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행복의 길을 묻는 그대에게 (마태복음 7:13~14 )

鶴山 徐 仁 2019. 5. 14.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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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월 14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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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행복의 길을 묻는 그대에게 (마태복음 7:13~14 )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본문 해석

돈이 많은 부자들은 진짜 행복할까요? 사람들은 모두 행복하길 원하지만, 행복한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행복을 얻는 방법을 모르고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며 주어진 행복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행복의 길을 알면서도 그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주님은 행복의 비결을 제시하셨습니다. 그 유일한 비결은 좁은 문을 들어가서 좁은 길을 가는 것입니다. 선택은 우리의 자유입니다. 우린 지금까지‘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내가 선택한 것에 의하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순간적으로 잘못 선택하였다면 다시 고치면 됩니다. 그러나 한번 선택으로 영원을 좌우하는 중요한 선택이 있습니다. 

  좁은 문은 선택하는 자가 적습니다. 왜냐면 그 문을 들어가려면 내가 사랑했고 익숙했던 많은 것들을 내려놓고 그것들과 결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쉬운 것이 아닙니다. 이 문은 믿음으로 들어갈 수 있는 구원의 문입니다. 이 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분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시며, 나의 기쁨이요, 힘이요, 행복이 되심을 고백해야 통과할 수 있는 문입니다.(요10:9) 

  이 문을 통과한 사람들은 좁은 길을 가야 합니다(14). 이 길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가는 길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 길을 가야할 사람들이 세상의 유혹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아니 넓은 길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습니다. 사단은 계속 이 길을 가지 못하도록 세상의 화려한 것들을 총동원하여 유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불신하게 하고 말씀을 의심하게 합니다. 작은 시험 앞에서 낙심케 하고 교만하게 하며 욕심을 부리게 합니다. 교회가기 싫도록, 기도하지 못하도록, 선한 일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좁은 길은 주님 가신 길이요, 사명의 길이며 힘들고 어려운 길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길입니다. 내 뜻보다는 주님의 뜻을 따라서, 내 유익보다는 타인의 유익을 위해, 방종보다는 경건을 위해 사는 삶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도와주시고 함께하시며 책임지십니다. 자신과 사단과 세상을 이길 힘과 지혜와 능력을 주십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의 비결입니다. 좁은 문을 통과 하셨나요? 좁은 길로 가십시다. 말씀 따라 가십시오. 그들의 삶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동행하시고, 만나로 먹이시고 시원한 물가로 인도하시며, 광야 인생길을 형통케 하실 것입니다. 

결단과 적용

- 지금 행복하십니까? 아니면 불행하십니까? 그 이유를 살펴보십시다. 

- 구원의 확신이 있으신지요? 없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십시오. 

- 좁은 길을 가며 승리하는 삶을 위해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오늘의 기도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심을 찬양합니다. 

좁은 길을 선택하고 걸어 갈 수 있는 힘과 은혜를 주시옵소서. 

나의 길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소개 할 능력도 주시옵소서. 

이 길을 가는 동안 지켜주시고, 끝까지 달려가도록 인도하시옵소서. 

인문학 큐티더 보기
산과 들이 푸르른 이유
인문학 나눔

산과 들이 온통 푸르름으로 가득 차게 되는 까닭은 아주 작은 풀잎 하나,

아주 작은 나뭇잎 한 장이 푸르름을 손 안에 쥐고 있기 때문이다.

안도현님의 시 「외로운 땐 외로워하자」 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로마서에서는 참 흥미로운 이름이 나옵니다.

기독 메시지

“이 편지를 기록하는 나 더디오도 주 안에서 너희에게 문안하노라. 

나와 온 교회를 돌보아 주는 가이오도 너희에게 문안하고 

이 성의 재무관 에라스도와 형제 구아도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롬16:22,23)

더디오란 말은 셋째(The third)라는 뜻입니다.  구아도란 말은 넷째라는 뜻입니다.  

이름이 어떻게 셋째, 넷째가 될 수가 있을까요?  이들은 노예였습니다.  

당시 로마의 노예들은 이름이 없이 주인에게 첫째,  둘째,  셋째 등으로 불리웠습니다.  

더디오와 구아도는 노예였지만 총명한 지성이 있는 노예였을 것입니다.  

이들이 예수를 믿고 바울의 사역에 귀한 동역을 하였던 것입니다.  

더디오는 바울 사도의 로마서를 대필(代筆)했습니다. 

아마도 바울 사도가 언급했던  ‘육체의 가시’ 가 눈의 질병이었는 지 모릅니다.  

더디오는 자기 생각 한 글자 적을 수 없는 따분하면서도 이름 없고 

빛도 없는 일을 묵묵히 신실하게 하였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리가 로마서를 읽을 수 있습니다.   

만일 더디오가 “평생 노예로 산 것도 한 맺혀 죽겠는데, 

예수 믿고 나서도 겨우 편지 베끼는 일이나 하다니” 하며 

이 일을 거부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위대한 로마서는 바울 혼자만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주 작은 풀잎 같은 존재들이 그 푸르름을 손 안에 쥐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는 온통 푸른 것입니다.

그림 큐티더 보기
열왕기상 8장 30절
고린도전서 15:10

주의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 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께서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 

 

Hear the supplication of your servant and of your people Israel when they pray toward this place. 

Hear from heaven, your dwelling place, and when you hear, forgive.  

도서 큐티더 보기
교회

그렇다면 주님은 왜 우리를 교회로 모이게 하셨을까요? 

물론 우리의 개인적인 기대로 교회에 모였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상상도 못할 하나님의 큰 프로젝트 안으로 초대된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와 주님이 원하시는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이 사실을 마음에 두고 성장과 성숙의 여정을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교회가 이 땅에 세워진 이유는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고,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라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이 부르심에 대해 영국성공회 주교였던 윌리엄 템플은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교회는 자신의 유익이 아니라 밖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유일한 사회다”

-이훈의 [예수께로 가는 길] 중에서-

 

교회는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의 모임입니다. 

그러나 모이기 위해 모이는 것이 아니라 다시 세상속에 나아가기 위해 모이는 것입니다.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교회에서 합니다. 

교회는 어쩌면 정류장과 같은 생명소입니다. 

그러나 이곳에만 머물면 썩습니다. 

우리는 받은 사랑을 가지고 세상속에 나가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