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라드 칼럼] 암담한 2021년 북한의 운명
[중앙일보] 입력 2021.01.01 00:21 | 종합 29면 지면보기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1월을 뜻하는 영어 ‘January’는 로마의 신 야누스(Janus)에서 유래했다. 야누스는 두 얼굴을 가진 신이다. 뒤통수에 달린 얼굴은 과거를 바라보고 앞 얼굴은 미래를 향한다. 오늘 그렇게 새해를 맞이해 보자.
경제적 지원과 백신이 절실한데
정권은 억압·고립의 과거로 회귀
2020년은 북한에 끔찍한 한 해였다. 경제는 대북제재, 홍수, 태풍, 코로나19로 인한 봉쇄에 큰 타격을 입었다. 유엔 보고에 따르면 북한은 이미 5월부터 식량을 비롯한 물자와 자원의 부족에 시달렸고, 10월 10일에는 김정은 위원장이 인민들의 고초에 대해 눈물까지 보이며 사과했다. 이후 북한 매체는 감자 수확을 극찬하기 시작했다. 이는 쌀 부족의 심각성을 암시한다. 올 1~11월 대중국 무역의 수입은 전년도 대비 79%, 수출은 76% 감소했다. 정치적 상황도 위태로웠다. 김 위원장의 트럼프 대통령과의 친분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정권 수뇌부가 혼란을 겪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가 여러 차례 포착됐다.
북한 정권의 억압은 강화됐다. 강 너머 중국으로 국경을 넘기가 훨씬 어려워졌고, 반동사상문화 배격법을 채택해 외국 방송이나 남한 연속극 시청은 더욱 위험한 일이 됐다. 외교관들과 국제기구 직원들은 코로나19 확산 억제라는 명목으로 대부분 북한을 떠나야 했다. 북한 내에 체류하는 외국인들은 크게 줄어 북한 관찰이 가능한 정보망이 1년 전과 비교하면 훨씬 줄었다.
북한 지도부는 국경을 최대한 봉쇄하고 필사적으로 백신을 확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 보건성과 외무성 관리들은 만사를 제쳐 두고 백신 확보에 주력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북한이 백신 연구 도용을 몇 차례 시도한 정황이 있다.
2020년 북한은 경제개혁을 역행하고 국가 통제를 강화하려 했으며 국경을 폐쇄하고 인민들의 얼마 없는 자유를 더욱 제한했다. 북한은 세상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고립의 땅으로 회귀해 국가의 모든 분야를 당 통제 속에 두려 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코로나19 사태 전에 시작됐다. 2019년 12월에 있었던 제5차 전원회의에서 당 통제하에 자력갱생으로 회귀한다는 전략적 결정을 내렸고, 이는 북한 수뇌부 보수 세력의 승리를 의미했다.
코로나19는 북한의 변화를 가속했다. 북한 정권은 전염병 확산을 진심으로 두려워하고, 북한 보수 세력은 코로나19를 구실삼아 그들이 선호하던 옛날 방식으로 회귀했다. 북한 보수층은 남한 영화가 주민들에게 암암리에 보급되는 것을 몹시 싫어했고, 김선경 외무성 부상이 외교관들에게 북한을 떠나라는 암시를 주었던 것도 북한 안보 기관의 보수 인사들이 성가시고 불결한 외국인들을 북한 밖으로 추방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북한의 2021년은 더 힘들고 더 위험할 수 있다. 기근 발생 가능성도 있다. 기근은 북한 주민들의 비극일 뿐 아니라 정권에도 치명타다. 백신이 없으면 사실상 코로나19 확산을 막을 길이 없다. 북한은 백신과 경제원조가 절실하다. 중국은 백신을 제공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 한국과 미국을 바라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북한은 반사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마치 어린아이가 무서운 것을 보고는 머리를 이불 속에 집어넣고 그것이 없어지기를 바라는 듯이 행동한다. 최근 북한 매체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중국발 미세먼지나 조류, 눈(雪), 냉동식품 등을 통해 유입될 수 있다는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는 주장을 폈고, 이는 북한 정권이 이미 망상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 흐름이 바뀌지 않으면 북한은 심각한 위기를 피할 수 없다. 한 가닥의 희망은 북한의 예측 불가성이다. 2018년 적대를 철회하고 대화를 지향하는 김 위원장의 신년사를 예측한 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옛말이 진리이길 바란다.
존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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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중앙일보] [에버라드 칼럼] 암담한 2021년 북한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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