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바로 그 사람 (삼하 12:7-15)
04월 07일 (수)
당신이 바로 그 사람 (삼하 12:7-15) 7. 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 사람이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 붓기 위하여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고
<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 사람이라 ... 내가 너를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 붓기 위하여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고 ...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맡겼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저것을 더 주었으리라 그런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치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도다>(7-9절).
나단의 비유를 남의 얘기로만 알고 분노하는 다윗의 무딘 양심을 찌르며 결정적으로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라>고 지적하는 대목입니다.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의 입을 통해 <네가 암몬 자손의 칼로 우리아를 살해하고 그의 아내를 빼앗았다>고 적나라하게, 통렬하게 단죄하셨습니다.
또한 그것은 누구보다도 풍성한 은혜를 체험한 자로서 하나님을 배반한 배은망덕이라는 사실도 고발하셨습니다.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더 주었으리라>는 말씀은 부족함 없이 채워주셨건만 다윗이 더욱 과욕을 부려 큰 범죄에 빠졌다는 책망입니다.
감사의 행위는 은혜의 원천적 존재에 대하여 그가 귀중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과 그 하나님의 하나님 다움을 전폭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신뢰감의 표현입니다. 그러한 인식과 믿음 속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회복되는 것이며 구원은 바로 그렇게 되살려진 관계를 통해 성취되는 사건입니다. 만일 이와는 달리 자신이 받은 은혜의 원천에 대하여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총을 멸시하는 것이자 관계회복에 이르는 길을 외면하는 결과를 가져올 뿐입니다. 이제 다윗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가 선고됩니다.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10절) <그 사람들이 네 아내들과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11절) <당신이 낳은 아이가 반드시 죽으리이다>(14절) 그리고 이 말씀들은 후에 실제 다 이루어졌습니다. 물론 다윗은 나단 선지자의 이 말씀을 듣고 즉각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며 회개했습니다. 비록 간단한 한 마디이지만 그럼에도 이것은 다윗의 진정한 자복이었습니다. 이 때 지은 다윗의 회개의 시가 바로 시편 32편입니다.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10절)는 말씀은 후에 어떻게 성취되었을까요(13:28-29, 18:14, 왕상 2:24-25)? -<네 아내들과 더불어 동침하리라>(11절)는 말씀은 후에 어떻게 성취되었을까요(16:21-22)? -다윗은 자신의 죄에 대한 변명이나 일체 정당화 하려는 시도가 없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주님, 다행히도 다윗은 나단 선지자의 그 찌르는 듯한 고발 앞에서 순순히 자신의 범죄 를 시인하며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했다>고 진술했습니다. 그 어떤 부인이나 변명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그의 <죄를 사하셨다>(13절)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징계는 피하지 못했습니다. 저희로 하여금 다시 한 번 죄의 무서움과 하나님의 징계의 혹독함을 다윗의 경우를 통해 깨닫고 또 배우게 해주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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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겐 이 말이
“‘사랑합니다’ 누군가에겐 이 말이 아름답고 찬란하게 예쁜 말일 것 이고 누군가에겐 전하지 못한 사랑일 것이고 누군가에겐 아픈 가슴을 찌르는 말이 될 것이며 남은 누군가에겐 듣고 싶고, 전해주고 싶은 그런 말일 것입니다.”
최한율 저(著) 《나는 그때의 너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새벽감성, 216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아버지’ 누군가에겐 이 말이 사랑의 희생을 가르쳐 준 눈물겹고 고 마운 말이지만, 누군가에겐 술주정뱅이, 무능력자, 폭력자로 기억됩니 다. 그래서 어떤 성도님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 자신이 겪었던 아버지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떠올라, 그저 ‘하나님’이라고 부 릅니다. 예수님은 이른바 ‘주기도문’에서 기도를 가르쳐 주실 때, 하나님을 가리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지상의 아버지는 죄와 실수와 허물이 가득할 수 있지만, 하늘의 아버지는 그 렇지 않습니다. 가장 완벽한 사랑과 성품과 무한한 능력이 있습니다. 지상의 아버지에게 받았던 상처로 인해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것을 꺼려 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늘 아버지는 모든 상처를 치유해 줄 수 있습니다. 비단 ‘아버지’에게서 받은 상처 뿐만이 아니라, 이 땅 에서 상처받은 모든 눈물은 하늘 아버지의 품에서 치유됩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 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계2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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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장 18절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린도전서 1장 18절>
For the message of the cross is foolishness to those who are perishing, but to us who are being saved it is the power of God. <1 Corinthians 1: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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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 우리는 예수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갈 때 서로에게서 배우며 제자도 안에서 더불어 자라 간다. 우리는 공동체 안으로 동일한 경험이나 동일한 자원을 가져오지 않는다. 하지만 우정을 통해 경험과 자원을 나눌 수 있으며, 그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신실한 제자도로 빚어진다. -크리스틴 폴의 [약한자의 친구] 중에서-
우리가 주님을 따르고자 하는 공동체라면 분명한 것은 서로의 다름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나누고 섬기고 배울수 있는 기회입니다. 예수를 다르고자 하는 분명한 신앙이 있다면 누구에게 강요하는 인생이 아니라 누군가를 섬기는 삶을 삽니다. 진정한 제자도가 회복되려면 우정을 다해 섬기셨던 주님의 마음을 간직해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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