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최진석의 퍼스펙티브
뜬금없는 종전선언, 산에 가서 붕어 잡는 꼴
중앙일보 입력 2021.12.20 00:35
대통령의 불안한 안보관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한반도 종전선언을 위한 대토론회에서 이인영 통일부 장관(앞 줄 맨 오른쪽)등 참석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켈로그-브리앙 조약이 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0년이 지나자 앞으로 일어날 전쟁을 막아보고자 1928년 8월 27일 프랭크 켈로그 미국 국무장관과 아리스티드 브리앙 프랑스 외교장관이 제창하고 15개국으로 시작하여 63개국까지 동참한 국제 조약이다. 이 조약에서 처음으로 전쟁이 불법으로 규정된다. 그러나 조약 체결 후 10년 만에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독일과 일본도 조약 가입국이었다. 평화를 지향했던 조약이 남긴 ‘평화적’ 결과로는 켈로그가 노벨 평화상을 받은 것 이외에는 없다. 이후의 어떤 전쟁도 막지 못했다.
1938년 9월 29일 맺어진 뮌헨협정이 있다. 독일 총통 히틀러, 영국 총리 체임벌린, 이탈리아 총리 무솔리니, 프랑스 총리 달라디에가 서명했다. 다음날 체임벌린은 영국으로 돌아와서 ‘우리 시대를 위한 평화’를 지켰다고 자화자찬에 빠졌다. 이 협정은 독일에 군사적 역량을 강화할 시간만 벌어주었을 뿐이다. 6개월 후 독일은 체코슬로바키아 병합을 시작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다. “우리는 완전하고 절대적으로 패배했다!” “이것은 끝이 아니다. 시작일 뿐이다!” 이 두 마디는 뮌헨협정 소식을 듣고 처칠이 한 절규다. 그러나 ‘우매한 대중(愚衆)’은 야유하면서 그를 전쟁광으로 매도했을 뿐이다.
평화협정이 평화 가져온다는 생각은 역사 모르는 순진한 환상 켈로그-브리앙조약 10년 후, 뮌헨협정 6개월 뒤 2차 대전 터져 ‘언제라도 취소할 수 있는 선언’ 집착 이유는 뒷마음이 있기 때문 종전선언은 국익 아닌 북한에 맞춰지는 방향으로 이끌릴 우려 커 |
문 대통령, 안보 문제서 믿음 주지 못해
나랏일을 다루는 사람이 조약이나 협정으로 현실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면, 그는 환상에 빠져 있거나, 심리적 기대와 객관적 사실을 구분하지 못하거나, 마음과 입을 따로 부리는 속임수에 능한 사람이다. 모르핀 같은 잠깐의 평화라면 몰라도, 그것을 장기간 지켜낸 평화협정이란 인류 역사에서 아직은 없다. 평화를 앞세운 나라는 대개 평화를 잃고 굴종을 얻었다. 역사책에서 배우고도 모른 척한다. 딴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조약이나 협정의 허망함을 모르는 것 같지 않다. 종전선언을 주장하면서도 2018년 9월 25일 미국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이기 때문에 언제라도 취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어떤 선언을 주장하는 국가의 수반이 언제라도 취소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을 듣기란 참 민망하다. 그런데도 최종건 외교부 제1차관은 지난달 15일 한미전략포럼에서 종전선언으로 “누구도 못 벗어날 틀”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통령과 외교차관 사이에는 말의 위치에 큰 간극이 있다. 이 간극 사이에 무언가 뒷마음이 있을 것이다. 그 뒷마음은, 어떻게든 당사국들을 종전선언에 동참시킨 뒤 종전선언으로 설령 부작용이 나오더라도 그 부작용을 지키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나는 문 대통령이 주장하는 종전선언을 반대한다. 선언 자체가 대통령 본인이 말한 것처럼 ‘언제라도 취소할 수 있는 것’ 정도로 실효성이 없고, 종전선언으로 야기될 “누구도 못 벗어날 틀”이 대한민국의 안보에는 오히려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안보에 관한 문제에서는 줄곧 믿음을 주지 못해왔다.
국군의날에 가수 불러 쇼
종전선언은 안보 이슈이고 그 중심에는 북한 핵무기가 있다. 북핵을 대하는 문제에서 김대중-노무현-문재인은 같은 입장이다. 이들은 북한이 핵을 개발할 때부터 그것을 감추거나 도외시하면서 “북한은 핵을 개발할 의지나 능력이 없다”고 말해왔다. 노 전 대통령은 북핵 문제를 둘러싸고는 북측의 입장을 가지고 미국과 싸워왔고, 국제무대에서 북한 입장을 변호해 왔다. 이는 노 전 대통령 본인이 스스로 한 말이다. 북한 핵무기를 용인하거나 애써 눈감아버렸던 입장을 가졌던 대통령이 이제 와서 종전선언을 ‘비핵화 입구론’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무등산에 가서 붕어를 잡아 오겠다고 하는 것만큼이나 전략적 일관성이 없다. 전략적 일관성이 없는 것을 우리는 환상이라고 한다.
문 대통령은 자신이 선언한 인사 5원칙을 표를 구하는 데만 쓰고, 당선 후에는 헌신짝처럼 버렸다. 취임사는 한 줄도 지켜지지 않았다. 임기 내내 거짓말과 ‘내로남불’이 넘쳤다. 정치는 말로 하는 것인데, 말이 신뢰를 잃었으니, 종전선언에 대한 말도 믿기 어렵게 되었다. 문 대통령의 말 습관으로 볼 때 종전선언은 그가 하는 말과 다른 각도를 내장하고 있을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것이 그의 뒷마음일 것이다.
문 대통령은 안보에 관한 한 대한민국의 자존이나 이익을 지키는 것과는 다른 길을 갔다. 그런 사례는 일일이 다 거론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국군의날을 군사 퍼레이드도 없이 야밤에 가수들을 불러 쇼로 보냈다. 핵을 가진 북한의 눈치를 보거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다. 군 통수권자임에도 불구하고, 임기 내내 민족 관념을 중심으로 삼느라, 대한민국을 위해 싸운 사람을 핍박하고, 오히려 대한민국을 적으로 삼고 싸운 자들을 높이느라 바빴다.
대한민국 안보 흔드는 종전선언
문 대통령의 안보관이 압축적으로 드러난 사건이 있다. 올해 6월 4일에 국가정보원 원훈석의 문구를 바꿨는데, 북한과 연계된 지하당 조직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무기징역 선고를 받고 복역하다가 20년 만에 전향서를 쓰고 특별 가석방된 신영복의 글씨체를 사용하였다. 이것이 국가정보원이나 국가 안보에 주는 메시지를 상상해볼 때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군 통수권자로서 안보의 최고 책임자인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적으로 삼고 싸운 신영복을 존경하는 사상가라고 대내외로 공개적으로 말해왔을 뿐 아니라,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때는 김여정 등 북한 대표단과 함께 청와대 본관 벽에 걸어놓은 신영복의 작품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대통령이라는 위치를 고려할 때 이건 상식적이지 않은 기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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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사건에 대해서는 여전히 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최원일 함장과 병사들은 거리를 헤매고 있다. 군 통수권자인 문 대통령의 안보관은 이적 여부를 따져봐야 할 정도다. 사정이 이러하니 문 대통령이 주장하는 종전선언도 대한민국을 이롭게 하는 선언이 아니라 북한의 뜻에 맞춰지는 방향으로 이끌릴 가능성이 더 크다.
어떤 제도도 그 제도를 움직이는 중추가 잘 마련되지 않고 실시되면 부작용이 훨씬 크다. 민주주의는 시민이 중심인 제도인데, 시민이 형성되지 않은 민주주의는 중우정치(衆愚政治)라는 부작용만 남긴다. 진영 갈등으로 날을 새는 우리의 민주주의는 이미 중우정치로 귀결되고 있다. 대통령의 안보관을 고려해서 본다면 종전선언도 부작용을 낳는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종전선언이 이뤄지면 가장 먼저 유엔군사령부의 해체 문제가 제기될 것이다. 한·미 동맹 해체는 더 강하게 요구될 것이며,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깃발이 거리를 메울 것이다. 국제적으로는 북한·중국·러시아가 이 세 가지 문제를 강하게 제기할 것이다. 이는 해가 동쪽에서 떴다가 서쪽으로 지는 일만큼이나 분명하다. 선언문에 이 세 가지는 건드려지지 않을 것이라고 확인하는 문구가 들어가든, 들어가지 않든 그렇게 된다. 게다가 대통령 본인이나 주위에서 권력을 형성하고 있는 사람들이 원래 한·미 동맹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던 사람들이었다.
종전선언이 종전 주는가
문 대통령은 ‘언제라도 취소할 수 있는 선언’에 왜 그렇게 집착하는가? 대통령 곁의 외교 책임자는 왜 종전선언을 ‘누구도 못 벗어날 틀’로 짜려고 하는가? 일치하지 않아 보이는 이 두 태도 사이의 간격에 진짜 뒷마음이 있다. 이 뒷마음이 가리키는 방향은 대한민국의 힘을 빼는 방향일 가능성도 있다. 대한민국의 힘을 뺀다는 이 부정적인 형상은 민족이라는 환상으로 분칠되어, 오히려 대중들에게는 긍정적인 형상으로 보이게끔 시도될 것이다. 이런 시도는 사실 해방 후부터 지금까지 매우 오랜 시간 지속하여 온 하나의 정치적 흐름이기도 하다.
갈라진 혀는 말이 좋다. 그래서 노자도 “믿음직스러운 말은 아름답지 않고, 아름다운 말은 미덥지 않다”고 하였다. 평화니 종전이니 하는 말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평화협정이 평화를 주고, 종전선언이 종전을 준다고 하는 지도자는 얼마나 단순한가. 또 얼마나 위험한가.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 새말새몸짓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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