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며 금식한 다윗(삼하 1:11-16)
01월 13일 (수)
울며 금식한 다윗(삼하 1:11-16) 11. 이에 다윗이 자기 옷을 잡아 찢으매 함께 있는 모든 사람도 그리하고
<이에 다윗이 자기 옷을 잡아 찢으며 함께 있는 모든 사람도 그리하고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과 여호와의 백성과 이스라엘 족속이 칼에 죽음으로 말미암아 저녁 때까지 슬퍼하여 울며 금식하니라>(11-12절). 다윗이 이렇게 슬퍼하며 금식하여 운 것은 기름 부음을 받은 왕 사울과 사랑하는 친구 요나단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고, 동족 이스라엘 백성이 블레셋 군대에 크게 당했다는 비보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 죽이기를 두려워하지 아니 하였느냐 하고 ... 그를 죽이라 하여 그가 치매 곧 죽으니라>(14-15절).
유대인들의 전통은 왕과 제사장, 그리고 선지자 등을 세울 때 반드시 그 머리에 기름을 부음으로 그 직위와 권세가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분명히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의 아말렉 청년이 다윗의 환심을 사려고 사울의 죽음을 도왔다고 하자 다윗이 그 청년에게 사형을 내린 것입니다.
세상 지혜란 일을 교묘하게 처리하고 감쪽 같이 남의 생명을 해치는 능력을 의미하지만 진정한 지혜란 상대가 가진 허를 꿰뚫어 보고 거짓과 불법을 처단하는 용단을 가리킵니다.
참 지혜란 그런 길에서 우리의 발길을 확실히 돌려 무엇보다도 다정하고 따스한 가슴을 가지는 것이며 그 안에서 증오까지도 녹이고 새로운 삶의 꿈을 부화시키는 열정을 뜻하는 것입니가. 그리고 다윗처럼 그 길을 따르는 사람은 욕망과 본능을 충족시키는 인생이 아니라 자기에게 맡겨진 거룩한 사명을 깨닫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네 피가 네 머리로 돌아갈지니라>(16절)한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다윗이 <슬퍼하여 울며 금식>(12절)한 진정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다윗이 왜 자기의 옷을 찢었을까요(11절)
주님, 다윗의 기름 부은 자에 대한 존중과 경외는 실로 놀라웠습니다. 그가 자신을 해치려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끝까지 보복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그 처분을 맡겼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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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자기는 될 수 있습니다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금을 부수고 줄을 끊고 죽을 때까지 다시 금을 타지 않았다. 세상에 족히 다시 금을 타서 들려줄 이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김준연 저(著) 《세상을 움직이는 네 글자》 (궁리, 218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중국 춘추시대에 거문고의 대가 ‘백아’와 그의 친구 ‘종자기’가 있었습니다. 백아가 태산을 노니는 느낌을 담아 연주하면 종자기는 “훌륭한 연주입니다. 높디 높은 것이 태산과 같습니다. ”라고 찬사를 보냈습니다. 백아가 흐르는 물을 생각하고 연주하면, “훌륭한 연주입니 다. 출렁거리는 것이 흐르는 물 같습니다.”며 극찬했습니다. 백아는 종자기를 자기 소리를 알아주는 친구라는 뜻으로 ‘지음(知音)’ 이라 했습니다. 그랬던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거문고 줄을 끊으며 다 시는 연주를 하지 않았습니다. 연주를 제대로 들어줄 사람이 없다고 생 각한 것입니다. 백아처럼 천재가 되는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그러나 우리는 칭찬해 주고 축복해주는 종자기가 될 수는 있습니다. “명창(名唱)은 귀명창이 있어야 명창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귀명창이라 함은, 소리 중간에‘얼쑤’추임새를 넣어 기운을 북돋아 주고, 축복해 주는 사람입니다. 침례(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배경이 되어주고 들러리가 되어주는 기쁨 으로 충만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요한을 가리켜 여인이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라고 하셨습니다. 이웃을 빛내는 배경이 되면서도 넘 치는 기쁨. 그리스도인들이 경험하는 역설적인 하늘의 기쁨입니다.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요3: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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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9장 9절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창세기 39장 9절 How then could I do such a wicked thing and sin against Go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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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기독교적이진 않다 어려운 일을 당할 때 가장 우리 인간이 가지는 본성적 방법은 무속신앙처럼 비는 것이다. 금식기도, 철야기도, 어떤 자기 희생적인 서약을 한다. ‘이번에 취직/승진만 시켜주시면, 1년 봉급은 몽땅 그대로 다 바칠 터이니.. 이번에는 꼭 취직/승진을 시켜주세요’ 그것도 진심으로 그렇게 기도한다. 간절한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적이진 않다. -박영선 목사의 ‘환란을 당하는 것이 섬기는 길이다’에서-
영광스런 구원을 받은 성도의 일상은 어떻게 우리에게 주어지느냐 하면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고. 답답한 일을 당하고. 핍박을 받고, 거꾸러뜨림을 당하고.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지는 것들입니다. 예수를 죽인 것처럼, 세상이 우리를 죽이려 든다는 뜻입니다 그런 세상을 이기고 믿음을 지키는 것이 진짜 성도의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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