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아시아나 통합, 해외승인 ‘감감무소식’…왜?①[떴다떴다 변비행]
변종국기자 입력 2021-12-07 14:27 수정 2021-12-07 16:20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기업 결합(통합)을 위해 유럽연합(EU)과 미국, 일본, 중국 등 해외 주요 국가의 승인을 받는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글로벌 시장에 큰 영향을 주는 기업통합은 국내와 해외 경쟁 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EU를 비롯한 주요 해외 국가들의 정식 심사가 지연되면서 양사의 통합이 내년 상반기(1~6월)에도 마무리 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기업 결합을 담당하는 EU 집행위원회는 통합에 대한 본보의 질문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결합 심사는 위원회에 아직 공식 통보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대한항공은 올해 1월 9개의 필수신고국가 경쟁당국에 기업 결합 신고를 했죠. 그런데 EU는 신고를 받긴 했으나 통합 심사에 착수를 하진 않은 겁니다. 일본 경쟁 당국 관계자도 “(통합에 대해) 대외적으로 공식화한 사안이 아니라 언급을 할 수 없다”고 말했고, 미국 측도 “통합에 대해서 쉽게 심사를 하진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죠.
대한항공은 현재 EU와 본 심사를 위한 사전 협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EU 측에서 요구하는 자료와 대한항공이 줄 수 있는 자료 사이의 간극이 있어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는 말도 있습니다. 사전 심사가 마무리 되면 공식 심사인 ‘본심사’를 진행하는데, 본 심사 결과도 최소 3~6개월 정도 걸립니다. 그러나 소비자 이익에 큰 영향을 주는 기업 결합은 더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하죠. EU 집행위원회는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통합에 대한 본심사를 2019년 12월에 시작했지만 아직까지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이기에 통합으로 가는 길이 순탄치가 않은 것일까요? 이는 통합이 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오늘부터 시리즈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에 따른 우려는 무엇인지, 그리고 외국 경쟁당국이 무엇을 꼼꼼하게 살필지 등에 대해서 실제 통합 사례에 비춰 조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주요기사
소비자 효용 깐깐히 따지는 외국 경쟁당국
기업 결합 심사에서 경쟁당국들이 심도 있게 고려하는 점이 소비자 후생과 소비자 효용입니다. 기업간 결합으로 독과점이 발생해 소비자 이익이 감소하거나, 감소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결합 및 통합을 승인하지 않죠. 이른바 ‘반독점 금지(Antitrust)’에 관한 심사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닙니다.
반독점 금지에 관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 대표적인 미국의 법이 ‘클레이튼 법 7조’입니다. “주식이나 기타 주식자본의 취득 등으로 통상 과정이나 또는 다른 국가의 통상에 영향을 미치거나, 경쟁을 감소시키거나, 독점을 형성하는 경우 통합을 금지한다”는 내용입니다. 이런 법들의 기본 바탕에는 소비자 후생 감소에 대한 우려가 깔려 있습니다. 결국 “부를 창출하는 결합과 부를 감소시키는 결합을 적절히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 원칙입니다. 기업이 열심히 잘 해서 독점적인 지위 또는 시장 지배력을 가지게 되는 건 문제가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독점적 지위를 얻은 것이 소비자들이 자연스럽게 선택한 결과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인위적인 기업 결합에 의한 시장 지배력은 소비자 효율이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엄격하게 심사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런 기준에서 보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으로 인해 △소비자 피해가 발생하지는 않는지 △독과점적인 지위가 형성되는 노선이나 공항 등이 있는지 △경쟁이 제한되는 상황이 발생하지는 않는지 등이 관건일 것입니다. 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통합으로 인해 시장 점유율이 50%가 넘게 되는 노선이 30여개가 넘습니다. 바르셀로나, 파리, 런던, 로마, 시카고, LA 노선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런 노선 때문에 행여나 자국의 소비자들이 피해를 보진 않을지 꼼꼼하게 조사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외교부 등에 따르면 2015~2019년 EU에 신고 된 총 1875건의 기업결합 중 160건(8.5%)에서 시장 경쟁을 제한한다는 이유로 결합에 대해 ‘조건부 허용 또는 금지 결정’이 내려지거나 기업 스스로 기업결합을 철회했다고 합니다. 같은 기간 중 본 심사(2단계 심사)가 개시된 사건만을 살펴보면 총 46건 중 약 87%인 40건에서 조건부허용 또는 결합 금지 결정이 내려지거나, 기업 스스로 결합 논의를 철회 했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점은, EU는 독점적인 지위가 발생할 것 같은 결합에 대해서는 조건부 허용(commitments; 해당 기업이 EU 경쟁총국에 시정 조치안을 제시하고 이해관계자 등의 의견수렴을 거쳐 최종적으로 구속력 있는 조치 부과) 방식을 활용한다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결합을 인정해줄 테니, 대신 다른 사업을 포기 하거나 다른 업체의 진입을 허락하거나 특정 시장에 진입하지 않는다”는 등의 조건을 다는 겁니다. 기업 결합 승인에는 공짜가 없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통합에 있어서도 조건부 승인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항공 운임 인상에 대한 우려
대표적인 독점적 지위에 따른 소비자 이익 감소는 항공 운임 인상 및 서비스 감소일 것입니다. 우리가 독과점을 우려하는 것도 결국엔 가격 인상에 대한 우려 때문이죠. 예를 들어 한 노선에서 100% 독점인 경우 항공료가 인상될 수 있다는 우려를 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대한항공과 KDB 산업은행 측은 언론 등을 통해서 “항공료 운임은 고시를 해야 하고 정해져 있는 것이기 때문에 함부로 올리지 못 한다”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국토교통부도 “항공료 인상에 대해서 감시를 통해 소비자들이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원칙도 세웠죠. 그러나 업계에서는 항공권 가격이 책정되는 메커니즘에 비춰 볼 때 대한항공과 국토부, 산은의 주장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말합니다.
항공권은 공식적으로 운임을 대외적으로 공표하고 있는 건 맞습니다. 그런데 공지된 소비자 가격과 실제 소비자들이 내는 운임은 천차만별입니다. 항공사들은 특정 노선의 항공권 가격에 대해 최대 최소 가격을 정해 놓고서, 최소 최대 범위 안에서 운임을 8~16단계로 까지 나눠놓습니다. 즉 미국으로 가는 항공료 값이 100만원이라고 해도, 실제로 그 아래에서 20만 원짜리, 40만 원짜리, 80만 원짜리로 좌석 등급을 나누는 것이죠. 항공사에 따라 이름이 다르지만, X클래스 좌석, Y클래스, A, B, C, D 클래스 등으로 가격을 구분합니다.
이후 항공사들은 다른 항공사들과 가격 경쟁을 통해서 어느 클래스 좌석을 판매할지를 결정합니다. 경쟁상대가 조금 낮은 가격을 내놓으면 거기에 따르다가, 수요가 몰리면 점차 높은 가격의 좌석을 내놓습니다. 경쟁자가 많을 수록 항공료의 값이 내려간다는 원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경쟁자가 많으면 눈치를 봐가면서 항공권을 팔아야 하기에 함부로 비싼 클래스의 항공권을 못 내놓는 것이고, 자연스럽게 시장 가격이 낮게 형성이 됩니다. 경쟁의 원리를 철저히 따르는 겁니다. 과거에 저비용항공사들이 베트남 노선에 대거 진출하자, 항공료 가격이 반절 가까이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대한항공 독점이던 인천~몽골 울란바타르 노선 운임도 2019년 아시아나항공 취항 이후 낮아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만약 어느 항공사가 특정 노선에 대해 독과점 지위에 놓여있다고 해봅시다. 비싼 좌석 클래스의 항공권을 내놔도, 소비자들은 대안(다른 항공편)이 없기 때문에 비싼 값에 항공권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중요한건 공식적으로 공시한 항공권 가격 및 항공 운임은 바뀌진 않았다는 겁니다. 다만, 소비자들에게 비싼 좌석이 더 많이 팔렸을 뿐입니다.
국토부가 항공권 가격을 감시한다고 했지만, 대한항공이 어떤 클래스 좌석을 얼마나 팔았으며 과거와 비교해 얼마나 비싸게 팔았는지까지 감시하기란 쉽지 않을 겁니다. 민간 기업인 대한항공이 통합 이전과 비교해 항공권을 비싸게 팔지 않았다는 자료를 국민들에게 공개해야하는 의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대한항공으로서는 얼마든지 항공권이 팔리는 상황에서 비싼 좌석의 항공권을 더 팔고 싶어 하는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다만, 이렇게 독과점 적인 지위를 갖게 된 것이 정부에 도움을 통한 ‘인위적인 통합’에 따른 결과물이라는 것이 국내외 경쟁 당국들의 깐깐한 조사를 받는 이유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렇게 소비자들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비싼 항공권을 구입하게 되는, ‘소비자 후생이 감소하는 상황’을 어떻게 판단할지는 한국 공정거래위원회와 해외 경쟁 당국의 몫입니다. 별 문제가 없다고 넘어갈 수도 있고, 더욱 꼼꼼하게 심사를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일부 시민사회단체나 업계에서는 이러한 독점적 지위에 따른 소비자 후생 감소를 크게 우려하고 있는 것도 앞에서 살펴본 이유 때문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미국과 EU 경쟁 당국이 항공사 결합 심사에서 내린 실제 판결을 바탕으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을 어떻게 바라볼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변종국 기자 bj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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