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으로 돌아가 하나님의 성전을 복원하고 거기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는 성전을 위해 수종들 레위인들이 필요했지만
에스라가 귀환 마지막 단계에서 확인한 결과 <레위 자손이 한 사람도>(15절)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게 힘든 일이라 레위인들이 고의로 귀환을 기피했기 때문입니다. 에스라의 지도력이 일대 위기에 처하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어떤 공동체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곤경에 처하게 됐을 때 누군가를 지목하여 그 책임을 물을 것인가 아니면 어떻게든 마음을 모아
그 위기를 함께 뚫고 나갈 것인가 하는 것은 그 공동체에 속한 모든 성원들의 운명을 갈라놓는 결정적인 선택이 됩니다.
전자를 택하는 곳에서는 어느 편엔가 서서 치뤄야 할 싸움과 상처가 필연적일 수밖에 없고,
후자를 선택하는 공동체에서는 서로에 대한 격려와 간절한 공동의 기도가 요구 되는 것입니다.
다행히 당시 이스라엘은 후자에 속했습니다. 에스라의 민첩한 결정과 신속한 레위인 수배가 결국 큰 성과를 보게 됩니다.
<명철한 레위 사람 세레뱌와 그의 아들들과 형제 십팔 명>(18절)을 비롯해 이백 수십 여명의 레위인 참여를 이끌어낸 것입니다.
이제 에스라가 아하와 강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 우리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우리와 우리 어린 아이와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을 그에게 간구하였으니>(21절).
바벨론에서 예루살렘까지의 <평탄한 길>을 기도한 것입니다. 적어도 우리는 이런 정도의 시련과 염려 때문에
우리의 꿈과 이상과 희망을 접을 수는 없다며 하나님께 간구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차원 높은 미래가 있고 희망이 있는 한 누구도 감히 우리의 귀환과 전진을 가로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에스라는 <길에서 적군을 막고 우리를 도울 보병과 마병을 왕에게 구하기를 부끄러워하며>(22절) 대신
<금식하고 하나님께 간구하여 그의 응낙하심을 입었다>(23절)고 했습니다.
새해의 여정, 새해의 행보를 위해 기도합시다. 에스라처럼 세상 왕에게 도움을 청하기보다도 하나님께 은혜를 입는 큰 축복이
당신과 당신이 속한 공동체와 함께 하길 간절히 빕니다.