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단의 비유 (삼하 12:1-6)
04월 06일 (화)
나단의 비유 (삼하 12:1-6) 1. 여호와께서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시니 그가 다윗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되 한 성읍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부하고 한 사람은 가난하니
하나님이 나단 선지자를 다윗에게 보내셨습니다. 나단은 다윗이 자신의 성전 건축 계획을 상의한 적이 있는 선지자입니다(7:2). 나단은 특히 왕의 권세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외치는 용기 있고, 담대한 선지자였습니다.
<... 한 성읍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부하고 한 사람은 가난하니>(1절). 나단 선지자가 이렇게 비유로 다윗을 비판하고 책망한 것은 한 나라의 왕인 다윗과의 직접적인 충돌을 피하고, 다윗 스스로 자신의 죄를 깨닫고 고백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비유는 어리석고 완악한 인간을 진리 가운데로 이끄는 아주 효과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입니다(사 5:1, 겔 17:3, 19:2-3, 24:3, 마 13:34).
<그 부한 사람은 양과 소가 심히 많으나>(2절). 이 <부한 사람>이 바로 다윗입니다. 그리고 심히 많은 <양과 소>란 다윗의 수많은 처첩들을 가리킵니다(3:2-5, 5:13-16, 대상 3:1-9). 나단 선지자가 이 비유를 통한 고발은 다윗은 이미 수많은 아내들을 거느리고 있었음에도 다시 하나 뿐인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빼앗기 위해 그 몹쓸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은 아무것도 없고 ... 작은 암양 새끼 한 마리뿐이라>(3절). <부자가 자기에게 온 행인을 위하여 자기의 양을 잡지 아니하고 가난한 사람의 양 새끼를 배앗아다가 자기에게 온 사람을 위하여 잡았나이다>(4절). 나단 선지자의 고발을 듣고 과연 다윗이 크게 노했다고 합니다. <... 나단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 그가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이런 일을 행하였으니 그 양 새끼를 네 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5-6절).
자신이 바로 그 부자인 줄도 모르고 흥분하여 <죽을 자라>, <네 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며 열심히 심판하고 있는 다윗의 모습을 보십시오. 자기의 입으로 자신의 행위를 정죄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비유 가운데서 당신이 기억하는 것 다섯 개만 간략히 적어 보십시오. -나단 선지자에 대해 아는대로 적어 보십시오. -다윗이 왜 <양 새끼를 네 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6절)고 했을까요?(출 21:37, 22:1)
주님, 나단 선지자의 비유가 주효했습니다. 그 비유의 진정한 의미를 미처 깨닫지 못한 다윗이 흥분하며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지라>고 했고, <네 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며 자신을 심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희 인생은 누구나 자기 눈의 들보는 깨닫지 못하면서 남의 눈의 티끌에는 흥분하여 쉽게 형벌을 선고합니다. 그 점에서는 다윗도 예외가 아님을 확인하며 더욱 자신을 돌아보게 되오니 늘 겸허하게 회개하며 사는 저희들 되게 해주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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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함
“혼란스러울 때일수록 단순함을 택해야 하는 이유는 복잡함은 있는 그대로의 실체를 흐리게 만들기 때문이야.”
남궁원 저(著) 《가만히 있어도 괜찮다 말해주길》 (모모북스, 25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단순함은 복잡한 문제를 해결해 주는 지혜로운 대답입니다. 단순함은 불필요한 것을 모두 덜어내고 추리고 추려서 반드시 있어야 할 것만으로 이루어진 본질이기에 제일 높은 경지입니다. 그러기에 단순 함은 오랜 기간 문제의 핵심을 붙잡고 애를 태운 치열함의 산물이고, 애매함과 복잡함은 나태함의 결과입니다. 단순함 속에 맑고 고요한 평 화가 있습니다. 진실된 말은 언제나 단순하고 꾸밈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교절에는 누룩 없는 떡을 먹으라고 했습니다. 이것의 여러 의미가 있지만 그 중 하나가 바로 누룩 없이 사는 법을 배우란 의미입니다. 단순하고 간결하게 누룩 없이도 살 수 있습니다. 잡다한 그것 없이도 살 수 있는 것이 능력이요 자유입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 하라.” (엡5: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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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20장 28절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요한복음 20장 28절>
Thomas said to him, "My Lord and my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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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나사렛 사람들은 “흑암에 앉은 백성”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에게 약속하신 땅 납달리 지파와 스불론 지파의 땅에서 살면서도 빛 가운데 당당하게 살지 못하고 어둠 가운데 살고 있었습니다. 그때 어둠 가운데 앉은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렛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생명의 빛을 비추셨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세상 그 누구로부터도 온전한 대접을 누리지 못한 채 어둠 가운데 있는 당신에게 오십니다. -강신덕의 [갈릴리의 길] 중에서-
예수님은 빛이십니다. 빛을 보는 자는 치유가 있고 회복이 있습니다. 빛을 보기 시작하면 더 이상 어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빛으로 오신 주님은 누군가를 비추어주실뿐, 자신을 빛내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라가는 것은 늘 누군가를 비춘다는 의미입니다. 자신을 빛내기보다 다른 사람을 비추는 사람이 주님의 제자입니다. |
04월 06일 (화)
나단의 비유 (삼하 12:1-6) 1. 여호와께서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시니 그가 다윗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되 한 성읍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부하고 한 사람은 가난하니
하나님이 나단 선지자를 다윗에게 보내셨습니다. 나단은 다윗이 자신의 성전 건축 계획을 상의한 적이 있는 선지자입니다(7:2). 나단은 특히 왕의 권세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외치는 용기 있고, 담대한 선지자였습니다.
<... 한 성읍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부하고 한 사람은 가난하니>(1절). 나단 선지자가 이렇게 비유로 다윗을 비판하고 책망한 것은 한 나라의 왕인 다윗과의 직접적인 충돌을 피하고, 다윗 스스로 자신의 죄를 깨닫고 고백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비유는 어리석고 완악한 인간을 진리 가운데로 이끄는 아주 효과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입니다(사 5:1, 겔 17:3, 19:2-3, 24:3, 마 13:34).
<그 부한 사람은 양과 소가 심히 많으나>(2절). 이 <부한 사람>이 바로 다윗입니다. 그리고 심히 많은 <양과 소>란 다윗의 수많은 처첩들을 가리킵니다(3:2-5, 5:13-16, 대상 3:1-9). 나단 선지자가 이 비유를 통한 고발은 다윗은 이미 수많은 아내들을 거느리고 있었음에도 다시 하나 뿐인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빼앗기 위해 그 몹쓸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은 아무것도 없고 ... 작은 암양 새끼 한 마리뿐이라>(3절). <부자가 자기에게 온 행인을 위하여 자기의 양을 잡지 아니하고 가난한 사람의 양 새끼를 배앗아다가 자기에게 온 사람을 위하여 잡았나이다>(4절). 나단 선지자의 고발을 듣고 과연 다윗이 크게 노했다고 합니다. <... 나단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 그가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이런 일을 행하였으니 그 양 새끼를 네 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5-6절).
자신이 바로 그 부자인 줄도 모르고 흥분하여 <죽을 자라>, <네 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며 열심히 심판하고 있는 다윗의 모습을 보십시오. 자기의 입으로 자신의 행위를 정죄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비유 가운데서 당신이 기억하는 것 다섯 개만 간략히 적어 보십시오. -나단 선지자에 대해 아는대로 적어 보십시오. -다윗이 왜 <양 새끼를 네 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6절)고 했을까요?(출 21:37, 22:1)
주님, 나단 선지자의 비유가 주효했습니다. 그 비유의 진정한 의미를 미처 깨닫지 못한 다윗이 흥분하며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지라>고 했고, <네 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며 자신을 심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희 인생은 누구나 자기 눈의 들보는 깨닫지 못하면서 남의 눈의 티끌에는 흥분하여 쉽게 형벌을 선고합니다. 그 점에서는 다윗도 예외가 아님을 확인하며 더욱 자신을 돌아보게 되오니 늘 겸허하게 회개하며 사는 저희들 되게 해주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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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함
“혼란스러울 때일수록 단순함을 택해야 하는 이유는 복잡함은 있는 그대로의 실체를 흐리게 만들기 때문이야.”
남궁원 저(著) 《가만히 있어도 괜찮다 말해주길》 (모모북스, 25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단순함은 복잡한 문제를 해결해 주는 지혜로운 대답입니다. 단순함은 불필요한 것을 모두 덜어내고 추리고 추려서 반드시 있어야 할 것만으로 이루어진 본질이기에 제일 높은 경지입니다. 그러기에 단순 함은 오랜 기간 문제의 핵심을 붙잡고 애를 태운 치열함의 산물이고, 애매함과 복잡함은 나태함의 결과입니다. 단순함 속에 맑고 고요한 평 화가 있습니다. 진실된 말은 언제나 단순하고 꾸밈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교절에는 누룩 없는 떡을 먹으라고 했습니다. 이것의 여러 의미가 있지만 그 중 하나가 바로 누룩 없이 사는 법을 배우란 의미입니다. 단순하고 간결하게 누룩 없이도 살 수 있습니다. 잡다한 그것 없이도 살 수 있는 것이 능력이요 자유입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 하라.” (엡5: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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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20장 28절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요한복음 20장 28절>
Thomas said to him, "My Lord and my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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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나사렛 사람들은 “흑암에 앉은 백성”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에게 약속하신 땅 납달리 지파와 스불론 지파의 땅에서 살면서도 빛 가운데 당당하게 살지 못하고 어둠 가운데 살고 있었습니다. 그때 어둠 가운데 앉은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렛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생명의 빛을 비추셨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세상 그 누구로부터도 온전한 대접을 누리지 못한 채 어둠 가운데 있는 당신에게 오십니다. -강신덕의 [갈릴리의 길] 중에서-
예수님은 빛이십니다. 빛을 보는 자는 치유가 있고 회복이 있습니다. 빛을 보기 시작하면 더 이상 어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빛으로 오신 주님은 누군가를 비추어주실뿐, 자신을 빛내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라가는 것은 늘 누군가를 비춘다는 의미입니다. 자신을 빛내기보다 다른 사람을 비추는 사람이 주님의 제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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