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유다인의 칼 에 9:5-14

鶴山 徐 仁 2021. 11. 12. 07:19
유다인의 칼 에 9:5-14
 
 
11월 12일 (금)
   
유다인의 칼 에 9:5-14


5. 유다인이 칼로 그 모든 대적들을 쳐서 도륙하고 진멸하고 자기를 미워하는 자에게 마음대로 행하고
6. 유다인이 또 도성 수산에서 오백 명을 죽이고 진멸하고
7. 또 바산다다와 달본과 아스바다와
8. 보라다와 아달리야와 아리다다와
9. 바마스다와 아리새와 아리대와 왜사다
10. 곧 함므다다의 손자요 유다인의 대적 하만의 열 아들을 죽였으나 그들의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더라
11. 그 날에 도성 수산에서 도륙한 자의 수효를 왕께 아뢰니
12. 왕이 왕후 에스더에게 이르되 유다인이 도성 수산에서 이미 오백 명을 죽이고 멸하고 또 하만의 열 아들을 죽였으니 왕의 다른 지방에서는 어떠하였겠느냐 이제 그대의 소청이 무엇이냐 곧 허락하겠노라 그대의 요구가 무엇이냐 또한 시행하겠노라 하니
13. 에스더가 이르되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면 수산에 사는 유다인들이 내일도 오늘 조서대로 행하게 하시고 하만의 열 아들의 시체를 나무에 매달게 하소서 하니
14. 왕이 그대로 행하기를 허락하고 조서를 수산에 내리니 하만의 열 아들의 시체가 매달리니라
 
<유다인이 칼로 그 모든 대적을 쳐서 도륙하고 진멸하고 ... 또 도성 수산에서 오백 명을 죽이고 진멸하고 ... 대적 하만의 열 아들을 죽였으나 그들의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더라>(5-10절). 
<대적>들이란 유다인들에게 혐오감을 드러내며 하만의 조서에 근거하여 유다인들을 학살하려고 모의했던 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제 입장이 바뀌어 유다인들이 그들에게 <마음대로 행했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이미 장대에 높이 달려 죽은 하만의 <열 아들>까지 죽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날 도성 수산에서 도륙한 자들만 해도 수효가 오백 명이었다는 것입니다(12절). 그러니 다른 지방까지 합치면 그 수가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아하수에로 왕이 왕후 에스더에게 다시<그대의 요구가 무엇이냐 또 시행하겠노라>(12절)고 합니다. <에스더가 이르되 ... 하만의 열 아들의 시체를 나무에 매달게 하소서 하니 왕이 그대로 행하기를 허락하고 ... 하만의 열 아들의 시체가 매달리니라>(13-14절). 
에스더는 하만의 아들들의 시체를 나무에 달므로써 유다인의 대적 하만 일가가 완전히 진멸되었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분명히 알리길 원했습니다. 
그것은 또한 유다인들에 대해 적대감을 가진 세력들에 대한 엄중한 경고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유다인들이 그렇게 도륙하고 진멸한 자의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는 당시 유다인들의 살육이 자신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자위권 발동의 정당한 행위였음을 강조하는 대목입니다.
 남의 재산을 노려 무고한 자들을 해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말하자면 당시 유다인들의 칼은 악한 마음을 품은 자들 앞에서 선한 자들을 지켜낸 충정의 칼이었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 날선 칼을 빼 들 수밖에 없었던 보도였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도 주님의 복음은 그 존재 자체가 녹슨 이 시대의 양심과 거짓된 영혼을 향해 날아 꽂히는 서슬 퍼런 칼이 되어야 합니다. 
 
-<그날> 수산성에서만 유다인이 죽인 대적의 수가 얼마였습니까?
-에스더가 굳이 하만의 열 아들의 시체를 나무에 매달기를 원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유다인들이 도륙한 대적들의 재산에 손을 대지 않은 까닭은 무엇이었습니까?
 
주님, 유다인들은 가차없이 자신들의 자위권을 행사했습니다. 
그래서 수산성에서만 오백 명을 도륙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에스더의 요구로 하만의 아들들의 시체를 나무에 달기까지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응징의 기회를 통해 철저하게 원수들을 진멸했습니다. 심지어는 아하수에로 왕마저 <그대가 요구하면 또 시행하겠다>할 만큼 당시 유다인들의 칼은 아무도 막지 못했습니다. 그게 하나님의 역사요 심판이었기 때문입니다. 저희들 다시 한 번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칼에 대한 깊은 신뢰를 갖게 해주시옵소서. 
 
   
개인이나 기업에게 모두 중요한 질문
 
“최근 경영에서는 ‘브랜드 철학’이라는 주제가 이슈라고 할 수 있
습니다. 이것이 이슈 되기 시작한 시발점은 ‘차별화’를 만들기 위한
‘포지셔닝’을 생각하면서부터입니다(중략). 한 브랜드가 나오면 그와
비슷한 컨셉의 브랜드들이 그야말로 우후죽순 생겨나 더이상 ‘차별화’
가 무의미해졌죠. 이때 경영자 혹은 브랜더들은 브랜드를 가치, 더 나
아가 브랜드가 추구하는 혹은 추구해야만 하는 ‘가치’가 무엇일까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김동훈 저(著) 《브랜드 인문학》 (민음사, 94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
다.
많은 회사의 브랜드들이 이른바 포지셔닝 전략을 통해 자신의 브랜드를
다른 브랜드와 차별화시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한 브랜드가
나오면 비슷한 컨셉의 브랜드들이 수없이 등장해서, 특허권을 내면서
아무리 차별화를 지키려 해도 점점 ‘차별화’가 무의미해졌습니다.
“그러면서 ‘철학’에 눈을 돌리게 됩니다. 가치를 만들어내는 방법을
철학에서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94쪽)
이른바 기업도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가? 나의 가치는 무엇인가? 에 대한 확신이 있는 기업이 승
리하는 세상입니다.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존재성을 가리켜 ‘하나님의 걸작품 시’라고 하셨습니
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엡2:10a)
이 구절에서 ‘만드신 바라’라고 번역된 헬라어 원문은 ‘포이에마’
입니다.  포이에마에서 영어의 ‘poem’,즉  ‘시’가 나왔습니다.  
우리는 대충 던져진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최고의 시인이신 하나
님의 포이에마, 걸작품 시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선한 비전이 있어서 이 땅에 보내진 존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엡2:10a)
자신의 존재와 사명을 알고 그 길을 걷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6장 41절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Watch and pray so that you will not fall into temptation. The spirit is willing, but the body is weak.
   
은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알므로 우리는 받은 은혜를 또한 다른 이들에게 전하고자 한다. 처음 받은 은혜가 그렇듯 값없이, 조건 없이 주고자 한다. 내가 배운 교회는 실로 세상의 방식과는 현격하게 다른 새로운 표상이 될 수 있으며, 약속을 성취하는 방법에서는 세상과 모순된다. 이만하면 교회를 향한 우리의 번민이야 가치 있는 일 아닌가!
-필립 얀시의 [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 중에서-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들의 연합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하나님보다 높아지지 않으며, 교회는 누구 한 사람이 높아지는 곳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많은 사람들보다 커지기 시작하면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를 잃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여전하지만 그 은혜를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세상과 다른 하나님의 놀라운 신비가 교회안에 임하는 은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