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자신에게 책임질 기회를 주십시오.(창세기 13장 5-13절)외 2

鶴山 徐 仁 2019. 2. 27. 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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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종소리 - 365일 하나님과 행복한 삶의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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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월 27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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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자신에게 책임질 기회를 주십시오.(창세기 13장 5-13절)

5.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6. 그 땅이 그들의 동거함을 용납지 못하였으니 곧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라
7.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하였는지라
8.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9.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10.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11.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12.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하였고 롯은 평지 성읍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13.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

본문 해석

우리가 흔히 하나님께 맡긴다는 말을 합니다. 하지만 이 말은 오해의 여지가 있습니다. 이 말은 모든 선택을 하나님이 해 주신다고 생각하며 사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은 아브라함과 롯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버지를 잃은 조카, 롯을 항상 챙기며 살았습니다.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들자 아브라함은 롯을 데리고 이집트로 내려갔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은 이곳에서 부자가 됩니다. 부자가 되니까 문제가 생겼습니다. 재산과 양떼들이 많아지니까 아브라함과 롯의 목자들 사이에 갈등이 생긴 것입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롯에게 롯의 선택에 따라 자신은 반대로 가겠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롯은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눈에 보기에 좋은 동쪽 땅을 가기로 결정합니다. 버르장머리 없이...

 롯은 전형적인 의존적인 자아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만이 아니라 가족 모두가 힘겨운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의존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을 보면, 정말 좋은 부모님께 사랑받으며 자란 사람인 경우가 많습니다. 너무 사랑한 나머지 실패할 기회조차 주지 않은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이러한 실수를 한 것은 아닌가 라고 생각해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책임적인 존재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창세기 3장을 보면서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항상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선악과를 만드셔서 인간이 죄를 짓게 하셨을까? 그냥 만드시지 않으셨으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은 우리를 로봇처럼 만들지 않으시고, 책임질 수 있는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회개는 책임적인 자아를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도 책임적인 자아에게 해당되는 개념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책임지는 존재로 만드신 이유는 의존적인 자아를 가진 사람들의 문제점 때문입니다. 의존적인 자아를 가진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핑계 댑니다.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신다고 하셔서, 아브라함이 롯을 위해 하나님께 중보 할 때도, 정작 롯은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소돔과 고모라 땅이 멸망당할 것을 알려주러 온 천사들을 마을 남자들이 상관하려고 때도, 자신의 딸들을 그들에게 넘겨줍니다. 이것이 의존적인 자아를 가진 사람들의 폐해입니다. 롯은 자신이 죽는 한이 있어도 가족과 천사들을 위해 싸워야 했습니다. 하지만 롯은 가족을 희생해서 상황을 무마시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은 우리의 눈에 문제의 환경들을 보여주실 때, 나에게 맡겨주신 상황을 책임지며 그 가운데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기를 결단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에게 허락하신 모든 삶에서 책임지는 삶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는 삶을 살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결단과 적용

 -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나에게 보여주시는 상황들을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하신 상황이라고 믿고 책임지는 행동이 무엇일지를 생각해 봅시다. 

오늘의 기도

 주님! 지금까지 하나님께 맡긴다고 말하면서 정작 믿음으로 책임져야할 상황들까지도 회피하려 했던 것을 회개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은혜를 나에게 허락해 주셨으니,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에 책임지는 자아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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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전선 이상이 있다구!
인문학 나눔

“내 아들이 죽었는데도 기차가 달리고 계절이 바뀌고 아이들이 유치원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까지는 참아줬지만 88올림픽이 여전히 

열리리라는 건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것 같다.  내 자식이 죽었는데도 

고을마다 성화가 도착했다고 잔치를 벌이고 춤들을 추는 걸 어찌 견디

랴.  아아, 만일 내가 독재자라면 88년 내내 아무도 웃지도 못하게 하련

만,  미친년 같은 생각을 열정적으로 해본다.”

 

박완서 저(著) 「한 말씀만 하소서」  (세계사, 17쪽) 중에 나오는 구 절입니다.

남편을 잃고 생 때같은 아들까지 잃었는데, 세상은 무심하게 변화가 없

습니다.  더군다나 올림픽을 한다고 축제로 가득합니다.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 이성복 시인이 그렇게 

말하였듯이 세상은 온통 무관심한 듯합니다. 

에리히 라미아 레마르크의 「서부전선 이상 없다」을 보면 전쟁 중에 

친구들은 하나둘씩 죽어갑니다.  마지막 남은 주인공 파울 보이머도 

습니다.  그런데 그 날의 군사 보고서는 이와 같았습니다. 

“서부전선 이상 없다.”(All Quiet on the Western Front)

한 우주를 품고 살았던 사람이 죽어도 서부 전선,  동부 전선은 이상 

없습니다.  “서부 전선 이상이 있다구!” 하고 외쳐도 소용이 없습니

다.  우리들의 죽음도 그러할 것입니다.  우리들이 죽는 날에도 버스와 

지하철은 여전히 달리 것이며,  스타벅스의 커피도 계속 잔을 비울 것

입니다.  이것이 삶의 허무입니다.  사는 것도 죽은 후에도 허무입니 다.  

예수님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원에 잇대은 삶을 살지 

않는 한,  우리들의 삶은 아무리 웃고 포장해 보아도, ‘허무’라는 

맹이를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기독 메시지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잠23:5)

그림 큐티더 보기
로마서 8장 6절
고린도전서 15:10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The mind of sinful man is death, but the mind controlled

by the Spirit is life and peace;

도서 큐티더 보기
하물며 하나님께서 베푸신 가장 큰 축복

비록 가족 간의 관계에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온 가족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정말 경사스러운 일, 

복스러운 일이 생기면 그로 인해서 가족 관계도 

절로 원만하게 되는 것은 불신자의 가정에서도 흔히 생긴다. 

남편이 갑자기 사업에 성공하게 되면 그전까지 

소원해지고 있던 부부 관계가 즉시 개선될 수 있고, 

아버지와 사춘기를 통과하는 아들 사이의 팽팽한 긴장 관계도 

아들이 좋은 대학교에 입학하는 순간 절로 사라져 버릴 수 있다. 

그렇다면, 하물며 하나님께서 베푸신 가장 큰 축복, 

곧 구원의 은총을 함께 받게 된 가족은 더욱 그렇지 않겠는가? 

-석기현 목사의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베풀어 주신 영생에 대한 믿음과 

천당에 대한 확신을 분명히 공유하고 있는 

부부나 부자나 모녀나 형제자매라면, 

그 관계가 끝까지 냉랭하게 갈 수가 없습니다. 

이 놀라운 구원의 축복을 인하여 함께 찬양하고 

같이 감사 기도를 올리는 가족이요 친척이요 혈육이라면 

그 사이에 생긴 일시적인 불화는 

결국 영원한 화목으로 바뀔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온 가족이 빠짐없이 예수님 십자가 구원의 은총을 

확실히 체험함으로써 

영적 가족의 유대감을 더욱 뜨겁게 나누는 성도들이 되십시오.

불신자들은 결코 누릴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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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월 26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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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변화, 그 위대한 결단(로마서 12:1-2)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본문 해석

사회학자들은 지금 이 시대를 가리켜서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상실의 시대’라 합니다. 현대인들은 무엇을 잃어버렸을까요?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생의 의미를 잊고 산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복을 잊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자아정체성을 확립하고, 존재가치를 알고, 자존감이 높아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전에는 하나님과 상관없이 세상적인 것만을 추구하고 살던 우리가 신분이 바뀌어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내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함입니다. 그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에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면서 일해야 합니다(2). 그렇게 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은 변화입니다.   

  이런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 중요한 것은 변화를 위한 몸부림입니다. 변화는 가만히 있는데 일어나느냐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변화되려면 무엇인가 결단하고 도전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변화하려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열심을 내야 됩니다. 부지런히 기도해야 하고, 예배 열심히 참여해야 하고, 말씀을 가까이하는 개인적인 열정이 회복되어야, 신앙적인 활성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변화를 위한 위대한 결단이 없는 어떤 변화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먼저 진정한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1). 교회의 본질적인 사역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향하는 예배입니다. 성도에게 예배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앞에 바른 예배자로 서야 합니다. 몸으로 산제사로 드리라는 것은 내 몸이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 분의 영광을 위하여, 그 분 중심으로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즉 주일 예배 시간만 지키는 예배가 아니라, 그 날 받은 은혜를 가정과 사회에서 삶으로 드리는 예배가 진정한 예배입니다. 

  또한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2). 내가 무엇을 얻으려면, 어떤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이 세대를 본받고 살아가는 삶에서 단절하고 내려놓아야 할 것이 있다면, 그런 것들을 과감하게 결단하고, 내려놓을 때에 새로운 변화의 상황으로 진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양손에 뭔가를 잔뜩 쥐고 있는 상태에서는 새로운 것을 취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늘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2). 마음이라는 것은 나의 속사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말투가 바뀌고 습관 좀 고쳤다고 해서 마음이 새롭게 된 것 아닙니다. 속사람이 바뀌어야 그 사람도 바뀌는 것입니다. 이 마음을 지키기 위하여 깨어 기도하고. 말씀 안에 거하고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잠4:23). 이 세대는 육신에 욕망을 따라 사는 세상입니다. 신앙인은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유행을 쫒아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살아 갈 때에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사는 승리하는 삶이 가능할 것입니다.  

결단과 적용

- 나의 예배생활을 점검하고, 영적 예배자가 되기 위해 개선점을 생각해 봅시다. 

- 이 세대를 본받지 않기 위해 내려놓아야 할 목록들을 구체적으로 정리해 봅시다.

- 승리하는 삶을 위해 오늘부터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을 위해 기도하십시다.  

오늘의 기도

 긍휼의 하나님, 선택하시고 불러주심을 감사합니다. 저를 향한 주님의 뜻을 알게 하시고, 미래를 바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고, 변화를 위한 결단으로 바른 예배자로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인문학 큐티더 보기
책과 스마트폰
인문학 나눔

“책은 빈 공간이 많기 때문에 우리의 뇌가 끊임없이 여백을 보충하게 만든다. 

상상력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들리지 않는 것을 듣게 만든다(중략).  

무조건적 수용이 아니라 일단 유보하고,의심하고,다른 측면을 생각해보는 

지성적 사고의 훈련은 독서에서 출발하는 것이 여전히 정도(正道)라고 본다. 

스마트폰의 보급이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할 것이라며 흥분하는 이들이 있는데,

자극적인 기사 몇 줄만 읽고 바로 화르르 불타올라 십자군전쟁에라도 

나선 기사가 된 양 개인 신상을 털고 ‘집단 다구리’에 열을 올리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미래가 두려워질 뿐이다(중략). 책을 읽지 않는 

사회의 직접민주주란 공포일 뿐이다.”

 

문유석 저 「쾌락독서」 (문학동네, 176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노모포비아(nomophobia)라는 말이 있습니다.  ‘없다’는 뜻의

 ‘노(no)’와 휴대전화를 의미하는  ‘모바일(mobile)’ 을 합친 말로 

휴대전화가 없으면 불안함이 생기는 증세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가족 내에서도 지하철에서도 휴대폰을 들고 서로 몰두하고 있는 풍경을 흔히 봅니다. 

“컴퓨터를 꺼라. 휴대전화도 꺼라. 

그러면 주위에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첫 발을 떼는 손자 손녀의 손을 잡아주는 것보다 더 소중한 순간은 없다” 

누가 이런 말을 했을까요? 소셜 미디어의 선두 주자인 구글의 회장이자 

최고 경영자인 에릭 슈밋이 2009년 봄 펜실베니아 대학 졸업 축사에서 

한 말입니다.  휴대폰을 비롯하여 각종 소셜 미디어는 빠른 속도로 

리에게 편리함과 수많은 정보를 제공합니다.  참 고마운 문명의 이기

(利器)입니다.  그러나 속도는 풍경과 사색을 죽일 경우가 많습니다. 

컴퓨터와 휴대폰을 켤 때와 끌 때를 잘 아는 사람이 현대의 고수(高手)

입니다.   

기독 메시지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시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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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8장 16절
고린도전서 15:10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In the end it might go well with you.

도서 큐티더 보기
유혹을 이길 수 있는 하늘의 능력을

우리는 누구나 세상적인 향락에 빠지기 쉬운 존재들이다. 

때로는 우리 인생을 파멸시키는 

무서운 유혹인줄 알면서도 거기에 빠지기도 한다. 

그런 유혹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는 없다. 

그래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하며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유혹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우리에게 이미 주셨다. 

그것이 바로 구원받은 감격과 기쁨이다. 

우리 안에 있는 구원의 감격과 기쁨을 누리며 사는 사람은

 세상의 그 어떤 쾌락적인 유혹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유혹을 이기며 사는 사람은 세상에서 당당하게 살 수 있다. 

유혹을 이길 수 있는 하늘의 능력을 소유한 사람은 

세상을 당당함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안효관 목사의 ‘우리를 선택하신 이유’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수많은 세상 사람들 가운데 

우리를 지명하여 부르신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답게 당당하게 사십시다.

 하늘의 영광을 얻은 자답게 하늘의 기쁨을 소유한 자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자녀됨의 권세를 가진 자답게 사십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의 죄와 유혹 앞에

 초라한 모습으로 사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세상을 이기며 담대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기대대로 세상을 이기며 믿음의 승리자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선택함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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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하나님을 꿈꾸는 인생(창 37:5-11)

5.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고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6.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컨대 나의 꾼 꿈을 들으시오
7. 우리가 밭에서 곡식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8. 그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 꿈과 그 말을 인하여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9.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 형들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10. 그가 그 꿈으로 부형에게 고하매 아비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너의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모와 네 형제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11. 그 형들은 시기하되 그 아비는 그 말을 마음에 두었더라

본문 해석

미국 위튼대학교에서 신입생을 대상으로 “미래의 꿈”을 간략하게 적게 하였는데, 97%의 학생이 백지 아니면 무성의하게 답을 했고, 3%의 학생만 자신의 꿈을 담아 제출했다고 합니다. 세월이 흐른 뒤 놀라운 것은 자신의 꿈을 제대로 적지 못한 97%보다는 정확하게 자신들의 꿈을 기록했던 3%의 사람들이 보다 진취적이고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우리가 어떠한 꿈을 가지고 사느냐에 따라서 미래는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 올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꿈과 비전을 가지고 있느냐? 아니면 나의 욕심에서 비롯된 야망에 사로잡혀 있느냐를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자신을 위한 꿈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꿈, 이웃을 위한 꿈을 꾸어야 합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꿈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가 꿈을 성취할 수 있었던 과정을 살펴봅시다. 

  먼저 그는 자신과의 관계에서 성실하였습니다. 요셉은 작은 일에도 성실함으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아버지의 심부름을 하는 과정을 보면 순종함으로 형들에게로 갔고, 형들이 그곳에 없는 상황에서 다시 형들을 찾아 갑니다(13-17).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 하면서도 그는 주인의식으로 정직하고 적극적으로 일했습니다. 감옥살이를 하면서도 그는 성실하였기에 인정을 받았습니다. 17살 청년으로 얼마든지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수동적이며 소극적으로 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성실함으로 자신을 관리하였습니다. 요셉은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을 때도 성실히 임함으로 어떤 환경에서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또한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늘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과 함께하였습니다. 아무리 좋은 꿈을 가지고 있어도 하나님께 기도만하고 주어진 환경에서 성실하지 못하면서 꿈의 성취만을 기다리고 있다면 이것은 기복주의입니다. 반대로 꿈을 이루기 위하여 나름 열심히 노력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지 않고 신앙생활 한다면 이는 인본주의입니다. 요셉은 성실함으로만 그의 꿈을 이룬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임을 성경은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창39:2,3,21). 

  그리고 요셉은 환경을 초월함으로 인내하였습니다. 꿈은 고난의 터널을 통과해야 현실로 나타납니다. 그는 꿈 때문에 고난이 시작되었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포기함이 없는 인생이 꿈을 이룰 수 있습니다. 요셉은 꿈꾸는 사람으로 늘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았으며, 어떤 유혹과 시련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꿈은 모든 환경을 초월하는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환경을 탓하는 사람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뛰어 넘어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에게 복주십니다. 요셉의 아름다운 인생은 태어나면서부터가 아니라, 그가 하나님의 꿈을 꾼 시점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요셉이 당한 고난의 과정을 오히려 재기의 발판으로 만드신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과 함께 아름다운 꿈을 이루어 가시기 바랍니다. 

결단과 적용

 - 나는 지금 어떤 꿈을 꾸고 있나요? 그 꿈이 하나님이 주신 꿈인지 점검해 봅시다.

 - 내게 환경을 초월하는 인내와 성실함이 있는지, 보완해야 할 부분을 정리해 봅시다. 

 - 나의 생각과 말이 불신앙적인가요, 변화를 위해 주님의 도움을 위해 기도하십시다.

오늘의 기도

 신실하신 하나님, 저의 삶을 인도하심 감사합니다. 주님 안에서 꿈을 이루는 삶을 위해 더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살아가며, 모두를 더욱 사랑하고 함께하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지금의 어려움도 믿음으로 인내함으로 하나님이 주신 그 비전 이루게 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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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방향에 말뚝을 하나 박아 360명이 하나의 목표점을 향해 달려가

면 1등에서 360등까지 있지만, 둥근 원에서 각자 뛰고 싶은 방향으로 

뛰면 360명이 360도에서 전부 1등이 됩니다.” 

 

이어령 이재철 공저(共著) 「지성과 영성의 만남」 (홍성사, 264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같은 새라도 밤에 우는 새가 있고 낮에 우는 새가 있습니다.  

봄에 피는 꽃이 있는가 하면 가을에 피는 꽃도 있습니다.  

한 곳만이 성공지점이라고 하여 모두 그 방향으로만 뛰면 1등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동서남북으로 뛰면 네 사람이 1등을 하고, 360도 방향으로 각자 

리면 360명이 모두 1등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직선 위에 줄 세워 놓고 1등,

 2등 순위를 매기시지 않습니다. 둥근 원 위에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은사와 사명대로 

자신의 독창적인 방향으로 뛰어가게 하셨습니다.  직선 위에 서면 1등, 

2등, 꼴찌가 있어 괴롭지만, 각자의 사명으로 살면 모두가 1등입니다.

수(秀)는 ‘빼어날 수’입니다. ‘우수하다’ 는 뜻입니다.

우(優)는 ‘우등생’할 때의‘우’자. ‘넉넉하다’는 말입니다.

미(美)는 ‘아름다울 미’입니다. ‘좋다’는 뜻, 

역시 잘했다는 의미입니다. 

양(良)은 ‘양호하다’의 양으로 ‘좋다,어질다,뛰어나다’의 뜻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괜찮다’는 뜻입니다. 등급 네 번째를 

차지하는 ‘양’마저 좋은 뜻입니다.

마지막 가(可)가 남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가(可)’는 ‘가능하다’고 할 때의 ‘가’입니다.

희망의 말입니다. 충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니 ‘옳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영혼은 모두 좋고 옳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대를 안고 우리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우수하고, 

넉하고, 아름답고, 뛰어나고, 옳습니다.  아름다운 창조입니다.

기독 메시지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창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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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4장 24절
고린도전서 15:10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and to put on the new self, created to be like God in true

righteousness and holiness.

도서 큐티더 보기
재림에 대한 잘못된 소망은

재림에 대한 잘못된 소망은

 이 땅의 삶에 대한 잘못된 태도를 가지게 한다.

 이 땅의 삶이란 하나도 의미가 없는 것처럼 

오직 내세만이 의미 있는 것처럼 오해한다. 

공부하는 일도 돈을 버는 일도 하찮게 여기면서 

하루 속히 주님 오시기만 바라고 사는 것을 좋은 신앙으로 착각한다.

 신앙생활을 핑계로 가정 일과 직장 일을 소홀히 한다. 

그에게는 일하기 싫은 힘겨운 현실을 도피하기 위한 

최적의 장소가 교회 공동체인 셈이다. 

상식적인 생각만으로도 충분히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는

 이 태도가 종종 훌륭한 신앙처럼 오해되는 것은

 게으름을 합리화하는 자기기만에 빠졌기 때문일 것이다.

  -최동규 목사의 ‘말씀이 달음질하여’에서-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들을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신 것이 

단지 죽은 이후에 천당에 가게 하시기 위함이 아닙니다.

 이 땅의 삶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 기간이 아니라. 

성도는 거듭나는 순간에 이미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천국이 완성되기까지는 이 세상 나라와 공존하기 때문에 

아픔과 눈물도 있지만 ‘지금 여기’의 삶은 

빨리 끝나면 좋을 지루한 여행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도는 각자 부름 받은 위치에서 

구별된 삶을 통해 이 땅에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독특한 은혜의 나라가 있음과 

그분의 거룩한 백성이 있음을 드러내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지켜 순종해야할 말씀들을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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