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車에 경희대 석사? 중동 'K-봉고 열풍' 꺼림칙한 까닭[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2021.11.13 05:00 업데이트 2021.11.13 07:22
이철재 군사안보연구소장의 픽 : 테크니컬
이슬람 원리주의를 신봉하는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에 재집권한 뒤 두 달이 지난 10월 한 외신 사진이 국내 네티즌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사진에선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탈레반 병사 곁으로 소형 승합차가 지나가고 있다. 그런데 이 노란색 소형 승합차 뒤편엔 ‘경희대 석사’라는 한글이 또렷하게 보였다. 그리고 전화번호까지 나왔다.
시리아 반군이 사제 연장로켓을 장착한 기아 봉고3 트럭을 타고 시리아 동부의 다이르 앗 자우르 도심을 통과하고 있다. 뉴스 사이트 알알람
캐나다의 글로벌 뉴스는 박사 학위를 갖고 국영 기업을 다녔던 아프간 여성의 사연을 전하면서 그와 같은 여성은 탈레반 치하에서 암울한 현실에 닥쳤다고 전했다. 국내 언론은 전화번호로 추적해 사진 속 소형 승합차가 2018년까지 경기도 안산의 태권도 도장에서 몰았던 것이라고 보도했다.
글로벌 뉴스의 사진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3일 무렵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중동에 수출돼 큰 인기를 얻고 있는 한류’로 이어졌다. 이 글에선 중동 지역에서 무장 집단의 전투차량으로 탈바꿈한 현대ㆍ기아의 소형 트럭의 사진들이 소개됐다.
사실 내전이 끊이지 않는 중동에서, 특히 전쟁터에서 ‘K-봉고(기아의 소형 승합차ㆍ트럭 브랜드)’의 인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K-봉고 현상이 한국에 알려진 것은 2015년 일이었다. 당시 급진 수니파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이 ‘KIA(기아)’ 봉고나 ‘HYUNDAI(현대)’ 포터를 타고 이동하거나 이들 트럭에 기관총이나 다연장 로켓을 싣고 다니는 외신 사진이 나오면서다.
어떻게 한국에선 소상공인의 동반자인 봉고와 포터가 중동에선 전쟁 무기로 변신했을까. 발단은 1990년대 초반이다.
국제 구호단체들은 기아에 허덕이는 소말리아에서 활동하던 즈음이었다. 치안 상황이 나쁜 현지에서 국제 구호단체들은 소말리아 무장세력을 경호원으로 고용했다. ‘기술 원조자금(Technical Assistance Grants)’ 지출항목으로 경호비용이 나갔다.
무장세력은 그 돈으로 일제 픽업트럭과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구입했다. 일제 차량은 내구성이 좋고 고장이 적은 데다 험지 주행 능력이 뛰어났다. 또 독일제보다 쌌다. 이후 ‘테크니컬(technical)’은 무장병력을 수송하는 민수용 차량을 일컫는 용어가 됐다.
테크니컬은 장갑(裝甲)이 빈약해 총탄 몇 발로도 간단히 제압될 수 있다. 그러나 1986~87년 리비아ㆍ차드 전쟁에서 리비아군의 기계화 부대는 차드군의 테크니컬에 호되게 당했다. 차드군의 테크니컬은 대전차 무기로 리비아군의 기계화 부대를 각개격파한 뒤 잽싸게 도망가는 전술을 쓴 것이다. 이 전쟁을 ‘도요타 전쟁(Toyota War)’이라고 부른다. 차드군의 테크니컬이 주로 일제 도요타 제품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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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도요타는 2010년대 현대ㆍ기아에 테크니컬의 왕좌를 내줬다. 국산 중고차가 국내의 파키스탄 출신 중고차 딜러를 통해 요르단으로 수출된 뒤 중동 각지로 흘러 들어가면서다.
주행은 가능하지만 폐차 직전의 국산 소형 승합차나 소형 트럭이 중동에서 많이 찾았다. 가성비가 일제보다 엄청 좋기 때문이다. 특히 국산 소형 트럭은 짐칸이 넓다. 과적도 거뜬하다. 그래서 다연장 로켓이나 대공 기관포 등 중화기를 손쉽게 장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IS를 비롯 시리아 반군, 헤즈볼라 등 중동의 무장세력이 국산 소형 트럭을 찾게 된 것이다.
중동의 K-봉고 바람이 그리 반갑지만은 않은 이유다.
이철재 군사안보연구소장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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