 노동자 집회는 우리의 정당성을 알리는 것만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우리와 함께할 시민을 더 많이 모으기 위해서도 한다. 그게 잘 안됐다는 거다. 특히 위원장까지 구속됐던 집회는 벌금이 참 많이 나왔다 들었다. 특근해서 내는 조합비가 억 소리 나는 벌금으로 쓰였을 텐데.


민주노총 밖에서 지켜보는 글쓴이 같은 시민에게, 그리고 얼치기 노조 운동가 출신 국회의원 류호정에게 “네가 잘 몰라서”“우리가 얼마나 노동자를 위하는데”라고 역정을 내면 당장은 속이 시원할지 몰라도 노조는 세상과 점점 더 유리된다. 노동운동은 바뀌어야 한다. 민주노총은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하는 조직이다. 사람도, 돈도 있다.

뭘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난 1월 비노조 택배기사 연합이 국회 앞에서 “이유 없는 택배노조의 파업을 반대한다”며 집회를 벌였다. 이들은 CJ대한통운 노조가 시민들을 볼모로 한 달 가까이 총파업을 벌이고 있다며 규탄했다.[뉴스1]

 

 

하나, 우리 안의 기득권을 인정하자.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던 586세대가 더불어민주당의 기득권이 된 것처럼, 우리도 그렇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 공기업 원청 노조. 상위 10% 노동과 하위 10% 노동 격차는 매우 크다. 급여만 그런 게 아니다. 최근 이슈였던 중대재해처벌법, 공휴일법에서도 5인 미만 사업장은 제외됐다. 300인 이상 사업장은 그야말로 풀로 충전한 노동권을 인정받고 작은 사업장이나 특수고용노동자들은 배제되는 노동관계법이 많이 늘었다. 물론 민주노총의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얼마나 비정규직을 위해 열심히 연대하는데”라는 식의 시혜적 시선 말고, 우리 안에도 기득권이 생겼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둘,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자. 사회적 대화는 노조에 가입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또 하나의 ‘거대한 교섭’이다. 이에 응하는 것은 노조 밖의노동자를 끌어안아야 할 노동조합의 선택이 아니라, 의무에 가깝다. 1990년대 후반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당시 맞은 뒤통수가 아직도 얼얼하다는 것을 안다. 경영계와 정부도 진정성을 갖고 테이블에 나와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사회적 양극화, 코로나 19,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산업 전환 등 개별 노조 힘만으로 대응할 수 없는 의제들이 코앞에 있다. 이미 업종과 지역 차원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정책협의가 이뤄지고 있다. 노동조합은 그 중심에서 사회적 대화를 이끌어야 한다. 담장 넘어 하는 투쟁만큼, 협상도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셋, 방관하지 말자. 집회 현장이나 사업장에서 다소 부적절한 일이 발생할 때가 있다. 심지어 하청·자회사노조의 투쟁을 원청노조가 방해하거나 외면하는 일도 있다. 비정규직 차별을 공고히 내세우는 간부도 있다. 그럴 때마다 “총연맹은 권한이 없다” “산별은 책임이 없다”면서 개별 지회와 조합원 문제로 어물쩍 넘기는 건 노조 밖에서 어떻게 보일까. 책임 없다, 권한 없다는 설명 혹은 해명, 변명은 노동자 권리를 침해하는 원청과 사측이 가장 많이 쓰는, 우리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레토릭이지 않나. 180석 슈퍼권력을 가지고도 만날 남 탓하는 민주당을 두고 우리는 꼴불견, 내로남불이라 하지 않나.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각각 100만 조합원을 가진 거대 조직이다. 작은 일도 책임져야 한다. 문제를 잘 해결하고 조직문화를 바꿔나가면 역사는 쌓인다. 일하는 시민이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넷, 평범해지자. 가령 노동자는 관념적 존재가 아니라 우리 곁의 ‘일하는 시민’이라는 것. 퇴근 후 파전에 막걸리, 치킨과 맥주 맛을 아는 사람들이라는 것. 그런 사람들이 모인 곳이 노조라는 것, 이런 걸 알려야 한다. 말을, 글을, 이미지를 좀 더 일상적 언어로 만들어야 한다. 빨간색 쓰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고, 천막이나 주먹 사진을 유인물에 넣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부터 떨치자. 포토샵 할 줄 아는 젊은이 몇을 홍보 부서에 배치하는 거로, 그나마도 땜질하듯 투잡으로 홍보시키는 거로 홍보 역량 강화 안 된다. 홍보도 투쟁하듯 절박하게 하지 않으면 결과를 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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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한 건설 노동자의 칼럼에 대한 ‘답글’(반박불가) 형식이다. 그러나 갱폼에서 일하는 저 현장 노동자의 글에 반박하거나, 오해를 바로잡는 건 내 몫이 아닌 것 같다. 한 노동자가 저런 생각을 가진 데에는 우리 책임이 크기 때문이다. 정의당 국회의원 6명 중 5명이 노조 출신이다.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도 한 말씀 드리고 싶다.

지난 2일 광주광역시 신축 아파트 붕괴사고 현장에서 26t 규모의 콘크리트 잔해물이 추락해 외벽에 걸려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광주 사고는 현장 노동자의 자부심 결여만 원인일 리 없다. 공사 기간 단축 때문이고, 불법 다단계 하도급 때문이다. 공사비 후려치기 때문이고, 허술한 안전대책 때문이다. 아마 글쓴이가 더 잘 알 거다. 이런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려면 글쓴이와 같은 노동자의 단결된 힘이 필요하다. 그리고 제도권 정치권력이 필요하다.

 

노조와 정의당이 필요한 이유다. 이 글에서 주어로 썼던 ‘우리’는 류호정이 있었던 민주노총과 류호정이 있는 정의당만을 지칭하는 게 아니다. 일하는 시민이 행복한 나라, 적어도 일하다 죽지는 않는 나라를 원하는 글쓴이와 글쓴이의 가족, 동료 모두를 포함한다. 아니, 포함하고 싶다.

 

‘관념 팔이’라 생각하실 수도, ‘입바른 소리’라 여기실 수도 있겠다. 그래도 말씀드린다. 철옹성이 아니라, 우리의 울타리를 만드는 일에 노조와 정의당은 진심이다. 잘하지 못했다는 비판에( 대한 반성)도 진심이다. 글 쓴 노동자분도 동참해 주시기를 면목 없이 부탁드리며 글을 맺는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