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주님을 닮아 가는 삶 (에베소서 4:17-24) 외 1

鶴山 徐 仁 2020. 4. 20.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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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종소리 - 365일 하나님과 행복한 삶의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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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월 20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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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주님을 닮아 가는 삶 (에베소서 4:17-24)

17.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18.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19.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20.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21.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본문 해석

 크리스천은 믿음으로 구원 받고 예수님 닮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때론 부족하고 연약해서 신분과 직분에 걸맞지 못할 때도 있지만, 그분을 닮아가기 위해 애쓰며 노력해야 합니다. 신앙의 성장은 연륜과 경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더불어 동행하는 삶을 잘해야 합니다. 올림픽 선수들이 메달을 딸 수 있는 것은 피나는 훈련과 성실함으로 연습하고 땀을 흘렸던 노력의 결과인 것처럼 영적으로 훈련되어지고 경건의 연습을 통해 실천하며 나아갈 때 성장과 성숙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이방인들처럼 허망한 것을 행하지 말아야 합니다. 더 이상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따라 살지 않아야 합니다. 성도의 삶은 감각 없는 자같이 방탕에 방임으로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는 삶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않았습니다(17-20). 다만 제자로써 예수님처럼 생각하는 습관과 그분의 삶과 교훈을 듣고, 철저하게 아버지의 뜻을 따라 순종하고, 소외되고 가난한 자들을 돌보시며, 섬김과 헌신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날마다 바라보는 삶이 필요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부부가 점점 서로를 닮아가며, 자녀 또한 부모를 닮아가는 것처럼, 주님을 사랑하며, 존경하고 따르게 될 때 주님을 닮게 될 것입니다. 언제나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에 대해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세밀한 음성에 순종하고자 할 때에 인도함을 받게 되며, 주님을 온전히 닮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에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새 사람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24). 

  성경은 지식과 정보를 위한 것이 아니라, 변화를 일으키는 생명의 말씀이며, 성령과 함께 역사가 일어나는 곳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4:12) 나의 가장 사랑하는 책, 그 성경책을 날마다 가까이 하고 말씀을 따라 주님을 생각하고 진리를 듣고 배우는 자세가 될 때에 많은 변화와 성장과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결단과 적용

- 신앙의 성장과 성숙을 위해 경건의 연습과 실천할 것들을 살펴봅시다.

-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 말씀의 능력과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기도합시다.

- 성경책을 날마다 가까이 하고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삶을 결단해 봅시다.

오늘의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주님의 자녀로 살아가면서도 교만과 욕심을 이기지 못함을 용서하시옵소서. 가정에서도 자녀들에게 모범이 되길 원합니다. 마음은 원이지만 육신이 유약오니 강한 성령으로 충만케 하시사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하시옵소서.

인문학 큐티더 보기
잴 수 없는 것
인문학 나눔

“피터 드러커는 ‘측정할 수 없으면 개선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모든 것을 측정해서 수치로 표현해야 관리도 개선도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물며 영국의 한 교수는 여인의 아름다움을 측정하는 

단위로 헬렌(H)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에밀리 디킨슨은 그의 시에서  

‘고독은 감히 잴 수 없는 것’ 이라고 썼습니다.  

어떻게 고독을잴 수 있겠습니까?”

금랑재 저(著) 《고독은 투쟁이다》 (청어, 83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우리 삶에는 눈에 보이지 않고, 

손으로 잡을 수도 없고, 잴 수도 없지만,  

무한한 큰 힘을 가진 그 무엇이 있습니다.  

측정하려고 해도 너무커서 측정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사랑’ 이 그러하고 ‘아름다움’이 그러합니다.  

시인과 예술가들은 보이지 않는 이 큰 것들에 색칠을 해서 

희미하게나마 이 큰 것들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고마운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한 걸음 아니 열 걸음 더 나아갑니다.  

예수님은 이 큰 사랑을우리에게 느끼게 하고, 

이 사랑 안에서 살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이 사랑을 위해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 사랑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는 인간의 언어는 없습니다.  

말로 담을 수 없고 잴 수도 없는 예수님의 큰 사랑을 

가슴에 담고 사는사람은 가장 복된 사람입니다.

기독 메시지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고후9:15)

그림 큐티더 보기
베드로전서1장22절
고린도전서 15:10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Now that you have purified yourselves by obeying

the truth so that you have sincere love for your brothers,

love one another deeply, from the heart.(NIV)

도서 큐티더 보기
다시 깨끗한 삶을 살기 위하여

우리가 지은 죄 때문에 양심에 찔림을 받으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일로 흘리는 눈물이 있다면

 그것은 정말 값지고 고귀한 눈물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신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내가 지은 죄를 자백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다시 한 번 깨끗한 삶을 살기 위해서 

애통하는 마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여러분, 최근에 여러분이 주님께 지은 죄 때문에 

가슴 아픈 마음으로 통회하며 운 적이 있는가?

  -이호준 목사의 ‘실패에서 일어나라’에서-

 

하나님은 죄를 지은 우리는 사랑하십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지은 죄는 심히 미워하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들도 마땅히 죄를 미워하고 버려야 합니다.

 만일 내가 계속해서 지은 죄를 숨기면서 합리화시킨다면 

아무리 예수님이 나를 사랑한다 해도 

그 사랑은 나의 삶 속에 어떠한 영향도 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았다면 

이제는 죄에서 돌이켜 회개하고 죄를 버려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변화된 모습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승리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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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월 18일 (토)
말씀 큐티더 보기
성경 본문 그대는 안심하라 (삿 19:16-21)

16. 저녁 때에 한 노인이 밭에서 일하다가 돌아오니 그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 산지 사람으로서 기브아에 거류하는 자요 그 곳 사람들은 베냐민 자손이더라

17. 노인이 눈을 들어 성읍 넓은 거리에 나그네가 있는 것을 본지라 노인이 묻되 그대는 어디로 가며 어디서 왔느냐 하니

18. 그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는 유다 베들레헴에서 에브라임 산지 구석으로 가나이다 나는 그 곳 사람으로서 유다 베들레헴에 갔다가 이제 여호와의 집으로 가는 중인데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는 사람이 없나이다

19. 우리에게는 나귀들에게 먹일 짚과 여물이 있고 나와 당신의 여종과 당신의 종인 우리들과 함께 한 청년에게 먹을 양식과 포도주가 있어 무엇이든지 부족함이 없나이다 하는지라

20. 그 노인이 이르되 그대는 안심하라 그대의 쓸 것은 모두 내가 담당할 것이니 거리에서는 유숙하지 말라 하고

21. 그를 데리고 자기 집에 들어가서 나귀에게 먹이니 그들이 발을 씻고 먹고 마시니라

본문 해석

<... 그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 산지 사람으로서 기브아에 거류하는 자요 그곳 사람들은 베냐민 자손이더라>(16절). 이 말씀은 당시 레위인 일행에게 친절을 베푼 사람은 기브아가 아닌 에브라임 출신의 한 노인뿐이었다는 사실은 강조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는 사람이 없나이다>(18절). 기브아 사람들의 성품이 얼마나 악했는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나그네를 사랑하고 대접하라는 것이 율법의 가르침이었습니다(신 10:19). 그러나 그들은 그 말씀을 철저히 무시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오직 한 사람, 그것도 그곳에 정착한 외지인이었던 한 노인만이 그들을 영접하며 <안심하라 그대의 쓸 것은 모두 내가 담당하겠노라>(20절)며 레위인 일행을 자기 집으로 안내하고 나귀에게도 여물을 주고 또 발을 씻고 먹고 마실 수 있도록 배려하고 대접했습니다. <나그네를 대접하며 혹은 성도들의 발을 씻으며 혹은 환난 당한자들을 구제하며 혹은 모든 선한 일을 행한 자라야 할 것이요>(딤전 5:10).

 

창세기 18장에는 아브라함이 태양이 중천에 뜬 대낮에 지나가는 세 나그네가 얼마나 더울까 싶어 달려나가 극진하게 영접하고 대접한 얘기가 나옵니다. <몸을 땅에 굽혀> 영접하고, 물을 가져다 발을 씻게 하고, 고운 가루로 떡을 빚고 송아지를 잡아 극진히 대접합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들이 바로 하나님의 천사였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하고 떠납니다.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창 18:14).

우리는 다 나그네들입니다. 나그네로 살던 아브라함이 나그네를 대접하다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한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네게 물을 좀 달라한 그가 네게 생수를 주었으리라>(요 4:10)하신 주님의 말씀도을 잊지 마십시오.

결단과 적용

-마태복음 25:35-40 말씀을 찾아 읽어 보십시오.

-나그네를 환대하다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한 아브라함은 어떤 축복을 누렸습니까?

-본문의 기브아 노인과 레위인은 고향이 같았습니다. 어디였습니까(16절, 18절)?

오늘의 기도

주님, 실은 저희가 다 나그네임을 잊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서로 사랑으로 대접하며 배려하며 더불어 살게 해주시옵소서. 주님은 나그네를 영접하는 것이 곧 인자를 영접하는 것이라고 하셨사오니 아브라함을 본받아 저희도 이웃과 나그네를 대접하는 일에 인색하지 않게 하시옵소서. 주님을 사랑하고 대접하는 마음으로 늘 형제와 이웃과 나그네를 섬기고 대접하며 살게 해주시옵소서. 

도서 큐티더 보기
좁은 길로 들어가려 하지 않는 거짓 종교인

거짓 종교인들은 스스로 바른 길에서 떠나고, 

사람들을 그릇된 길로 인도하고, 

언약을 어김으로써 하나님의 이름이 멸시와 천대를 받게 한다.

 이것은 말라기 시대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우리 시대의 이야기이기도 한다. 

대중 동원력을 가진 이들, 권력의 단맛에 취한 이들은 

더 이상 좁은 길로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십자가는 상징으로만 존재할 뿐, 

그것을 삶의 방식으로 혹은 자기 운명으로 삼으려 하지 않는다.

 교회의 위기는 당연하다. 

어리석어 보이는 복음의 본질을 

꼭 붙들지 않는 교회는 쇠퇴할 것이다.

-김기석 목사의 ‘우주의 윤리적 포물선’에서-

 

로마 황제였던 콘스탄티누스 이후 교회는

 권력과 밀월 관계를 유지해왔습니다.

 종교와 세속의 권력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힘이 커질수록 복음의 정수와는 멀어집니다.

 제사장들이 타락하게 되면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기보다는

 기득권자들을 기쁘게 하는 일에 골몰할 것입니다.

 말씀을 왜곡하거나 축소시키고.

 사람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기보다는

 그들의 욕망을 추인해주는 역할에 만족 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이름이 멸시와 천대를 받게 됩니다. 

사람들이 다양한 사회적 경계선을 뛰어넘어 

말씀과 생명의 기쁨을 누리도록 해야 할 기독교가 

오히려 사람들을 갈라놓지는 않는지 경계하십시오.

거짓 종교인이 아니시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