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이것이 무엇입니까 (출 16:11-21)

鶴山 徐 仁 2019. 6. 19. 12:26
CTS기독교TV
CTS Social Network
새벽종소리 - 365일 하나님과 행복한 삶의 동행!
새벽종소리는 매일 새벽마다 다양한 테마의 큐티를 성도님의 메일함에 매일 새벽 배달하는 서비스입니다. CTS 새벽종소리와 함께 매일 경건의 시간을 가져보세요.
   06월 19일 (수)
말씀 큐티더 보기
성경 본문 이것이 무엇입니까 (출 16:11-21)

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2.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원망함을 들었노라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해 질 때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부르리니 내가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인 줄 알리라 하라 하시니라

13. 저녁에는 메추라기가 와서 진에 덮이고 아침에는 이슬이 진 주위에 있더니

14. 그 이슬이 마른 후에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 같이 가는 것이 있는지라

15. 이스라엘 자손이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서로 이르되 이것이 무엇이냐 하니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어 먹게 하신 양식이라

16.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령하시기를 너희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이것을 거둘지니 곧 너희 사람 수효대로 한 사람에 한 오멜씩 거두되 각 사람이 그의 장막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거둘지니라 하셨느니라

17. 이스라엘 자손이 그같이 하였더니 그 거둔 것이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나

18. 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더라

19.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아무든지 아침까지 그것을 남겨두지 말라 하였으나

20. 그들이 모세에게 순종하지 아니하고 더러는 아침까지 두었더니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난지라 모세가 그들에게 노하니라

21. 무리가 아침마다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고 햇볕이 뜨겁게 쬐면 그것이 스러졌더라

본문 해석

 인생을 살다가 하나님을 불평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의 원망과 불평에 대해 어떻게 하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출애굽기는 내용 전체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과 그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늘 말씀에 그들이 먹을 것이 없자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합니다. 그들의 원망과 불평은 이것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홍해 앞에 있었을 때도, 홍해를 건너서 마라에 있을 때도... 수도없이 그들은 불평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그 불평까지도 응답하십니다. 불평은 나쁜 것이긴 하지만, 반면에 불평을 한다는 것은 불평하는 대상을 의지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도 우리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끊임없이 불평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불평에 대해서도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정말 문제는 우리가 문제와 상황에 부딪혔을 때조차도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불평도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증거로 삼으십니다. 

 오늘 하나님이 그 불평에 대한 응답으로 만나를 주시는데, 한 가지 원칙을 주십니다. 아침에 이슬이 내릴 때 만나가 내리는데, 어떤 사람은 많이 거두고 어떤 사람은 적게 거둡니다. 어떤 사람은 몸이 아파서 거두러 나가지 못하여 먹지 못하고, 어떤 사람이 힘이 있어 많이 거두고 쌓아둡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정하신 원칙이, 하루가 지나면 그것을 썩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만나를 주실 때,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같이 누리도록 만나를 내려주시는데, 그것을 어느 한 사람이 많이 취하여 불공평하게 배분되는 것에 대해서 경고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신 주기도문에도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에게”가 아니가 “우리에게”입니다. 이것을 만나의 메시지와 연결됩니다. 어떤 사람이 많이 거두어 창고에 쌓아두고 내어놓지 않음으로 인하여, 누군가는 굶고 눈물겨워하는 것을 보고 다음 날에 그것을 썩게 하신 것입니다. 그 다음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 이상 쌓아 둘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많이 거두면 몸이 불편하여 거두지 못한 사람들에게 나누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중요한 뜻입니다. 

 이스라엘에는 두 개의 바다가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바다라고 표현하지만 사실은 강입니다. 갈릴리 바다와 사해입니다. 갈릴리 바다와 사해는 연결되어 있어서 갈릴리 바다의 물이 흘러 사해로 들어갑니다. 하지만 갈릴리 바다는 살아있고, 사해는 죽어 있습니다. 사해가 죽은 바다인 이유는 흘려보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것도 흘려보내지 않으면 당장은 행복할 것 같지만, 그것은 분명 썩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흘려보내며, “나의 양식”이 아닌 “우리의 양식”을 위해 기도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결단과 적용

 - 우리는 “일용할 양식”이 아닌 “쌓아 놓을 양식”을 위해 걱정하고 기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삶을 돌아봅시다. 

 - 나에게 주신 은혜를 흘려보내기 위해 결단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오늘의 기도

 주님! “최소한 이 정도는 나에게 필요하다.”고 간구했던 것들이 욕심이었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흘려보내지 못하는 자세였음을 회개합니다. 오늘 하루 “어떻게 쌓을지”가 아니라 “어떻게 흘려보낼지”를 기도하고 순종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인문학 큐티더 보기
포로 수용소에 걸린 말도 안 되는 간판
인문학 나눔

“여행은 20여 분 만에 끝이 났다.  

트럭이 멈춰 섰고 큰 문과 그 위에서 환히 빛나는 글씨가 보였다

(그 기억이 아직도 꿈속에서 나를 괴롭힌다). 

‘Arbeit macht Frei’ (노동이 자유케 하리라).”프리모 레비 저(著) 이현경 역(譯) 

《이것이 인간인가》 (돌베게, 26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아우슈비츠는 2차세계대전 중 나치가 세운 수용소 중 가장 규모가 큰 수용소였습니다.  

나치는 유대인을 제거하기 위해 ‘언어규칙’을 바꿨습니다.  

유대인의 ‘강제 이송’은 ‘재정착’으로,  유대인 학살은  ‘최종 해결책’이라 불렀습니다.  

더군다나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비롯한 강제 수용소 입구에는 

말도 안 되는 간판을 걸어 놓았습니다. ‘Arbeit macht Frei’ (노동이 자유케 하리라).

이 문구는 독일의 문헌학자 로렌츠 디펜바흐의 소설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후로 독일 사회에서 속담과 같은 경구가 되었던 문장입니다.  

나치는 이 멋진(?) 말을 수용소 간판에 새겨 놓고 실제로는 

유대인을 일을 통해 몰살시키려 하였습니다.  

우리를 멸망시키려고 획책하는 악한 마귀는 따뜻한 말로 우리를 중독시키려 합니다.  

겉으로는  “노동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라고 멋지게 말하고,  

속으로는 노동을 통해 죽이려 합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

“간절히 꿈꿀 때 우주의 기운(정령)이 도와준다.”“내 안의 거인을 깨우라” 

“내 안에 가능성이 있다”현 시대에 많이 들어왔던 이 문구들이 참 멋있어 보입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거짓 확신입니다.  

자기를 믿고 확신하는 새로운 우상이고 종교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자기 긍정!광명의 천사로 가장한 악한 영이 사용하는 가장 큰 유혹입니다.

기독 메시지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고후11:14)

 

그림 큐티더 보기
데살로니가전서 2장 13절
고린도전서 15:10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And we also thank God continually because, when you received the word of God, 

which you heard from us, you accepted it not as the word of men,  but as it actually is, the word of God, which is at work in you who believe. 

도서 큐티더 보기
내어 쫓으라

아브라함의 아들 중 겉으로는 이스마엘이 훨씬 큰 아이였고 

어린 이삭을 가지고 놀았듯이, 

겉으로 보고 판단할 때 인간의 수고와 노력과 선행, 

그리고 율법을 지켜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고 하는 이론이 

더 그럴듯하게 보인다. 

이삭이 태어나기까지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가정에서 

마치 참 아들처럼 행세를 했다. 

그러나 참 아들 이삭이 태어나면서 이스마엘은 이삭과 갈등한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하는 

진리가 오기 전까지, 인간의 자기선행과

 노력을 통해, 자기 공로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 될 수 있다는 생각들은 그럴듯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진정한 은혜와 약속의 복음이 들어오게 되었을 때,

 인간의 자기 공로에 근거한 윤리적 행위와 이스마엘적 사상은

 서로 갈등을 일으키게 되는 데 이 답은 간단하다 

 ‘내어쫓으라.’이다. 

-이천수 목사의‘층만함을 누리는 비결’에서-

 

이삭과 이스마엘의 갈등은 복음과 율법, 성령과 욕심,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자기 의, 

그것의 갈등으로 상징되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도 이 두 마음이 싸우고 있습니다. 

육신의 욕망과 자기 의, 나의 옛 사람이

 나를 지배하려고 합니다. 

한편에서는 하나님의 은혜와 그 축복의 말씀을 따라 거

룩하게 살고자 하는 마음이 꿈틀거립니다.

 그 거룩한 마음을 육신의 마음이 희롱하고 방해하고 가지고 놉니다.

 이렇게 서로 두 마음이 싸울 때 해결 방법은

갈라디아서 4장 30절이 대답합니다.

 "이스마엘을 내어 쫓으라. 명령합니다. 

왜요? 옛 성품, 육신적 생각, 그걸 가지고는

 하나님의 약속하신 바 유업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