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풍성한 인생(예레미야 17:5~8)

鶴山 徐 仁 2018. 1. 15.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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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월 15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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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풍성한 인생(예레미야 17:5~8)

5.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6.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에 거하리라
7.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8.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찌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본문 해석

사람들은 누구나 풍성한 삶을 살기를 기대합니다. 그렇게 살 수 있는 방법들을 생각하고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러나 풍성한 삶의 축복은 아무나 받아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풍성한 인생으로 살아갈 수 있는 중요한 원리를 알아야 합니다. 

식물이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충분한 영양분과 빛의 공급을 받아야 하며 무엇보다 수분이 넉넉해야 합니다. 

이러한 기본 조건이 맞으면 식물은 자라나고 풍성한 열매 맺을 수 있습니다. 

본문은 먼저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는 인생은 물가에 심어진 나무처럼 풍성한 삶을 살아갈 수 있지만, 

하나님께로부터 마음이 떠난 사람은 저주를 받은 것이며 사막의 떨기나무 같을 것이라(렘17:5-6)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떠난 자는 저주를 받아 삶이 황폐해져서 아무리 수고해도 다 소용없다는 말입니다. 

사막은 물이 없기 때문에 사막이 된 것입니다. 어떤 사막이라도 물만 주어지면 옥토가 됩니다. 

이스라엘의 마른땅도 개척하여 농업 국가로 만든 비결이 바로 그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거룩한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에게서 끊어지면 마음이 황폐해져 인간성이 파괴되고 맙니다(17:13). 

그가 아무리 남들이 갖지 못한 것들을 소유하였어도 영혼이 황폐된 사람에게는 쓸모가 없게 됩니다. 소망이 없습니다. 

사람을 하나님보다 더 믿는 사람은 그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떠나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미래의 삶에 소망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5). 

우리의 삶에 피곤이 몰려오고 사업적으로나 인간관계나 자녀들의 문제도 원인은 말씀과 은혜의 생수가 떨어지고 메말랐기 때문입니다. 

8절을 보면 참으로 풍성한 삶의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7절의 말씀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는 사람들은 근심과 염려가 없이 담대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무더위와 같은 고난과 역경이 다가와도, 가무는 해와 같은 재난에도 두려워하지 않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결실이 그치지 않는 풍성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물가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nbs p;

2018년의 미지의 날들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 바라보고 의지하고 살아가십시오. 

풍성한 축복은 하나님께 뿌리를 깊이내린 인생에게 주어집니다. 

지금 사막 같은 인생도 오아시스 같은 인생으로 변화할 수 있습니다. 

삶의 뿌리를 하나님께 내리고 말씀에 순종하심으로 풍성한 인생으로 한해를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결단과 적용

- 나의 상태는 어떠한지 살펴보고 그 원인을 진단해 보십시다.

- 풍성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회복해야 할 내용이 무엇입니까? 

- 한 해의 삶을 생각해 볼 때, 내가 최선으로 순종해야 할 분야는 무엇입니까? 

오늘의 기도

주 하나님, 주신 한해를 주님 가까이하며 말씀안에 뿌리 내리고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답답하고 메마른 심령에 생수같은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주시옵소서. 

물가에 심기운 나무처럼 결실이 그치지 않는 인생을 살아감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며 살게 하시옵소서. 

인문학 큐티더 보기
살아남은 자의 슬픔
인문학 나눔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 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 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강한 자는 살아 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시 「살아남은 자의 슬픔」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기독 메시지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라는 말이 있

습니다.  그런데 시인은 반성합니다. 

“나는 과연 강자인가,  정말 강자여서 살아남은 것인가?”

시인은 자신이 그저 운이 좋아 살아남았을 뿐이라는 자조로 시작해서, 

자신에 대한 미움으로 끝을 맺습니다.  강자가 아닌데도 살아남은 것이라면

비겁함과 속임수로 살아남은 것이고,  정말 강자여서 살아남은 것이라면,  

즉 더 약한 누군가를 짓밟고 살아남은 것이라면,  

그 가혹한 현실 논리에 충실했던 자신이 미워진 것입니다. 

살아 남은 자의 미안함, 돌보지 못한 부끄러움과 부채 의식. 

살아 남은 자는 슬픔과 미안함이 늘 있습니다. 

이런 ‘미안함’과 가장 비슷한 성경 구절이 ‘빚진 자’입니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롬1:14)

그림 큐티더 보기
신명기 2:7
고린도전서 15:10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고 

네가 이 큰 광야에 두루 다님을 알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을 

너와 함께 하셨으므로 네게 부족함이 없었느니라 하시기로

The LORD your God has blessed you in all the work of your hands. 

He has watched over your journey through this vast desert. 

These forty years the LORD your God has been with you, and you have not lacked anything.

도서 큐티더 보기
칭의의 은혜가 아니면

종교개혁의 칭의교리가 공격을 받고 있다. 

마치 종교개혁자들이 죄인의 값없는 칭의를 강조하고 

선행은 구원과 무관한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성화의 추구 없는 값싼 은혜의 종교가 된 것인 양 말이다.

 그래서 믿어 칭의를 얻었어도 

순종이 온전하지 않으면 구원이 위험하게 된다는 

새 관점의 반펠라기우스적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과연 인간은 절망적 죄인으로

 칭의의 은혜가 아니면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종교개혁자들의 주장이 율법의 순종을 약화시키는가?

-서충원 목사의 ′왜 성화가 아니고 칭의인가?′에서-

 

칭의 교리의 깊은 본질은 

죄를 정당화하는 교리가 아니라

 자기의 선행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는 소위

 의인들의 교만을 파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며

 빈손으로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게 하는 영적 통찰입니다. 

 도덕적 악보다 더 위험한 것은

 자기의 선으로 하나님 앞에 서려는 교만입니다.

 성화가 그리스도인의 당연한 추구여야 하지만

그러나 진정한 성화의 추구는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의 깊이와 무능에 대한 칭의 신앙의 바탕에서 가능합니다.

 어줍지 않게 종교개혁자들의 칭의 교리를 비판하는 자들은 

그들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