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로보암의 반란 왕상 11:23-33
11월 09일 (화)
여로보암의 반란 왕상 11:23-33 23. 하나님이 또 엘리아다의 아들 르손을 일으켜 솔로몬의 대적자가 되게 하시니 그는 그의 주인 소바 왕 하닷에셀에게서 도망한 자라 24. 다윗이 소바 사람을 죽일 때에 르손이 사람들을 자기에게 모으고 그 무리의 괴수가 되어 다메섹으로 가서 살다가 거기서 왕이 되었더라 25. 솔로몬의 일평생에 하닷이 끼친 환난 외에 르손이 수리아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미워하였더라 26. 솔로몬의 신하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또한 손을 들어 왕을 대적하였으니 그는 에브라임 족속인 스레다 사람이요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스루아이니 과부더라 27. 그가 손을 들어 왕을 대적하는 까닭은 이러하니라 솔로몬이 밀로를 건축하고 그의 아버지 다윗의 성읍이 무너진 것을 수축하였는데 28. 이 사람 여로보암은 큰 용사라 솔로몬이 이 청년의 부지런함을 보고 세워 요셉 족속의 일을 감독하게 하였더니 29. 그 즈음에 여로보암이 예루살렘에서 나갈 때에 실로 사람 선지자 아히야가 길에서 그를 만나니 아히야가 새 의복을 입었고 그 두 사람만 들에 있었더라 30. 아히야가 자기가 입은 새 옷을 잡아 열두 조각으로 찢고 31. 여로보암에게 이르되 너는 열 조각을 가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나라를 솔로몬의 손에서 찢어 빼앗아 열 지파를 네게 주고 32. 오직 내 종 다윗을 위하고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한 성읍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솔로몬에게 주리니 33. 이는 그들이 나를 버리고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과 모압의 신 그모스와 암몬 자손의 신 밀곰을 경배하며 그의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지 아니하여 내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나 보기에 정직한 일과 내 법도와 내 율례를 행하지 아니함이니라 <솔로몬의 신하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또한 손을 들어 왕을 대적하였으니 그는 에브라임 족속인 스레다 사람이요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스루아이니 과부더라>(26절). 에브라임 족속은 그 규모 면에서나 이스라엘 공동체 내의 영향력에 있어서 늘 유다 지파와 경쟁 관계에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 생활을 할 때도 에브라임은 주도 세력이었고, 가나안 정복의 영웅인 여호수아도 에브라임 지파 출신이었습니다. 또한 왕정 시대 이전 즉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종교적 수도가 되기 이전에는 에브라임의 영토였던 실로가 이스라엘 백성의 성지요 종교적 중심지였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남북으로의 분열 이면에는 그런 반목을 낳을 만한 뿌리 깊은 요인이 일찍부터 자리잡고 있었고 솔로몬 사후에는 그 에브라임과 유다의 반목이 더욱 표면화 되었으며 대다수 지파들이 여로보암을 지지하여 그의 거사에 가담하게 된 것입니다. <이 사람 여로보암은 큰 용사라 솔로몬이 이 청년의 부지런함을 보고 세워 요셉 족속의 일을 감독하게 하였더니>(28절). 그러나 여로보암은 자기를 선택해준 솔로몬의 뜻대로 행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솔로몬이 하나님의 뜻을 배신하고 자신의 길을 간 것처럼 여로보암도 그렇게 솔로몬을 등지고 자신의 왕국을 만들어 간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늘 나를 불러주시고 구원해주신 주님 뜻에 합당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하나님의 계획에 부응하고 있는지를 늘 묻고 확인해봐야 합니다. 오직 나를 대신해 죽으셨다가 다시 부활하신 주님을 위해, 주님의 기쁨과 영광을 위해 살아가야 옳은데 과연 그렇게 행하고 있는지를 부단히 점검해봐야 합당합니다. 죄란 바로 솔로몬이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고, 여로보암이 자기를 세운 솔로몬의 뜻을 저버리고 오직 자신의 야심을 도모한 것처럼 나를 택해주신 주님의 뜻을 배반하는 행위에 다름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이는 그들이 나를 버리고... 그의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지 아니하여 내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나 보기에 정직한 일과 내 법도와 내 율례를 행하지 아니함이니라>(33절). <정직>이라는 뜻의 히브리어 <야솨르>는 물론 도덕적 품성을 가리키는 말이나 무엇보다도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인간적으로는 거리낄 것이 없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기준에 못 미친다면 그것은 아직 <야솨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 말은 <하나님의 법과 약속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솔로몬은 물론이고 하나님이 <취하셨다>고 한 여로보암 역시도 결국은 하나님의 <야솨르>를 충족시키지 못했습니다. -<실로 사람 선지자 아히야>(29절)에 관해 아는 대로 적어보십시오(대하 9:29). -여로보암이 하나님께 지은 가장 큰 죄는 무엇일까요(왕상 12:31-33)? -본문 28절에 등장하는 <요셉 족속>이란 어떤 지파를 가리키는 말일까요? 주님, 여호와께서 에돔 사람 하닷을 일으켜 솔로몬을 대적하게 하시고, 또 엘리아다의 아들 르손을 일으키사 솔로몬의 대적자가 되게 하셨을 뿐 아니라 다시 솔로몬의 신하인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을 부르사 솔로몬의 손에서 나라를 찢어 열 지파를 네게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든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지 않으면, 그 가진 것마저도 빼앗아 남에게 주신다는 말씀의 가르침을 저희들 오늘 이 본문을 통해서도 꼭 제대로 배우고 또 깊이 깨닫게 해주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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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함 “사랑은 타이밍이다. 일정 부분 맞지만 전부는 아니다. 사랑의 시작은 타이밍이 중요하지만 사랑의 유지는 타이밍이 아니라 꾸준한 노력이다.” 김노벨 저(著) 《넌 이제 사랑만 하면 돼》 (라디오북, 138쪽) 중에 나 오는 구절입니다.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성과 꾸준함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한결 같이 꾸준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빗물이 바위를 뚫는 것은 꾸준함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꾸준함은 재능을 이깁니다. 벼락치기로 당장 몇 번은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어도, 꾸준히 공부하는 사람의 깊이를 따라 갈 순 없습니다. 요셉은 어렸을 때에도, 젊을 때에도,황혼에도, 죽을 때에도 하나님을 바라 보았습니다. 그는 팔레스타인에서도, 애굽에서도 믿었습니다. 즉, 그는 고향에서도 믿었고,외국에서도 믿었습니다. 그는 양을 치던 들에 서도, 궁중에서도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는 역경 중에서도 애굽의 총 리가 된 영광의 자리에서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사랑하였습니다. 그는 결혼 전에도 믿었고, 가정을 이룬 후에도 믿었습니다. 요셉은 평생을 통해 꾸준히 믿었고,죽을 때에도 믿음으로 생을 마쳤습니다. 이렇듯 우리 모두가 흠모하는 요셉의 믿음의 키워드는 ‘꾸준함’이었 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창3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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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0장 27절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My sheep listen to my voice; I know them, and they follow m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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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 그런데 연합은 단순히 서로에 대한 적대감을 진정시키는 일만은 아니다. 시각이 다른 크리스천들은 서로의 말에 겸손히 귀를 기울임으로써 ‘배우고 성장할’수 있다. 나는 친한 목사님들이 나와 전혀 다른 교단에 속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그들은 어울리기 좋은 친구일 뿐 아니라 목사이자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나의 발전에 꼭 필요한 존재들이다. -스캇 솔즈의 [온유함으로 답하다] 중에서- 진정한 연합은 끼리끼리가 아닙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한 성령안에서 연합하는 것입니다. 서로가 자라가는 것은 서로 다른 사람들을 통해 배울 때 가능합니다. 그곳이 교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 같아야 한다는 말은 오직 말씀과 성령안에서 같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외의 것은 서로의 고유한 영역을 얼마든지 인정하고 서로 연합하려는 마음이 있으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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