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4일 온종일 사냥을 하느라 고단하게 잠들었던 국왕은
다음 날 아침 리앙쿠르 공에게 이 소식을 전해 들었다. ‘반란인가?’ 라는
루이 16세의 물음에 그는 ‘혁명’ 이라고 대답했다.”앙드레 모루아 저(著)
신용석 역(譯) 「프랑스사」(김영사, 8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1789년 7월 14일 밤, 파리 바스티유 감옥이 함락된 소식이 베르사이유 궁으로 날아들었습니다.
그 유명한 프랑스 혁명이 시작된 것입니다. 하루 종일 한 마리도 사냥하지
못해 지쳐 있던 루이 16세가 왕실 의상담당관인 로슈푸코 리앙쿠르 후작에게 물었습니다.
“이것은 반란이 아닌가?” “아닙니다, 폐하. 이는 혁명입니다.”
절대 봉건 사회에서 왕실 의상담당관이면 왕의 생각을 대변해야 했건만,
그는 소신껏 말했습니다. 루이 16세의 바람과는 달리 로슈푸코의 말대로
역사는 ‘실패의 반란’이 아닌 ‘성공의 혁명’으로 돌아갔습니다.
루이 16세에 대한 역사의 평가도 갈립니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와 더불어 불운의 운명이었다는 평가가 있는가 하면,
리더십이 부족한 심약한 왕으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역사란 ‘과거에 일어난 사실 그 자체’이자,
‘역사가에 의해 선택되어 기록된 사실’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닙니다.
역사는 사실과 해석 사이에 있습니다. 역사적 사실을 놓고 해석이 다 다를 수가 있습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객관적 보편 타당성이 있는 해석은 세상에 없습니다.
한 개인의 삶에 대한 평가도 다 다를 수가 있습니다.
가장 정확하고 객관적인 평가는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의 평가를 바라보며 사는 삶을 신앙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