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들이 하도 개소리를 해서 강아지인 나는 글을 쓴다
[아무튼, 주말]
[나는 강아지로소이다]
한현우 문화전문기자
입력 2021.03.20 03:00 | 수정 2021.03.20 03:00
나는 왜 쓰는가. 조지 오웰처럼 나 역시 ①눈부신 글솜씨를 자랑하려는 순전한 이기심 ②올바른 문장과 적확한 단어와 수긍할 수밖에 없는 비유를 구사하려는 미학적 열정 ③개와 인간의 세상에서 벌어진 일들을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역사가의 충동 ④내 생각대로 세상을 이끌고 가르치겠다는 정치적 목적까지 네 가지 동기를 갖고 있다. 그러나 오웰에게 없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인간들이 하도 개소리괴소리를 해대고 짖어대는 통에 나의 순수한 짖음은 묻혀버렸다. 나라도 인간이 내야 할 소리를 내야겠다는 마음이 나를 글 쓰는 강아지의 삶으로 내몰았다.
일러스트= 이철원
인간들의 개소리는 얼마나 다종다양한가. 페이스북이란 걸 시작했더니 몇몇 사람이 친구 신청을 해왔다. 그 친구들을 통해 모르는 사람들도 내 페이스북에 찾아왔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모든 신청에 수락 버튼을 눌렀는데, 어느 날 오후 갑자기 1초 간격으로 친구 신청이 쏟아졌다. 이놈의 인기란, 하며 연달아 신청을 받아주다 보니 하나같이 젊고 섹시한 여자 사람이었다. 다들 프로필에 카톡 아이디를 공개해놓고 ‘야한 얘기 할까요’ 같은 개소리를 하고 있었다. 황급히 이들을 친구 명단에서 지우고 차단하느라 앞발 발톱이 다 닳을 지경이었다.
내가 수컷인 것은 사실이지만 도대체 무슨 심산으로 작년 말 태어난 강아지한테까지 와서 사기를 치려 하는가. 치와와 아저씨가 옳았다. 인간들은 절대 믿을 만한 존재가 아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여자 사람들이 나한테 와서 껄떡거린 것은 일종의 보이스피싱 같은 거라고 한다. 남의 이름으로 계정을 만들어 멍청한 남자 사람을 꼬드기고 결국 돈을 털어먹는 종자들이란다. 그러니까 젊고 예쁘지도 않을 뿐더러 여자가 아닐 가능성도 매우 높다. 미인계라니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는다. 나는 조만간 중성화 수술을 하게 된단 말이다 이것들아!
하여튼 인간들은 알 수 없다. 국어사전에도 개수작 개죽음 같은 단어가 있고 개 패듯 누굴 패줬다고 할 만큼 개를 무시하더니 요즘은 개이득 개멋져 개맛있어 같은 말도 쓴다. 한때 개만 보면 된장 발라 말아 하던 것들이 이젠 보신탕 먹는 자들을 원시인 취급한다. 사람이 술 먹으면 개가 된다니, 어떻게 술을 먹고 사람이 나아질 수 있는가. 그래서 우리 비숑들은 반려견계 최대 경쟁자인 푸들을 개무시한다. 인간들이 간신과 아첨꾼을 푸들이라고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다.
나를 데려온 아저씨가 자꾸 아빠 타령하는 것도 달갑지 않다. 처음 아빠 행세할 때는 엄마가 말한 ‘나중에 크면 알게 된다’던 아빠의 정체가 설마, 하는 생각도 했다. 어쨌든 아저씨가 나한테 밥도 주고 물도 주고 집도 사줬기 때문에, 이 인간에겐 최소한의 기대를 걸어볼 생각이다. 그래서 그를 개아범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개아범은 아침에 일어나서 나에게 밥도 주기 전에 집 밖에 나가 신문을 가져온다. 1면을 쓱 훑어본 뒤에야 사료 봉지를 부스럭거리며 비로소 집사 일을 시작한다. 그때마다 나는 “예끼!” 하고 꾸짖는데 반가워서 짖는 줄 아는 모양이다. 나도 개아범이 두고 간 신문을 읽어보기로 했다. 인간과 함께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이기에, 그들을 긍휼히 여기기에 인간을 좀 알아야겠다. 지난하고 피곤한 작업이 될 것이다. <다음 주에 계속>
토동이 말하고 한현우 기자 적다
페이스북 todong.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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