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기다리는 사람들(마태복음 25:1~13 )

鶴山 徐 仁 2019. 3. 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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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월 04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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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기다리는 사람들(마태복음 25:1~13 )

1.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2.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3.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4.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5.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쌔
6.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7.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쌔
8.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9.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10.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11.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12.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본문 해석

사람들은 누구나 미래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젊은이들은 타로나 점집을 찾아 자신들의 미래에 대한 궁금증을 알아보기를 좋아합니다. 이뿐 아니라 세상의 종말에 대한 이야기도 심심찮게 하곤 합니다. 종말의 징조에 대한 예수님의 여러 말씀 중에 마태복음 24장에서는 처처에 난리와 기근과 지진이 있고, 거짓 선지자가 출현하여 미혹하며, 사람들의 사랑이 식어짐으로 극단적 이기주의가 팽배해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종말은 다가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종말은 두 가지 차원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먼저 주님이 재림하시는 종말입니다. 우주적이고 역사적인 종말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신자들은 ‘주님이 다시 오십니다’하고 인사하였고,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하며 재림을 기다리며 살았습니다. 다른 하나는 개인적 종말입니다. 이는 나의 호흡이 끊어지는 순간입니다. 죽음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있음을 인정하며 살아야 합니다. 때문에 호흡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종말을 준비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며, 내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이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저마다 무엇인가를 기다리며 살아갑니다. 농부는 봄을 가다리고, 부모는 자녀의 성공을 가다리며, 직장인과 사업가는 승진과 확장을 기다립니다. 그렇다면 신앙인의 기다림은 무엇이어야 할까요? 주님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살아야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열 처녀들은 신부의 들러리로 성도들을 상징합니다. 교회는 주님 다시 오시겠다는 그 약속을 믿고, 그날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열 처녀를 두 그룹으로 나누고 있습니다(2-3).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등을 가지고 있었으며, 신랑을 기다리고 있었고, 신랑이 더디 오기에 모두 졸고 있었다는 것입니다(5). 차이가 있다면 미련한 처녀들에게는 여분의 기름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등은 외형적인 신앙생활로 예배와 봉사, 헌금과 각종 모임에 참여하는 교회생활을 의미합니다. 신앙생활에서 형식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내용이 없는 형식은 의미가 없으며, 내용과 중심이 있을 때 형식이 빛이 나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교양 있고 세련됨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 은혜가 없고 역사하는 믿음이 없다면 소용없습니다. 

  처녀들은 자신들이 계산한 시간에 신랑이 오지 않음으로 준비된 기름이 부족하여 등불이 꺼져갔고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8). 더디 오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며 방법입니다. 처녀들이 기름을 사러 간 후에 문은 닫혔고, 이미 때는 늦어 기회를 상실한 것입니다(10-11). 누구든지 종말의 그 날을 알 수 없기에 깨어 준비해야 합니다(13). 등과 기름을 함께 준비해야 하는데, 기름은 믿음과 성령을 의미합니다. 세상의 욕심과 재미에 빠져 육신의 깊은 잠에 취해 있지 말고, 영적으로 깨어 믿음과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우리는 시간적으로나 건강에 있어서 모두 제한된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슬기롭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결단과 적용

- 나의 삶에서 가장 많은 기다림은 무엇인지 살펴보십시다. 

- 슬기로운 처녀들처럼, 주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으로 준비는 잘되고 있는지요? 

- 신부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성령의 충만함을 구하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오늘의 기도

살아계신 주 하나님, 시대를 분별할 수 있는 영안을 주시옵소서. 신부의 마음으로 거룩함을 잃지 않게 하시고 주님을 사모하며 살게 하옵소서. 

세상 잠과 욕심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믿음과 성령의 충만한 가운데 경건한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을 주시옵소서.

인문학 큐티더 보기
농담
인문학 나눔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윽한 풍경이나 맛을 낸 음식 앞에서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정말 강하거나 아니면 진짜 외로운 사람이다. 

 

종소리를 더 멀리 내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 한다. 

 

시인 이문재의 시 「농담」 전문입니다. 

아름다운 것을 보며 맛난 것을 먹으면서 한 열 사람쯤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으면 자신의 삶을 한 번 의심해 봐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열 사람은커녕 다섯 사람도,  아니 어쩌면 한 사람도 제대로 떠올려 

보지 못하는 사람.  이 시에 의하면 그는 정말 강한 사람이었거나 

로운 사람입니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나쁜 사람이

다”고 했으면 얼마나 황망할까요.  

그런데 생각나는 사람이 백 사람이라고 하면  ‘농담’이라고 할까요?  

이렇게 진지한 이야기의 제목이 왜  ‘농담’ 일까요?  늘 자신의 말이 

참 말이라는 세상 속에서 참 말을 하면서도 겸손하게 농담이라고 

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아마 덜 아팠기에 농담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종소리를 더 멀리 내보내기 위하여,  종은 제 몸을 더 세게 때려 울려 

퍼지게 하거나, 자신을 말끔하게 비워 더 큰 울림을 만들어야 합니다. 

때리는 것도,  깎고 비워내는 것도,  정말로 강한 사람이나 할 수 

는건데.  울림 없는 종 같은 자신을 농담 같은 삶이라고 한 것일까요. 

기독 메시지

“예루살렘 딸들아 너희에게 내가 부탁한다. 너희가 내 사랑하는 자를 

만나거든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하려무나.”(아5:8)

 

그림 큐티더 보기
예레미야 29장 12절~13절
고린도전서 15:10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Then you will call upon me and come and pray to me, 

and I will listen to you. You will seek me and find me when you seek me with all your heart. 

도서 큐티더 보기
성령이 움직이는 교회

성령은 교회를 움직이신다. 

성령은 사도행전 2장의 교회를 가득채운 급하고 강한 바람이시다. 

그분이 일으키는 거센 복음의 바람은 지금도 여전히 불고 있다. 

우리는 그저 돛을 올리고 우리 육신이 항해를 방해하지 않도록 하기만 하면 된다.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에 관해서 했던 말처럼 

우리는 그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성령께 순종하고 나서, 

하나님이 그분의 역사를 행하시도록 맡기면 된다.

-J.D.그리어의 [담장을 넘는 크리스천] 중에서-

 

교회의 시작은 성령의 일하심이 있기에 가능했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할 때, 

그 안에 세상에서 볼 수 없는 사랑이 있었습니다. 

성령을 경험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였습니다. 

교회는 사람이 움직이는 곳이 아니라 성령님이 운행하시는 곳입니다. 

성령님이 함께 하실 때 세상을 담아낼 수 있습니다. 

성령님이 교회를 움직일 때, 모든 자가 주께로 돌아오는 은혜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