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104] 국민은 죄인, 물가와 세금은 벌금?
입력 2021.03.24 03:00 | 수정 2021.03.24 03:00
알베르 카뮈, '칼리굴라'.
시민들의 재산을 직접 훔치는 편이 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생필품에 슬쩍 간접세를 붙이는 것보다 더 부도덕하다곤 할 수 없는 거야. 통치한다는 건 훔치는 거야. 나는 말이지, 노골적으로 훔치는 쪽이야. 이 바보들아, 국고가 중요한 것이라면 인간의 생명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아. 돈이 전부라고 보는 이상, 목숨 같은 것은 헌신짝같이 생각해야 마땅한 거야. - 알베르 카뮈 ‘칼리굴라’ 중에서
2000원도 안 하던 대파 한 단이 5900원이다. 계란 한 판은 세 배로 올라 9000원 안팎. 휘발유 값도 올랐다. 허리띠 졸라매고 마련한 아파트를 한 채라도 가졌다면 건강보험료, 취득세, 재산세, 양도세, 종합부동산세 등, 내야 할 세금 걱정에 땅이 꺼진다. 살아서 먹어야 한다는 죄로, 차가 있다는 죄로, 집을 소유했다는 죄로 벌금을 내는 꼴이다.
정부는 세금 낼 능력이 없으면 집을 팔고 나가라며 큰소리다. LH공사 직원들은 내부 정보를 이용한 신도시 투기도 자기들 능력이라며 성난 국민을 비웃는다. 양산에 사저 부지를 갖고 있는 권력자도 농지법 위반 의혹에 대해 ‘좀스럽다’며 비난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그들에게 국민은 세금을 거두기 위해서만 필요한 존재인 모양이다.
1944년에 출판된 알베르 카뮈의 희곡 ‘칼리굴라’는 네로, 코모두스와 함께 폭군으로 기억되는 로마 제국 황제의 이야기다. 칼리굴라는 재산을 몰수하기 위해 귀족들을 적폐로 몰아 죽인다. 국민에겐 감당할 수 없는 세금을 강제한다. 사치로 탕진한 국고를 채울 수만 있다면 국민의 목숨 따윈 하찮다. “이 세상에 평등이라는 선물을 주겠어. 내일부터 다 같이 굶주리는 거야”라고 말했던 황제는 결국 폭정에 시달리던 원로원 의원들과 심복에게 살해당한다.
‘파 테크’가 유행이란다. 대파의 뿌리를 잘라 화분에 심어 길러 먹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이젠 차도 팔고 집도 팔고, 계란을 먹으려면 닭을 키워야 하는 건 아닌지. 물가와 세금은 자꾸 오르는데 내라면 낼 수밖에 없는 국민은 허리가 휜다. 이것이 ‘사람이 먼저’라던 정권의 평등과 정의, 국민의 행복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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