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의 최후 왕상 11;34-43
11월 10일 (수)
솔로몬의 최후 왕상 11;34-43 34. 그러나 내가 택한 내 종 다윗이 내 명령과 내 법도를 지켰으므로 내가 그를 위하여 솔로몬의 생전에는 온 나라를 그의 손에서 빼앗지 아니하고 주관하게 하려니와 35. 내가 그의 아들의 손에서 나라를 빼앗아 그 열 지파를 네게 줄 것이요 36. 그의 아들에게는 내가 한 지파를 주어서 내가 거기에 내 이름을 두고자 하여 택한 성읍 예루살렘에서 내 종 다윗이 항상 내 앞에 등불을 가지고 있게 하리라 37. 내가 너를 취하리니 너는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다스려 이스라엘 위에 왕이 되되 38. 네가 만일 내가 명령한 모든 일에 순종하고 내 길로 행하며 내 눈에 합당한 일을 하며 내 종 다윗이 행함 같이 내 율례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내가 다윗을 위하여 세운 것 같이 너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고 이스라엘을 네게 주리라 39. 내가 이로 말미암아 다윗의 자손을 괴롭게 할 것이나 영원히 하지는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한지라 40. 이러므로 솔로몬이 여로보암을 죽이려 하매 여로보암이 일어나 애굽으로 도망하여 애굽 왕 시삭에게 이르러 솔로몬이 죽기까지 애굽에 있으니라 41. 솔로몬의 남은 사적과 그의 행한 모든 일과 그의 지혜는 솔로몬의 실록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42. 솔로몬이 예루살렘에서 온 이스라엘을 다스린 날 수가 사십 년이라 43. 솔로몬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아버지 다윗의 성읍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내가 택한 내 종 다윗이 내 명령과 내 법도를 지켰으므로 내가 그를 위하여 솔로몬의 생전에는 온 나라를 그의 손에서 빼앗지 아니하고 주관하게 하려니와 내가 그의 아들의 손에서 나라를 빼앗아 그 열 지파를 네게 줄 것이요>(34-35절). 다윗도 전에 하나님의 법도를 어기고 범죄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결코 하나님 신앙을 포기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랬기에 나단의 책망을 순순히 받아들여 진실한 회개를 통해 죄사함을 구했고, 하나님도 그를 긍휼히 여기사 모든 죄를 용서해주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날마다 허다한 죄 가운데서 살고 있으나 좌절하지 않고 회개하며 주님의 사죄의 은총을 기도하면,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끝까지 최선을 다해 수행하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위로와 격려가 함께하실 줄 믿습니다. <내가 너를 취하리니 너는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다스려 이스라엘 위에 왕이 되되>(37절). <취하다>는 <라카흐>라는 말은 <손에 넣다, 붙잡다>는 뜻입니다. 이는 여로보암이 왕이 된 것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의 결과라는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로보암이 북왕국의 왕이 된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다윗과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셨을 때에는 <카라흐>가 아니라 <선택받음>이란 뜻의 <바하르>를 사용하신 것에서도 뚜렷이 확인됩니다. 결국 오늘 이 본문은 솔로몬이 치루어야 했던 죄의 대가가 얼마나 혹독한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즉 하나님이 그를 내치신 결과 외부의 대적들은 물론, 심지어는 자신의 충직한 신복이었던 여로보암으로부터도 배신을 당해야 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우리는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과 동행할 때 누릴 수 있는 것이지 하나님을 떠나면 그런 축복 역시도 결국 우리를 다 떠나고 만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세상의 것을 모두 내버리는 한이 있어도 하나님과의 동행만큼은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아버지 다윗의 성읍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43절). -본문 40절을 읽고 당신의 소감을 간략히 적어보십시오. -솔로몬은 몇 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까(42절)? -역대하 11:17을 보면 <다윗과 솔로몬의 길>이란 표현을 사용하여 솔로몬의 생애를 다윗의 생애처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듯한 시도를 보입니다. 당신은 이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주님, 솔로몬이 마침내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아버지 다윗의 성읍에 장사>되었다고 합니다. 인류사의 가장 빛나는 지혜를 가진 왕으로 온갖 영화를 한 몸에 누린 이스라엘의 왕이 죽어 장사되었습니다. 말년에는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의 진노를 샀지만 결국은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와 회개한 줄 믿습니다. 그러나 그의 신앙과 정치적 행보에서 저희들 인간의 한계와 죄성을 느끼며 더욱 저희 자신의 모습을 성찰하게 됩니다. 늘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자기 관리에 최선을 다하는 저희들 되게 해주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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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하면 사고력이 생깁니다 “리프먼은 어떤 사건에 대해 개인적 의견을 요청받은 적이 있는데, 다 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직 그 사건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없으니까요.’ 글쓰기가 정교한 사유를 돕는다는 점을 보여주는 일화입니다.” 연지원 저(著) 《교양인은 무엇을 공부하는가》 (삼인, 39쪽) 중에 나 오는 구절입니다. 글쓰기와 사고력은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미국의 저명한 정치 평론가 월터 리프먼(1889~1974)은 ‘냉전’이라는 용어를 국제 사회의 용어로 자리 잡게 했던 인물입니다. 그는 만 17세에 하버드대학교에 입학하여 3년 만에 졸업했고, 20대 중반에 《정치학 서문(Preface to Politics)》 과 《표류와 지배(Drift and Mastery)》를 펴내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 통령으로부터 미국에서 가장 유망한 청년이라는 찬사를 들었습니다. 그가 생각을 정리하고 사고력을 키운 방법이 바로 ‘글쓰기’였습니다. 글쓰기의 촛점은 감정의 분출이 아니라 ‘성찰과 생각하기’입니다. 사도 바울의 글쓰기 즉 그의 서신은 많은 영혼들을 살리고 힘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비대면 문화의 확산을 가속화 시킨 코로나19 이후의 시대, 지금의 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방송과 문서를 통한 선교가 얼마나 중요한 포이트인지 모릅니다. 글쓰기는 사고력을 향상시킬 뿐 아니라, 현대의 전도 선교에 중요한 도구입니다.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딤후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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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4장 12절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Though one may be overpowered, two can defend themselves. A cord of three strands is not quickly broke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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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밀함 하나님은 참으로 우리를 친밀하게 알고 계신다. 우리의 복잡한 인격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특별한 ‘신장’, 곧 우리의 감성을 구성하는 특별한 감정적인 속성을 계획하셨다. 하나님의 계획은 선하다. 하나님이 선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창조가 선하다는 진리의 선언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독특함을 자유롭게 받아들이게 한다. -마르바 던의 [위로] 중에서-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영향력이 됩니다. 친밀한 관계에서 영향력은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면에서 하나님은 도리어 당신의 창조물이 우리와 친밀함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가 그분을 주로 인정하는 친밀함을 통하여 왕이신 하나님이 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라 인정해 주시기에, 그 친밀함이 우리를 세상가운데서 승리자로 만듭니다. |
11월 10일 (수)
솔로몬의 최후 왕상 11;34-43 34. 그러나 내가 택한 내 종 다윗이 내 명령과 내 법도를 지켰으므로 내가 그를 위하여 솔로몬의 생전에는 온 나라를 그의 손에서 빼앗지 아니하고 주관하게 하려니와 35. 내가 그의 아들의 손에서 나라를 빼앗아 그 열 지파를 네게 줄 것이요 36. 그의 아들에게는 내가 한 지파를 주어서 내가 거기에 내 이름을 두고자 하여 택한 성읍 예루살렘에서 내 종 다윗이 항상 내 앞에 등불을 가지고 있게 하리라 37. 내가 너를 취하리니 너는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다스려 이스라엘 위에 왕이 되되 38. 네가 만일 내가 명령한 모든 일에 순종하고 내 길로 행하며 내 눈에 합당한 일을 하며 내 종 다윗이 행함 같이 내 율례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내가 다윗을 위하여 세운 것 같이 너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고 이스라엘을 네게 주리라 39. 내가 이로 말미암아 다윗의 자손을 괴롭게 할 것이나 영원히 하지는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한지라 40. 이러므로 솔로몬이 여로보암을 죽이려 하매 여로보암이 일어나 애굽으로 도망하여 애굽 왕 시삭에게 이르러 솔로몬이 죽기까지 애굽에 있으니라 41. 솔로몬의 남은 사적과 그의 행한 모든 일과 그의 지혜는 솔로몬의 실록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42. 솔로몬이 예루살렘에서 온 이스라엘을 다스린 날 수가 사십 년이라 43. 솔로몬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아버지 다윗의 성읍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내가 택한 내 종 다윗이 내 명령과 내 법도를 지켰으므로 내가 그를 위하여 솔로몬의 생전에는 온 나라를 그의 손에서 빼앗지 아니하고 주관하게 하려니와 내가 그의 아들의 손에서 나라를 빼앗아 그 열 지파를 네게 줄 것이요>(34-35절). 다윗도 전에 하나님의 법도를 어기고 범죄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결코 하나님 신앙을 포기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랬기에 나단의 책망을 순순히 받아들여 진실한 회개를 통해 죄사함을 구했고, 하나님도 그를 긍휼히 여기사 모든 죄를 용서해주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날마다 허다한 죄 가운데서 살고 있으나 좌절하지 않고 회개하며 주님의 사죄의 은총을 기도하면,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끝까지 최선을 다해 수행하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위로와 격려가 함께하실 줄 믿습니다. <내가 너를 취하리니 너는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다스려 이스라엘 위에 왕이 되되>(37절). <취하다>는 <라카흐>라는 말은 <손에 넣다, 붙잡다>는 뜻입니다. 이는 여로보암이 왕이 된 것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의 결과라는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로보암이 북왕국의 왕이 된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다윗과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셨을 때에는 <카라흐>가 아니라 <선택받음>이란 뜻의 <바하르>를 사용하신 것에서도 뚜렷이 확인됩니다. 결국 오늘 이 본문은 솔로몬이 치루어야 했던 죄의 대가가 얼마나 혹독한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즉 하나님이 그를 내치신 결과 외부의 대적들은 물론, 심지어는 자신의 충직한 신복이었던 여로보암으로부터도 배신을 당해야 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우리는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과 동행할 때 누릴 수 있는 것이지 하나님을 떠나면 그런 축복 역시도 결국 우리를 다 떠나고 만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세상의 것을 모두 내버리는 한이 있어도 하나님과의 동행만큼은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아버지 다윗의 성읍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43절). -본문 40절을 읽고 당신의 소감을 간략히 적어보십시오. -솔로몬은 몇 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까(42절)? -역대하 11:17을 보면 <다윗과 솔로몬의 길>이란 표현을 사용하여 솔로몬의 생애를 다윗의 생애처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듯한 시도를 보입니다. 당신은 이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주님, 솔로몬이 마침내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아버지 다윗의 성읍에 장사>되었다고 합니다. 인류사의 가장 빛나는 지혜를 가진 왕으로 온갖 영화를 한 몸에 누린 이스라엘의 왕이 죽어 장사되었습니다. 말년에는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의 진노를 샀지만 결국은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와 회개한 줄 믿습니다. 그러나 그의 신앙과 정치적 행보에서 저희들 인간의 한계와 죄성을 느끼며 더욱 저희 자신의 모습을 성찰하게 됩니다. 늘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자기 관리에 최선을 다하는 저희들 되게 해주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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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하면 사고력이 생깁니다 “리프먼은 어떤 사건에 대해 개인적 의견을 요청받은 적이 있는데, 다 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직 그 사건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없으니까요.’ 글쓰기가 정교한 사유를 돕는다는 점을 보여주는 일화입니다.” 연지원 저(著) 《교양인은 무엇을 공부하는가》 (삼인, 39쪽) 중에 나 오는 구절입니다. 글쓰기와 사고력은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미국의 저명한 정치 평론가 월터 리프먼(1889~1974)은 ‘냉전’이라는 용어를 국제 사회의 용어로 자리 잡게 했던 인물입니다. 그는 만 17세에 하버드대학교에 입학하여 3년 만에 졸업했고, 20대 중반에 《정치학 서문(Preface to Politics)》 과 《표류와 지배(Drift and Mastery)》를 펴내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 통령으로부터 미국에서 가장 유망한 청년이라는 찬사를 들었습니다. 그가 생각을 정리하고 사고력을 키운 방법이 바로 ‘글쓰기’였습니다. 글쓰기의 촛점은 감정의 분출이 아니라 ‘성찰과 생각하기’입니다. 사도 바울의 글쓰기 즉 그의 서신은 많은 영혼들을 살리고 힘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비대면 문화의 확산을 가속화 시킨 코로나19 이후의 시대, 지금의 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방송과 문서를 통한 선교가 얼마나 중요한 포이트인지 모릅니다. 글쓰기는 사고력을 향상시킬 뿐 아니라, 현대의 전도 선교에 중요한 도구입니다.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딤후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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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4장 12절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Though one may be overpowered, two can defend themselves. A cord of three strands is not quickly broke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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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밀함 하나님은 참으로 우리를 친밀하게 알고 계신다. 우리의 복잡한 인격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특별한 ‘신장’, 곧 우리의 감성을 구성하는 특별한 감정적인 속성을 계획하셨다. 하나님의 계획은 선하다. 하나님이 선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창조가 선하다는 진리의 선언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독특함을 자유롭게 받아들이게 한다. -마르바 던의 [위로] 중에서-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영향력이 됩니다. 친밀한 관계에서 영향력은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면에서 하나님은 도리어 당신의 창조물이 우리와 친밀함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가 그분을 주로 인정하는 친밀함을 통하여 왕이신 하나님이 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라 인정해 주시기에, 그 친밀함이 우리를 세상가운데서 승리자로 만듭니다. |
11월 10일 (수)
솔로몬의 최후 왕상 11;34-43 34. 그러나 내가 택한 내 종 다윗이 내 명령과 내 법도를 지켰으므로 내가 그를 위하여 솔로몬의 생전에는 온 나라를 그의 손에서 빼앗지 아니하고 주관하게 하려니와 35. 내가 그의 아들의 손에서 나라를 빼앗아 그 열 지파를 네게 줄 것이요 36. 그의 아들에게는 내가 한 지파를 주어서 내가 거기에 내 이름을 두고자 하여 택한 성읍 예루살렘에서 내 종 다윗이 항상 내 앞에 등불을 가지고 있게 하리라 37. 내가 너를 취하리니 너는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다스려 이스라엘 위에 왕이 되되 38. 네가 만일 내가 명령한 모든 일에 순종하고 내 길로 행하며 내 눈에 합당한 일을 하며 내 종 다윗이 행함 같이 내 율례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내가 다윗을 위하여 세운 것 같이 너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고 이스라엘을 네게 주리라 39. 내가 이로 말미암아 다윗의 자손을 괴롭게 할 것이나 영원히 하지는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한지라 40. 이러므로 솔로몬이 여로보암을 죽이려 하매 여로보암이 일어나 애굽으로 도망하여 애굽 왕 시삭에게 이르러 솔로몬이 죽기까지 애굽에 있으니라 41. 솔로몬의 남은 사적과 그의 행한 모든 일과 그의 지혜는 솔로몬의 실록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42. 솔로몬이 예루살렘에서 온 이스라엘을 다스린 날 수가 사십 년이라 43. 솔로몬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아버지 다윗의 성읍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내가 택한 내 종 다윗이 내 명령과 내 법도를 지켰으므로 내가 그를 위하여 솔로몬의 생전에는 온 나라를 그의 손에서 빼앗지 아니하고 주관하게 하려니와 내가 그의 아들의 손에서 나라를 빼앗아 그 열 지파를 네게 줄 것이요>(34-35절). 다윗도 전에 하나님의 법도를 어기고 범죄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결코 하나님 신앙을 포기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랬기에 나단의 책망을 순순히 받아들여 진실한 회개를 통해 죄사함을 구했고, 하나님도 그를 긍휼히 여기사 모든 죄를 용서해주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날마다 허다한 죄 가운데서 살고 있으나 좌절하지 않고 회개하며 주님의 사죄의 은총을 기도하면,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끝까지 최선을 다해 수행하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위로와 격려가 함께하실 줄 믿습니다. <내가 너를 취하리니 너는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다스려 이스라엘 위에 왕이 되되>(37절). <취하다>는 <라카흐>라는 말은 <손에 넣다, 붙잡다>는 뜻입니다. 이는 여로보암이 왕이 된 것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의 결과라는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로보암이 북왕국의 왕이 된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다윗과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셨을 때에는 <카라흐>가 아니라 <선택받음>이란 뜻의 <바하르>를 사용하신 것에서도 뚜렷이 확인됩니다. 결국 오늘 이 본문은 솔로몬이 치루어야 했던 죄의 대가가 얼마나 혹독한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즉 하나님이 그를 내치신 결과 외부의 대적들은 물론, 심지어는 자신의 충직한 신복이었던 여로보암으로부터도 배신을 당해야 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우리는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과 동행할 때 누릴 수 있는 것이지 하나님을 떠나면 그런 축복 역시도 결국 우리를 다 떠나고 만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세상의 것을 모두 내버리는 한이 있어도 하나님과의 동행만큼은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아버지 다윗의 성읍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43절). -본문 40절을 읽고 당신의 소감을 간략히 적어보십시오. -솔로몬은 몇 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까(42절)? -역대하 11:17을 보면 <다윗과 솔로몬의 길>이란 표현을 사용하여 솔로몬의 생애를 다윗의 생애처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듯한 시도를 보입니다. 당신은 이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주님, 솔로몬이 마침내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아버지 다윗의 성읍에 장사>되었다고 합니다. 인류사의 가장 빛나는 지혜를 가진 왕으로 온갖 영화를 한 몸에 누린 이스라엘의 왕이 죽어 장사되었습니다. 말년에는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의 진노를 샀지만 결국은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와 회개한 줄 믿습니다. 그러나 그의 신앙과 정치적 행보에서 저희들 인간의 한계와 죄성을 느끼며 더욱 저희 자신의 모습을 성찰하게 됩니다. 늘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자기 관리에 최선을 다하는 저희들 되게 해주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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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하면 사고력이 생깁니다 “리프먼은 어떤 사건에 대해 개인적 의견을 요청받은 적이 있는데, 다 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직 그 사건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없으니까요.’ 글쓰기가 정교한 사유를 돕는다는 점을 보여주는 일화입니다.” 연지원 저(著) 《교양인은 무엇을 공부하는가》 (삼인, 39쪽) 중에 나 오는 구절입니다. 글쓰기와 사고력은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미국의 저명한 정치 평론가 월터 리프먼(1889~1974)은 ‘냉전’이라는 용어를 국제 사회의 용어로 자리 잡게 했던 인물입니다. 그는 만 17세에 하버드대학교에 입학하여 3년 만에 졸업했고, 20대 중반에 《정치학 서문(Preface to Politics)》 과 《표류와 지배(Drift and Mastery)》를 펴내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 통령으로부터 미국에서 가장 유망한 청년이라는 찬사를 들었습니다. 그가 생각을 정리하고 사고력을 키운 방법이 바로 ‘글쓰기’였습니다. 글쓰기의 촛점은 감정의 분출이 아니라 ‘성찰과 생각하기’입니다. 사도 바울의 글쓰기 즉 그의 서신은 많은 영혼들을 살리고 힘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비대면 문화의 확산을 가속화 시킨 코로나19 이후의 시대, 지금의 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방송과 문서를 통한 선교가 얼마나 중요한 포이트인지 모릅니다. 글쓰기는 사고력을 향상시킬 뿐 아니라, 현대의 전도 선교에 중요한 도구입니다.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딤후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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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4장 12절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Though one may be overpowered, two can defend themselves. A cord of three strands is not quickly broke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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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밀함 하나님은 참으로 우리를 친밀하게 알고 계신다. 우리의 복잡한 인격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특별한 ‘신장’, 곧 우리의 감성을 구성하는 특별한 감정적인 속성을 계획하셨다. 하나님의 계획은 선하다. 하나님이 선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창조가 선하다는 진리의 선언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독특함을 자유롭게 받아들이게 한다. -마르바 던의 [위로] 중에서-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영향력이 됩니다. 친밀한 관계에서 영향력은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면에서 하나님은 도리어 당신의 창조물이 우리와 친밀함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가 그분을 주로 인정하는 친밀함을 통하여 왕이신 하나님이 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라 인정해 주시기에, 그 친밀함이 우리를 세상가운데서 승리자로 만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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