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차하면 스텔스로 둔갑한다…中·러 '눈'보다 뛰어난 KF-21 [김민석 배틀그라운드]
중앙일보 입력 2022.01.23 06:00 업데이트 2022.01.23 13:01
우리 손으로 만든 전투기 KF-21 보라매가 실외에서 처음 위용을 드러냈다. 짙은 회색 몸통에 꼬리 날개에는 흰 글씨로 ‘KF-21’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지난해 12월 29일 경남 사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격납고에 있던 KF-21 시제기 1호기는 토봇에 이끌려 바깥으로 나왔다. 토봇은 토잉(Towing·견인) 로봇의 준말이다.
KF-21 제작 중인 KAI 사천공장 내부 전경. 태극기 오른쪽으로 꼬리 날개에 독수리 머리 무늬가 그려진 KF-21 시제 3호기가 보인다.
토봇(견인 로봇)에 이끌려 격납고 밖에서 처음 나와 공개된 KF-21. 토봇은 사람이 원격으로 조종한다.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KF-21 출고식 때만 해도 시제기 1호는 기본적인 도색만 돼 있었다. 하지만 이날 공개한 KF-21 시제기 1호는 전투기로서 필요한 모든 장치와 전투 도색까지 마친 상태였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가 개발 중인 KF-21 보라매 전투기가 완전 무장한 이미지. [KAI]
KAI 사천공장에서는 현재 시제기 6대 가운데 4대(1~4호기·단좌)에 대한 조립을 완료하고 5·6호기(복좌)를 조립 중이었다. 1·2호기에는 엔진까지 장착했다. 공장 내부에선 조립이 끝난 3·4호기의 조종석 주위에 기술자 서너 명이 둘러앉아 계기판을 들여다 보고 각종 시험을 진행하고 있었다.
KAI 사천공장에서 엔지니어들이 KF-21 조종석에서 각종 장치를 테스트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시제기의 무늬와 색깔이 모두 달랐다. 전투기들의 몸통은 짙은 회색과 옅은 회색, 약간씩 다른 얼룩무늬였다. 꼬리 날개도 1호기는 가장 기본인 회색에 흰 글씨뿐이었지만, 3호기는 파란 바탕에 붉은색과 흰색의 독수리 머리가 그려져 있었다.
파란색 바탕에 붉은색과 흰색의 독수리 머리 문양으로 그려진 KF-21 시제 3호기. 꼬리 날개에는 KF-21 003이라는 표시가 적혀있다.
4호기 꼬리 날개는 검은색 바탕에 골드색 화살표 그림이 있었다. KAI 이상석 사업관리실장은 “비행시험을 하면서 공중에서 눈에 띄지 않는 위장 효과가 있으면서도 가장 멋있는 무늬와 도색을 고를 계획”이라고 말했다.
검은색 바탕에 골든색 화살표 문양이 그려진 KF-21 시제 4호기. KAI는 시제기마다 기반 도색과 문양을 다르게 한 뒤 공중에서 가장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멋있게 보이는 것을 선택할 계획이다.
올해 KF-21에 대한 본격적인 기동 시험을 시작한다. 일단 2월부터 엔진을 가동하는 시험에 들어간다. 엔진이 작동하면서 KF-21의 모든 장치가 제대로 기능을 하는지 점검하는 것이다. 엔진과 각종 계기판 및 장치 등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면 곧바로 KF-21에 대한 활주로 시험으로 넘어간다.
KF-21 개발과 생산 주요 일정. 2002년 11월 KF-21의 소요가 결정된 이후 거의 20년 만에 시제기를 완성했다. 시제기는 2022년 6월 말 또는 7월 초부터 시험비행에 나설 계획이다.
KAI 관계자는 “엔진 시험이 정상적으로 완료되면 봄부터 전투기가 활주로에서 달리는 주행시험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활주로 주행시험은 전투기가 비행은 하지 않지만, 활주로를 고속으로 달리는 시험이다. KAI 관계자는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라고 말했다.
6월 말부터는 본격적인 비행시험에 나선다. 당초 7월부터 초도 시험비행을 할 예정이었는데 조립과정과 비행시험 준비가 순조롭게 이뤄져 일정을 앞당기기로 한 것이다. KAI가 시험비행 일정을 앞당긴 것은 시간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서다. 시험비행은 4년 동안 2241번(소티)을 시행하는데 시간이 빠듯하다는 것이다.
일단 KF-21이 제대로 비행하는 지가 관건이다. 이어 조금씩 비행 고도와 거리를 확대해가면서 성능을 시험해야 한다. 또 전투기에 장착한 연료탱크 등 외장 장치가 문제없이 분리되는 지도 중요하다. 전투 기능에서 미사일 등 무기를 제대로 발사하는지, 공중에서 급선회 등 각종 전투기동 능력도 시험해야 한다.
이런 시험과정은 밤낮없이 지속한다. 낮에 실시한 시험비행에서 미세한 오류까지 잡아내 야간에 설계를 수정하고, 다음날 그 결과를 반영해 다시 시험비행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의 주 52시간 노동시간 제한으로 부담이 크다. 그래서 시험비행할 수 있는 시간을 최대한 확보하려는 것이다.
최근 2년 동안엔 코로나19 사태로 해외 부품업체가 셧다운되는 바람에 부품공급이 어려워지면서 공기가 지연됐다. 특히 지난해 4월 대통령이 참석하는 시제기 출고식(roll out)을 앞두고 해외 부품 공급이 지연돼 홍역을 치렀다. KAI는 해당 해외업체로 직원을 직접 파견해 생산을 독려하고, 사천공장에선 1일 3교대로 근무하면서 개발일정을 맞췄다고 한다.
이 실장은 “지금은 계획된 개발 일정보다 1달가량 앞당겼다”고 말했다. KAI에 기술지원을 나온 미 록히드 마틴 기술자들은 처음엔 “실현이 어려운(success oriented) 프로그램”이라며 비관적이다가 지금은 “경이적(miracle)”이라며 탄복했다고 한다.
생산공장에 인접한 구조시험동에선 KF-21 구조시험기 2대에 대한 내구성 시험에 한창이었다. 22만개가 넘는 볼트와 너트를 고정하기 위한 구멍만 10만여개인 KF-21이 비행하면서 지속적으로 가해지는 압력에 얼마나 버티는지를 시험한다. 날개하중 피로도 시험은 매우 중요하다.
KF-21의 기체 피로도와 신뢰도를 시험하고 있는 KAI 시험장. KF-21이 기본 수명 30년의 2.5배에 해당하는 기간 동안 비행에서 견딜 수 있는 지와 22만 개가 볼트 너트로 이어진 KF-21의 신뢰도를 시험 및 분석한다.
전투기 수명은 30년이지만, 수명의 2.5배(75년)까지 견디는지 시험한다. KF-21은 몸통과 양 날개에 7.6t의 미사일과 폭탄, 연료통 등을 장착하고, 고속 기동을 한다. 그런 하중에 맞먹는 압력을 10만 번이나 반복적으로 가해 날개에 손상이 없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바로 옆 시험장치에는 KF-21에 3232개의 배선을 연결해 전투기의 구조적 기능을 시험하고 있었다. 이원석 구조시험팀장은 “3000여 개 채널에서 나오는 수많은 데이터를 매일 분석해 보완한다”고 말했다.
KF-21과 다른 전투기들의 크기와 모양 비교. KF-21은 F-15 전투기보다는 기체가 작지만 F-35A와 KF-16보다는 크다. KF-21은 기본적으로 스텔스 구조로 설계돼 레이더에 탐지되는 면적은 매우 작다. [KAI]
전투기 크기 비교 구분
KF-21은 전 세계에서 가장 최근 개발된 전투기로 앞으로 동북아 최강 전투기의 잠재력을 갖고 있다. 외형은 세계 최강 스텔스 전투기인 F-22와 유사하다. 한국 공군은 스텔스 전투기로는 미 록히드 마틴의 F-35A를 도입한 만큼, KF-21은 조만간 도태될 F-4와 F-5 계열 전투기를 먼저 대체하고, F-16 기종까지 교체할 전망이다. 지난 13일 노후한 KF-5E 제공호 전투기 추락 사고와 같은 불행도 훨씬 적게 발생할 것이다.
KF-21에는 국내에서 개발한 최첨단 AESA(능동형 전자주사식 위상배열) 레이더와 EOTGP(전자광학표적추적장비), IRST(적외선추적장치), 통합전자전시스템 등을 장착한다. 전투기의 눈이라고 할 수 있는 AESA 레이더는 중국이나 러시아제보다 성능이 우수하다고 한다. 국방과학연구소(ADD)가 개발해 한화가 생산했다.
KF-21의 핵심 항전장비. 현대 전투기의 핵심 항전장비인 AESA 레이더와 EOTOP(광학추적장치), IRST(적외선 추적장치), EW Suit(통합 전자전 장치) 등 4가지를 모두 국내에서 우리 기술로 개발했다. [KAI]
이 AESA 레이더 덕분에 KF-21은 북한 전투기는 물론, 중국 및 러시아 전투기보다 먼저 보고 먼저 미사일을 쏠 수 있게 된다. KAI 관계자는 “KF-21의 AESA 레이더에는 공개할 수 없는 비밀 사항이 많다”고 귀띔했다. AESA 레이더는 올해 2월부터 보잉737에 장착해 서해 상에서 시험하고, 내년부터는 KF-21로도 AESA 레이더의 성능을 시험한다.
KF-21에는 자동자세회복, 자동지형추적, 자동지형충돌회피, 자동조종 등의 기능도 갖춰져 있다. 자동자세회복 장치는 조종사가 버티고(vertigo) 상태에서 전투기의 자세에 의심이 들 때 스위치만 누르면 KF-21이 알아서 자세를 정상으로 회복하는 기능이다. 과거 많은 전투기 추락 사고가 하늘과 바다가 구분이 되지 않거나, 전투기가 뒤집혀 있는지 알 수 없는 버티고 상태에서 발생했다.
자동조종과 자동지형 추적 및 충돌 회피 장치는 산악에서 저고도로 비행할 때 좌표만 입력하면 KF-21이 산의 고도와 전투기 속도 등을 계산해 충돌을 피하면서 목적지까지 비행할 수 있게 한다. KF-21에는 비행제어 컴퓨터가 3대나 있어 2대가 고장이 나도 비행에 문제가 없다. 3중 안전장치인 셈이다.
향후 과제는 KF-21의 진화적 발전이다. 국방과학연구소가 개발 중인 스텔스 무인전투기 가오리와 연동한 유무인 복한 전투체계와 스텔스 기능이다. 안현호 KAI 사장은 “KF-21이 스텔스 기능과 유무인 복합 전투능력까지 갖추면 동북아시아에서 최강 전투기로 거듭 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KF-21에 스텔스 기능을 갖출 수 있도록 KAI는 레이더에 탐지되는 크기(RCS) 해석 및 시험을 통해 항공기 형상을 최적화했다. 저피탐을 달성하기 위해 각 2개의 수직 및 수평 꼬리날개, 다이아몬드 형상의 주익과 꺾쇠(cart) 모양 공기 흡입구 등을 스텔스 전투기 형상으로 설계했다. 스텔스에 필수적인 내부 무장창도 필요하면 만들 수 있도록 준비했다.
KAI는 KF-21의 레이더 피탐면적을 줄이기 위해 각종 안테나와 센서 대부분을 기체 내부에 매립했으며, 동체 아래에는 공대공 미사일 등을 장착할 수 있는 무장창을 반쯤 매립했다. 반매립 무장창은 빨간 리본 뒤에 검은 선으로 보인다.
레이더 전파에 탐지되기 쉬운 안테나와 센서 등 많은 돌출부를 기체 안에 매립했다. 스텔스를 위한 기본적인 준비는 마련된 것이다. ADD도 20여 년 전부터 스텔스 설계기술과 전파 및 적외선 흡수 재료와 장치를 개발해와 공군의 요구가 있으면 KF-21에 스텔스 기능을 더 추가할 수 있다.
공군은 F-35를 운용 중이지만, 주변국의 상황에 따라 스텔스 수요가 늘어나면 KF-21도 스텔스로 전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방위사업청 고위 관계자는 “지금도 미 해군 F/A-18E/F 수퍼 호넷보다 피탐 면적(RCS)이 작다”고 말했다. 수퍼 호넷의 RCS는 1㎡로 스텔스기가 아닌 전투기 가운데 RCS가 가장 작다. 일반적으로 RCS가 1㎡ 이하이면 스텔스 기능이 있다고 본다. 따라서 KF-21은 준스텔스기쯤 되는 셈이다.
KF-21의 제원과 성능. KF-21은 날개 폭이 11.2m에 길이는 16.9m이다. 최대 이륙중양은 25.6t이며 7.7t의 무기를 장착할 수 있다. [KAI]
ADD가 지난해 영상으로 공개한 국산 스텔스기 ‘가오리’와 유무인 복합전투는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가오리는 유인전투기보다는 약간 작지만, 조종사가 타지 않기 때문에 무장능력을 최대로 키울 수 있다. ADD에 따르면 폭 14.8m에 길이 10.4m로 꼬리 날개가 없는 가오리는 이착륙과 비행실험에 성공한 상태다. 아직 전투 기동 능력과 KF-21과 협동 작전 능력 등은 보완해야 한다
KF-21 전투기가 무인전투기 가오리-X와 공중에서 작전하는 상상도. 국방과학연구소(ADD)가 개발 중인 무인 전투기 가오리-X는 현재 이착륙 시험까지 했다. KF-21과 유무인 복합 작전을 하기 위한 각종 센서와 통신체계 등에 관한 추가 개발이 필요한 상태다. [KAI]
그러나 가오리가 스텔스화된 KF-21과 함께 전투에 나설 경우 공군 전투력은 크게 강화될 전망이다. 위험한 공중 전투 임무는 가오리가 담당한다. KAI 관계자는 “KF-21의 후방석에 앉은 조종사가 가오리를 조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KF-21이 6세대 전투기로까지 진화하기엔 아직 해결해야 할 난제가 많다. 6세대 전투기의 핵심 무기인 레이저포를 장착하려면 레이저포 소형화도 문제이지만, 레이저포에 에너지를 공급할 엔진 파워도 키워야 한다. 또 사이버 공격 능력과 마하 5 수준의 비행 능력도 만만치 않은 기술과제다. 이런 어려움에 미국은 2040년 전후에, 중국과 러시아는 2040년대 중후반에야 6세대 전투기를 개발할 전망이다.
미국 공군이 구상하고 있는 6세대 전투기 상상도. 미 공군은 2032년을 목표로 6세대 전투기를 개발 중이다. 6세대 전투기의 특징은 마하 5를 넘나드는 초고속 비행능력과 레이저포 및 사이버 공격 기능이 기본이다. [미 공군]
KAI의 최대 관심사는 KF-21 해외 판매다. 현재 KF-21은 120대 생산에 8조5000억원이 책정돼 있다. 대당 약 700억 원(6000만 달러)꼴이다. 프랑스 라팔과 유로파이터의 타이푼 등 경쟁 기종이 있지만, 30년 전에 개발된 전투기다. 전투기의 임무 컴퓨터나 레이더 등 주요 장치가 한 세대 전의 시스템이다.
그러나 러시아와 중국은 전투기를 값싸게 제작해 국제사회에 판매하고 있어 부담이다. 그나마 KAI와 공동 개발에 나선 인도네시아가 중도 포기할 움직임이었다가 다시 참여하고 있어 국제 경쟁력의 기반이 되고 있다.
KF-21의 해외 판매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 전투기의 진화적 발전이 담보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그래야 KF-21을 구매하는 나라들이 스텔스 무인전투기 등과 연계해 희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KAI 스스로도 KF-21 개발에 참여했던 전투기 엔지니어들을 계속 유지 및 활용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있다. KF-21 개발에는 한국 엔지니어 1600명이 참여하고 있는데 조만간 기본적인 개발을 완료하면 이들에게 일감이 없어진다는 점이다. 그럴 경우 한국이 처음으로 양성한 전투기 개발 인력은 사장될 수밖에 없게 된다고 한다.
김민석 군사안보전문기자 kim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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