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더라 (삼하 11:22-27)
04월 05일 (월)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더라 (삼하 11:22-27) 22. 전령이 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요압이 그를 보낸 모든 일을 다윗에게 아뢰어
<... 왕의 부하 중 몇 사람이 죽고 왕의 종 헷 사람 우리아도 죽었나이다>(24절). 우리아를 가리켜 <왕의 종>이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아 장군은 다윗에게 마치 종처럼 헌신하고 충성을 다한 신하였습니다(11절). 그럼에도 다윗은 그의 전사 보고를 받고는 속으로 크게 안도하며 쾌재를 불렀을 것입니다. 자신의 불의한 계략이 마침내 성공을 거두자 그 사실에 만족했을 뿐 그가 누구보다 충직한 자신의 신하였다는 사실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심지어는 이렇게까지 말합니다. <... 칼은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삼키느니라>(25절). 심복의 전사 소식에 이렇듯 냉담한 반응을 보인 것입니다. 평소 보여주었던 그의 모습과는 너무도 대조적입니다(1:12, 3:31-33, 18:33). 다윗은 지금 범죄로 말미암아 올바른 사고력과 판단력을 잃었음은 물론 그 심령 또한 완전히 메말라 버린 상태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본문은 우리아의 장례를 마치자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의 아내인 밧세바를 곧바로 왕궁으로 데려왔다고 합니다. 다윗의 그런 처사는 밧세바의 사전 임신 사실을 최대한 은폐하기 위한 조처였을 것입니다. <... 그가 그의 아내가 되어 그에게 아들을 낳으니라>(27절). 밧세바가 낳은 그 아들은 다윗과의 부정한 관계에서 출생한 죄악의 씨앗이었습니다(4-5절). 따라서 다음 장에 가면 하나님께서 결국 그 아이의 생명을 거두어 가십니다.
보십시오. <다윗의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27절)고 하잖습니까? 이 말씀이 바로 우리아와 밧세바에 대한 다윗의 모든 계략과 소위에 대한 성경의 결론입니다. 다윗의 이 사건은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일지라도 인간적인 정욕에 사로잡히면 누구나 여호와 앞에서 참혹한 죄악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확인해 줍니다.
하나님은 아무런 문제가 없을 때는 좋다가도 사정이 조금만 어려워지면 금새 돌아서는 그런 가벼운 사랑을 우리에게 원하고 계신 분이 아니십니다. 다윗 같은 하나님의 사람도 허무하게 무너진 이 역사적 사실을 통해 늘 자신을 확인하고 점검하는 성도들로 살아가야겠습니다.
-본문 26절이 밧세바를 굳이 <우리아의 아내>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일까요? -다윗이 우리아의 전사 소식을 듣고 <칼은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삼키느니라>(25절)고 한 말의 뜻은 무엇이었을까요? -밧세바가 다윗에게서 낳은 아들들의 이름을 적어 보십시오(대상 3:5).
주님, 한 번 죄악에 눈이 멀고 이성을 잃은 다윗은 결국 자신의 악한 생각을 관철해 우리아를 죽게 하고 그의 아내인 밧세바를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의 은밀하고도 감쪽같은 계략을 모를 수 있지만 하나님은 다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행한 그 모든 일이 보시기에 악했다고 하셨습니다. 저희로 하여금 다윗을 반면교사로 늘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살아가도록 성령으로 역사해 주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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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썩 좋아하진 않는 말
“나는 ‘나’라는 말을 썩 좋아하진 않습니다. 내게 주어진 유일한 판돈인 양 나는 인생에 ‘나’라는 말을 걸고 숱한 내기를 해왔습니다. 하지만 아주 간혹 나는 ‘나’라는 말이 좋아지기도 합니다.”
시인 심보선의 시 「‘나’라는 말」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사람은 죽는 날까지 끝없이 질문하고 답하며 살아갑니다. 가장 많이 질문하고 답하는 존재는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이렇게 수 없이 대화하는 자신의 자아가 찌그러져 있다면 우리는 일평생 찌그러진 상대와 대화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살면서 나를 가장 많이 속인 사람, 나에게 가장 많은 상처를 준 사람,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용서해준 사 람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이렇듯 인간의 여러 관계 중에서 가장 다루기 힘든 관계는 나와 나 자신과의 관계입니다. 거울을 보면 세상에서 가장 난해한 사람이 거기 서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이런 나와 끝까지 같이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이런 나를 사랑해야 합니다. 성경은 나를 사랑하는 첫 번째 길이 ‘자기를 부인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신앙 생활이란, 자신을 극복하고(=자기를 부인하고) 내 자아가 아닌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살아 가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마16: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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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3장 45절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누가복음 23장 45절>
For the sun stopped shining. And the curtain of the temple was torn in tw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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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 인간의 본성은 ‘더 나은 자리’를 선호합니다. 더 좋은 자리로 옮겨가는 사람을 보면서 부러워합니다. 좋은 자리, 높은 자리가 악이 아닙니다. 하지만 사명을 떠나 ‘자리’를 탐하는 자에게 ‘화’가 있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나온 사람들이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적어도 하나님이 높이시지 않는 그 자리를 탐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중요한 길입니다. -김병삼의 [텅빈 경건] 중에서-
누구나 자리가 있습니다. 그 자리는 자기의 위치입니다. 하지만 자리가 자신의 전부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자리를 높다고 그 사람의 됨됨이 높지 않습니다. 특별히 신앙인으로서 하나님과 관계 있다고 볼수 없습니다. 지금 자리를 연연하지 말고 정말 주님을 따르는 신실한 제자인지 물어 보아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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