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 제대로 한번 해보자[동아광장/이지홍]
이지홍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입력 2021-06-18 03:00수정 2021-06-18 03:02
피상적 평등에 방향 잃은 규제-지원
시장 생태계 파괴하고 양극화 고착
모두 이득 얻는 ‘플러스섬’ 공정 경쟁하자
이지홍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공정’과 ‘경쟁’을 앞세운 30대 청년이 주요 정당의 대표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이준석 신임 대표는 정치 무대에서 상대적 약자로 여겨지는 여성과 청년에 대한 공천 가산점 및 할당제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고 한국 보수정치에 파란을 일으켰다. 이 대표가 예고한 ‘공정한 경쟁’은 정치뿐 아니라 경제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껏 한국 사회가 시장과 경쟁을 바라본 시각도 이 대표가 개혁하고자 하는 기존 정치분야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의 특징은 소수의 대기업에 경제력이 집중되고 주요 시장들이 과점 구조를 띠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대기업의 시장지배력 남용 우려가 크고, 실제 크고 작은 불공정 행위들이 이 사회에 만연한 반(反)기업 정서의 한 원인을 제공해왔다. 대기업의 현재 위치가 정경유착의 잔재이며 따라서 이들의 존재 자체가 불공정이자 적폐라고 보는 극단적 관점도 있다. 정부도 공정한 시장 경쟁 환경을 확립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이고 있다.
정치와 마찬가지로 시장에서도 공정한 경쟁을 위해선 약자를 보호하고 지원해 기울어진 운동장을 보다 평등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대상은 바로 중소기업이다. 한 집계에 따르면 이번 정부가 출범한 2017년 당시 18개 중앙부처에서 288개, 17개 지방자치단체에서 1059개에 달하는 중소기업 지원사업으로 수조 원에 달하는 지원금을 뿌리고 있었다. 그사이 중소기업청이 중소벤처기업부로 승격된 것을 고려하면 지원 규모는 아마 지금 더 커졌을 것이다.
중소기업 ‘지원금’이 공천 과정에서 여성과 청년에게 부여되는 ‘가산점’과 유사한 성격을 갖는다면, ‘할당제’와 대비되는 경제 정책은 대기업에 대한 ‘규제’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 대기업은 불공정 행위의 온상으로 인식돼 온갖 차별적 규제를 받고 있는데, 기업의 자산이 일정 규모를 넘겨 ‘대기업’으로 지정되는 순간 무려 200개에 가까운 신규 규제가 부과된다. 이 중 동반성장위원회의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는 중고차 판매 등 100여 개 품목에서 대기업 활동을 직접 제한하고 있으며, 공공조달 시장에서도 정보기술(IT)을 포함한 각종 분야에서 대기업 참여가 통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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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렇게 대기업은 규제하고 중소기업은 지원하는 정책의 결과가 매우 신통치 않다는 것이다. 수십 년 동안 누적된 노력이 무색할 만큼 대-중소기업 불균형 문제는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 대기업이 빠진 제한된 경쟁 속에서 중소기업은 장기적 혁신보다 단기적 가격 경쟁에 치중하고 있고, 대기업을 규제하니 역설적이게도 중소기업이 성장을 기피하는 ‘피터팬 증후군’이 생겼다. 끊이지 않는 정부 지원 덕분에 생산성이 취약한 중소기업들이 성장도 못 하고 퇴출되지도 않은 채 좀비기업으로 연명하고 있다. 국민과 소비자 또한 막대한 손해를 입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대기업은 대기업대로 물밀 듯 밀려오는 규제와 악전고투를 벌이고 있다. 오로지 눈앞의 선거만 생각하는 정치인들의 후진적 입법 행태는 규제의 수와 범위를 나날이 늘리고 있고, 이로 인한 규제 간 충돌, 글로벌 스탠더드와의 괴리 등 제도의 내외부적 모순과 함께 사회적 비용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대기업마저 성장과 혁신을 주저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양질의 일자리 부족과 높은 청년실업률로 직결된다.
대기업 규제도 중소기업 지원도 방향을 잘못 짚었다. 일관된 경제원칙 대신 피상적 평등주의에 매몰된 지금의 정부 개입 방식은 공정은커녕 시장 생태계를 두 동강 내고 저성장과 양극화만 고착시키고 있다. 이제는 시스템을 대폭 재정비해 보다 자유롭고 역동적인 경제 체제를 만들 때다. 기업의 발목을 잡는 규제는 철폐하고, 고부가가치 혁신을 하고 성공하는 기업에 지원을 집중해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 성장 의욕이 넘치는 시장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시장경제의 본질은 선수들이 정해진 파이를 두고 서로 뺏고 뺏기는 ‘제로섬’ 경쟁이 아니라 모두에게 득이 되는 ‘플러스섬’ 경쟁이라는 데 있다. 이러한 시장의 근본 원리가 선수들의 출발선이 다르다고 작동하지 않는 게 아니다. 지레 겁먹지 않아도 된다. 분업과 협업이 필수 불가결하고 다윗과 골리앗의 한판 승부가 가능한 곳이 바로 시장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노키아 휴대전화는 박물관에 모셔졌고, 파괴적 혁신이 팬데믹을 만나 모더나라는 꼬마 바이오회사를 일약 글로벌 슈퍼스타로 키웠다. 교육과 근면은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다. 시장경제, 제대로 한번 해보자.
이지홍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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